성도(13): 고난을 몸에 채우는 자
골 1:24
사순절을 이제 한 주간만 남겨 두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부활절이 있기 전 주일을 제외한40일을 말합니다. 부활절 전 주일인 오늘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 종려가지를
들고 찬양하는 것을 기념하며 ‘종려주일’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월요일부터 토요일 한 주간을 ‘고난주간’이라고 부릅니다.
이 한 주간 동안 교회들은 오락을 금하고 금식하며 경건하게 보냈습니다. 특별히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금요일은 온 성도가 함께 모여 십자가의 죽음을 묵상하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십자가
형은 범죄자들이나 로마에 반역한 자들을 처벌하는 수단이었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극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우리 인간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골 1:24절을 보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운다’고 말합니다. 조금 이상합니다.
1) 인류 구원을 위해 주님이 받을 고난이 남아 있다는 것으로 들립니다.
2) 바울 사도 자신이 그 남은 고난을 보충하려는 의미로 들려 옵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를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은 미완성이며 불완전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또 완전한 구원을 이루기 위해 우리 인간의 수고가 더 남아 있는 것으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것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회적 십자가 사건으로 구원은 이미 완성 되었습니다. 게다가2천 년 전의 주님의 십자가 보혈과 고난은 우리를 구원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위한 더 이상의 우리 인간의 노력과 고난은 불필요한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주님의 그 말은 거짓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인류를 속인 사기극에 해당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 사도가 여기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수
믿는 우리들이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성도가 겪게 되는 필연적인 고난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운다’ 는 의미는 복음을 전하다
당하는 고난을 감당하겠다는 사도 자신의 결심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듯이, 실제로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바울뿐만 아니라 초대교회 당시 이름
모를 성도들 가운데는 순교 당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성도들의 그런 고난 뒤에 주어진 것은 가난과 죽음이 거의 전부였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성도들은 고난을 당해야 할까요?빌 2:9-11절을 보면, ‘하나님이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셔서,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모든 자들을 예수 이름 앞에
무릎 꿇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하사 하나님 아버지게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고 선포합니다. 이 말씀을 묵상해 보면, 성도는 예수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며 세상을 구원한 구원자였다는 사실을 모든 세상 사람이 인정하는 그 순간을 위해 수모와 고난을 당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 하나를 더 알려 줍니다. 골 3:4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주님과 연합된 우리들도 이 영광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롬8:17절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이 특권을 세상 사람들은 누릴 수가 없습니다.
믿는 우리들 만이 갖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다가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하다 받는 고난이 있다면 정말
감사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예수를 믿고 난 뒤 복음을 전하다가 뺨 하나 맞지 않았습니다. 지하교회 전도여행에서 복음 전하다
급히 도망쳐 본 것 외에는 기억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바울
사도와 같이 감옥에 갇힌 적도 없습니다.
메를 맞아본 적도 없고 선교여행에서 배가 파선되어 죽을 뻔한 적도 없습니다. 배고픔과
추위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복음을 위해 고난을 당하지 않고 복음의 혜택을 누리는 세대들인 것 같습니다.
좋은 건물에 좋은 장비를 갖추고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예배를 드립니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직접적으로 박해나 핍박을 받지 않는 우리들이 어떻게 하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성도가
될 수 있을까요? 첫째 방법은 예수를 믿지 않는 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전도하는 일입니다. 계1:9절에 요한은 자신이 하나님 말씀과 예수를 전하는 일로 인해 밧모 섬에 갇히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딤후 2:9절을 보면, 바울 사도는 복음을 인하여 자신이 죄인들과 같이 로마감옥에 가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모두가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 당한 우리의 선배들입니다. 우리 교회 ‘십오일’ 프로젝트가 활성화 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분들이 부활주일에 와서 함께 예배를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2)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두 번째 방법은 주변에서 고난 당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돕는
것입니다. 언제 주님이 배고프고 헐 벗고 감옥에 갇혔을 때 자신들이 도왔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마25:40절에서,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바로 예수님에게 한 것이다’
라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지금 이 시간도 신앙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마음껏 찬양도 못하고, 모임조차 자유롭게 갖지 못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아직 존재합니다. 예수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갇히고, 집이 불태워지고, 폭력을 당하고, 목숨조차 잃는 사람들이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있습니다.
예수
때문에 이들이 당하고 있는 고난을 생각하며 고난주간 동안, 그들을 위해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 물질로 돕기를
원하는 분들은 고난 주간에 금식하며 식비를 도네이션해 보기를 도전 드립니다. 연락 주시면 교회에 온 메일을
통해 개인적으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교회와
가정 우리 개인 모두가 주님 오실 때가지 주님이 나를 위해 고난을 받으셨다는 사실을 먼저 믿고, 복음 전하는 일에 함께 하고,
예수 때문에 지금도 고난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실제로 도우며,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함께 동참하면 좋겠습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고난 주간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몸에 채워보는 결단과 도전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