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9): 기도 가운데 만나는 하나님 

32:24-26

 


우리 성도님들도 많이 체험들 하셨을 텐데요. 기도를 하면 참 기분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기도하는 재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기분 좋은 느낌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도 가운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기에 기도하면 기분이 이렇게 좋을까요?

 

많은 분들이 친한 친구들을 만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냥 늘 하는 이야기이지만 만나면 좋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기도 가운데 내 이야기를 들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사실 그래서 기분이 좋습니다. 우리가 기도 가운데 만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를 좀도 자세히 성도님들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만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었습니다. 밤새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하였습니다. 그런데26절을 보니, 날이 새려하고 나로 하여금 가게 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어릴 적 귀신 이야기나 도깨비 이야기를 들으면, 날이 새면 귀신들이 떠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하나님도 그런 종류인가요? 아닙니다. 18:1절을 보면, 아브라함을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그것도 날이 뜨거운 한 낮입니다. 그러므로 빛과 어둠의 교체에서 떠나가는 그런 귀신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임이 증명됩니다. 밤새 달래며 귀신들 비위를 맞추어 복을 타내는 그런 잡귀들은 상대가 안됩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시간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시간에 구애 받을 필요가 없는 분입니다. 24절을 보면, 밤에서 아침으로 전환이 일어납니다. 야곱에게는 자신의 삶과 죽음이 결정되는 시간이 다가오는 순간입니다. 400명을 이끌고 형이 점점 가까이 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날이 새니 나로 하여금 가게 하라는 말은 야곱의 급한 사정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이제는 됐어, 너의 간절한 마음을 내가 알겠어. 너 목이 마르고 힘이 빠지는 것 내가 알겠어. 이제 가장 적합한 때가 왔어. 내가 너에게 복을 허락하기를 원해. 이제 가서 내가 허락하는 것을 누리거라는 의미입니다. 기도 응답의 싸인입니다.

 

사실 야곱과 씨름을 하던 하나님은 그렇게 긴 시간 밤새도록 피곤하게 씨름할 필요가 없습니다. 미리 야곱의 환도뼈를 치고 일찍 초저녁에 떠나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의 문제가 해결 받는 시간은 형을 만나는 아침 시간입니다. 그때까지 혼자 고민하고 있는 야곱을 외로이 두지 않으시기 위한 배려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와 함께 긴 밤을 같이해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가장 힘든 것이 무엇입니까? 주위에 함께 기도해 주는 사람들이 없는 것도 때로는 힘이 듭니다. 그러나 제일 힘든 것은 하나님이 내 기도에 함께 하지 않는다는 사탄이 주는 생각입니다. 거짓이고 잘못된 믿음입니다.

 

내 옆을 떠나지 않으시고 함께 하십니다. 포기하려고 할 때,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우시며 힘을 주십니다. 그래서 야곱이 기도하는 모습을 씨름하는 모습으로 창세기는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의 때까지 우리를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니 나를 의지하고 조금만 더 참아다오.” 이런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기도 가운데 만나는 하나님은 정말 나를 향한 배려가 깊으십니다. 더 놀라운 것은 25절을 보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패배를 당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야곱의 기도 가운데 메달리는 모습을 보고 그 의지를 눌러 꺾을 수 없었다는 그런 뜻입니다.

 

이런 하나님입니다. 야곱을 위해 스스로 씨름에서 저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힘이 없어 야곱에게 지겠습니까? 무슨 의미입니까? 성도가 하나님께 나아가 간구하고 메달릴 때 우리의 기도를 절대로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입니다.

 

야곱이 고집이 세고 힘이 좋아서 씨름을 중도에 포기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이 더 강하게 야곱을 붙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분이 계십니다. 십자가에서 피와 물까지 쏟으시며 모든 것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믿음을 갖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그냥 축복하면 될덴데 하나님은 왜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고통스럽게 만들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도대체 이런 하나님은 또 어떤 하나님입니까? 그냥 복 주기엔 너무 아깝고, 밤새 시달린 것 되돌려 주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사람처럼 뒤 끝 있는 분이 아닙니다.

 

환도뼈는 두 다리로 버티며 씨름을 한 야곱의 힘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골시킨 것은 야곱이 믿고 있던 것을 깨뜨리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늘 붙잡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땅이 있거나 집도 있습니다. 기대는 뭔가를 가지고 사람들은 살아갑니다. 이런 것들에 의지하는 우리를 향해 강력히 도전하십니다.  

 

진정 우리가 붙들고 의지해야 하는 것은 직장 성공 노후대책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뿐임을 말씀하십니다. 죽을 때 하나도 가져 가지 못할 것들을 더 이상 의지하지 않을 때, “내가 너의 힘이 되어주고, 미래가 되어주겠다는 약속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야곱이 기도 가운데 만난 하나님이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