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1): 해 아래 인생  

 1:1-3



오늘부터 전도서를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전도서는 어떤 책일까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질문인 인생 그 자체를 묻는 책입니다. 그 질문에 답을 제시하는 사람을 히브리말로 코헬렛이라 부릅니다. 개역개정과 새번역은 전도자’, 공동번역과 NASB KJV설교자 preacher’ NIV NRSV teacher’로 번역합니다.

 

인생을 가르치고 교훈을 주는 사람임에 틀림 없습니다. 상당한 인생 경험과 학문과 지식을 두루 가진 나이든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1절에 의하면, 전도자는 자신을 다윗의 아들이요 예루살렘 왕으로 소개하는 것으로 보아, 솔로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솔로몬은 젊은 때에 아가서를, 중년에는 잠언을, 나이 들어 전도서를 기록했다고 전해집니다.

 

자신을 먼저 소개한 전도자는 갑자기 분위기를 바꾸어 2절에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라고 인생에 대해 말합니다. 사실 그가 말하는 허무가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이 살며 경험하는 인생의 공허함과, 불확실함, 그리고 무의미함 때문일 것입니다.  

 

허무는 1)하나님이 나를 지으시고 이 땅에 태어나게 한 목적을 상실한 체 사는 것이고 2) 나중에 가장 중요한 곳에 사용하려고 먹지도 자지도 놀지도 않고 일하며 이루어 낸 것들이 죽음이라는 문제 앞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이생의 자랑과 육신의 정욕만 추구하다 영생과 영벌이 있는 것도 모르고 떠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5번이나 반복되는 헛되다는 말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허무함의 보편성을 말합니다. 또 어떤 방법과 수단으로도 그것을 극복할 수 없는 한계성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누가 이 말에 반대하겠습니까? 하지만 전도자는 여기에서 인생이 허무하다면 왜 인간에게 주었겠는가? 라는 반전을 일으킵니다.  

 

이것을 유도하기 위해, 깊은 공허함 속으로 끌고 들어 온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하려는 것이지요. 전도서의 진짜 주제는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은 가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서의 매력입니다. 그래서 2절은, ‘인생은 과연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된 것일까? 라고 읽어야 합니다.

 

이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3절에서,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라고 자연스럽게 질문이 나오는 것입니다. ‘헛되지 않다면 무엇이 유익한 것인가?’ 라는 논리의 연결입니다. 사실 모든 인간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전도자는 이 질문 속에 특별한 문구 하나를 첨가 시키고 있습니다. 궁금합니다.

 

저는 전도서를 묵상하면서 해 아래라는 단어가 눈에 꽂혔습니다. ‘해 아래라는 말씀이 인생의 허무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에게 전혀 다른 생각을 시도하게 만듭니다. 이 문구를 묵상하면, ‘해 아래가 아닌 해 위는 어떨까? 를 상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전도자의 지혜가 여기에 숨어 있는 것이지요.

 

많은 것을 누리며 경험해 본 솔로몬은 이 땅에서는 인생 허무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됩니다. ‘해 아래세상 학문과 철학과 종교와 재물이 그 답을 주지 못한다면, 새로운 접근법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기도 합니다. 전도자는 그 가능성을 해 위에 존재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풀어 보려고 하는 것이지요.

 

해 아래라는 말은 해 위와 대조를 이루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단절을 뜻합니다. 59:2절은 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 놓았다고 합니다. 결국 죄로 인한 이 단절은 모든 인생에게 허무가 찾아왔음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3:11절에 의하면, 하나님은 그런 단절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영원을 추구하는 목마름이 있습니다. 이것이 확보되지 않으면 절대 허무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내면 속에 영원을 확보하는 것을 구원이라고 부릅니다. 육신은 흙으로 만들어져서 죽어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에 하나님께로 반드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육체도 다시 살게 하시므로, 우리 인생은 허무를 완전히 극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므로 해 아래에 소망을 두고 살 것이 아니라, 해 위의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라는 것이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들어오고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어 버린 것입니다.

 

또한 아담의 죄는 모든 인간이 죄 가운데 태어나서, 죄 가운데 살다가죽고, 그 죽음 이후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사망을 가져 왔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인생에게 전혀 소망은 없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손수 지은 인간이 허무하게 사망에 처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죄 있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동물을 대신 죽게 했습니다.

 

하지만 동물의 피는 인간의 죄를 완전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하나님은 인간의 온전한 죄사함을 위해 하나뿐인 아들을 이 땅에 인간제물로 보내 주셨습니다. 아담 이후 어떤 사람도 죽으면 살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은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살아나셨습니다.

 

예수의 부활은 죄로 인해 들어온 죽음과 사망을 완전히 무력화 시켰다는 증거입니다. 유독 인간의 죽음은 우리에게 인생의 허무를 느끼게 만듭니다. 하지만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세상이 주는 허무를 반드시 이길 수 있습니다이것을 믿는 분들만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주신 사명 깨닫지 못하고, 직분 감당하지 못하면, 헛된 인생에서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시간을 헛되게 보내는 것입니다. 인생이 땅만 바라보면 허무합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주신 것에 대한 감사보다, 어떻게든 노후까지 편히 살 것만 집중합니다.

 

해 아래에서 헛되고 헛되게 살다가, 죽어서도 영원히 꺼지지 않는 사망의 불 구덩이에 던져지는 인생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사 헛된 것으로 끝낼 인생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는 구원자를 주셨습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헛된 인생에서 벗어 날 수 있음을 세상에 전하는 전도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