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5): 낙망하지 않고 지속 하는 것입니다.  

18:1-7

 


기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기도가 어렵다는 말을 간혹 듣게 됩니다. 이 말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지 못해 오래 기다리며 애타하는 소리가 들려 옵니다. 기도 응답이 늦어지는 이유는 많습니다.그 중 하나는 하나님은 이미 응답을 하셨지만 그것을 우리 스스로가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주님이 제안한 것을 기도 응답으로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이지요. 이때에는 주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하나님의 시간이 아닌 경우입니다. 하나님이 응답하는 때가 우리의 때와 다를 경우입니다. 이 때에는 다른 방안이 없습니다.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29: 10절에서 예를 하나 보면, 이스라엘이 죄를 짓고 나라가 망해 포로가 됩니다. 하나님은 70년이 되어야 돌아올 것이라는 약속을 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이 되었을 때 그들은 귀환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기도에 응답하실 상황과 그 시간을 가장 정확히 알고 그 때를 정하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이것을 인정하면 쓸데없는 원망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다들 기도 응답이 지연되는 것을 경험해 보았을 것입니다. 불 난 집에 부채질하듯 응답이 없을 때는 안 되는 일이 겹칩니다. 이때 가장 먼저 감정의 영역인 기분이 몹시 상합니다. 감정이 상하는 것은 어느 정도 견딜만 합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따로 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사탄이 생각의 영역에 개입하게 됩니다.

 

하나님 존재자체도 의심하게 만듭니다. 게다가 기도 제목을 성도들과 함께 나누고 기도하다 보니 잘 안 되는 일도 알려지게 됩니다. 사탄이 생각을 집어 넣어, 괜히 자신이 무능한 사람 같고 패배자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자존심 상하게 만들고 자존감도 상실하게 만듭니다. 사탄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일단 우리의 생각 안으로 이런 것들을 집어 넣으면 사탄은 의지의 영역까지 침범하려고 합니다. 기도 응답이 지연될 때 우리 의지마저 약하게 만듭니다. 주일 아침이 되어도 눈이 뜨기 싫고 옷을 챙겨 입고 교회 가는 것이 귀찮아집니다. 한 두 주는 영상예배나 가까운 교회에 출석하지만, 삼 주를 지나면서 교회 나가는 것도 힘들어집니다.

 

벽에 틈이 생기면 빗물이 틈을 타고 들어오듯, 사탄은 집요하게 우리가 완전히 무너지는 데까지 들어와 엉망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기도 생활은 성도를 지탱하는 힘입니다. 감정을 단단히 메어 어떤 일에도 낙심되지 않게 합니다. 또 더 나쁜 생각을 향해 달려가지 않도록 차단하는 역할을 합니다.

  

게다가 신앙생활이 멈추지 않도록 의지에 힘을 공급합니다. 기도가 이렇게 힘이 있는 것입니다. 좀더 상세히 말씀 드리면 기도 가운데 역사하는 성령 때문입니다. 우리 감정에 감동을 허락하시고, 감화를 주사 생각을 바꾸고, 위로를 통해 의지를 새롭게 하십니다. 이런 성령이 내게도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성령은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하늘의 선물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는 우리 속에 지금 계십니다. 지난 몇 주에 걸쳐 우리교회에 처음으로 교회에 나오는 분들이 늘고 있습니다. 너무 귀한 분들입니다. 이 분들 빠른 시일 내에 예수를 알고 예수를 나의 구주로 내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하실 줄 믿습니다.

 

예수를 믿고 성령의 역사를 기도 가운데 체험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렇게만 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굴곡이 있게 마련입니다. 가장 힘든 때는 예상치 못한 시련이 찾아옵니다. 그때에도 평소처럼 기도하지만 하나님은 응답해 주지 않고 무한정 기다리게 할 때입니다.

 

오늘 본문 눅 18:1절을 보면,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말 것과 절대로 낙망하지 말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비유가 주어지게 되는 배경이 중요합니다. 십자가 사건 이후 예수님은 하늘에 올라 가면서, 따르는 사람들에게 곧 다시 이 땅에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시 교회는 극심한 환난과 핍박 가운데 놓이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도들은 주님이 곧 오실 것을 기도했지만, 재림의 징조는 전혀 없었습니다. 실망하고 기도의 자리를 떠나가는 사람들이 늘어가자, 누가는 예수님의 비유를 기억하고,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실망하지 말고 기도하기를 쉬지 말 것을 권면하는 것입니다.

 

2절에 보면 한 도시에 재판관이 있습니다. 5절에는 이 재판관이 원수로부터 자신의 원한을 풀어 달라는 과부의 부탁을 들어주는 그 이유가 나옵니다이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지 않으면 늘 와서 자신을 괴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늘 와서라는 말은 응답이 없어도 끈질기게기도 한다는 의미입니다.

 

7절은 응답이 지연되어도 실망 하지 않고 밤낮 부르짖는 끈질긴 간청이 기도 응답의 비결이라고 결론짓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은 그들에게’(성도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라고 반문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 응답이 지체되어도 낙심하지 않고 매일 재판장에게 나와 부르짖는 과부처럼 끈질기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어떤 이유로 낙심하여 기도 생활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는지요? 신앙생활 하다 보면 이 비유에서 나오는 재판관 같은 불의한 사람들을 교회에서 보고 실망하는 일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이유들이 내 신앙에 특히 기도 생활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교회 생활하면서 나를 실망시키는 이유에 너무 민감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근거로 교회에 안 나오는 근거로 삼습니다. 사람 사는 곳에 실망되는 일이 얼마나 많이 생깁니까? 그럴 때마다 직장 나가는 것 이메일 보내 그만두시는지요? 아이들 학교 보내는 것 그날로 접어 버립니까? 연구실은 안 나간다고 메신저 보내는지요?

 

쉽게 포기하지 않고 힘들어도 계속 나갑니다. 그런데 신앙생활과 기도는 왜 그리 쉽게 그만두어 버리는지요? 배는 고프면 안되고, 내 영혼은 메말라 피폐해가도 괜찮은 것입니까? 자녀들 학교 빠지고 숙제 안 해 가는 것은 신경 쓰이면서, 하나님 말씀 읽지 않고 기도 안 하는 것은 푹 쉬라고 하십니까?

 

기도는 내 모든 삶을 지탱하는 힘입니다. 나의 감정과 정신세계 영의 세계를 강건하게 유지시키는 힘을 하늘로부터 공급받는 시간입니다. 일주일에 한 두 번 실내나 야외에서 운동 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나의 영혼을 강건케 하는 기도생활에도 그에 버금가는 시간이 투자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령님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