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6): 모순된 세상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8:9-14


 

우리는 살면서 악이 선인 것처럼 행사하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곧 우리의 가치 체계에 의해 잘못 되었다고 규정됩니다. 더 나아가 법을 통해 처벌되는 질서 있는 세상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간혹 일어납니다 8:9절처럼, ‘사람이 사람을 주장하여 해롭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장한다는 말은 억누른다, 지배한다의미입니다. 지배자의 폭력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경우 허무함을 자아내는 행위가 전 8:10절에서 소개됩니다. 악한 행위를 한 사람이 장사 지내지는 것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히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이게 뭐 그리 대단한 것인가? 라고 질문 할 수 있습니다.

 

고대근동의 관습을 좀 이해해야 합니다. 그들은 사람이 죽고 장례를 지내지 않은 것은 굉장한 재앙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악을 행하던 자가 죽어 장사 지낸바 되었다는 것은 명예로운 대우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죽어서도 사람들로부터 대우를 받는 이런 모순된 현실을 보는 사람들은 인생 허무를 토로하게 만듭니다.

 

이런 부조리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은 과연 살아계시는가? 하나님이 과연 역사의 주권자인가? 하나님은 과연 공의로운 분인가? 하는 의문과 질문들이 생겨 납니다. 더 나아가 이런 것들을 보아온 사람들은 이제는 대놓고 하나님을 무시하거나 더 막 대하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악이 판치는 세상이 되었을까요?  성경은 선악과를 먹은 불순종으로 죄가 들어 왔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그 결과는 사람들로 하여금 선과 악이 무엇인지 알 수는 있지만, 선을 행하고 악을 제어하는 힘을 상실해 버리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해 아래 사람은 모순과 혼돈이 점점 심해지는 그런 세상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8:11절 말씀처럼 하나님이 악을 행하는 사람들을 즉각 처벌하면 더 나은 세상이 왔을 것이라는 소리를 들게 됩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 죄에 대해 즉각 처벌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인간이 창조되는 창세기 1장에서 시작하여 홍수로 망하게 되는 창세기 6장으로 인류의 역사는 문을 닫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과는 전혀 다른 역사가 진행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한 역사를 일컬어 구속의 역사라고 부릅니다.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여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인간의 죄는 점점 더 커져갔지만, 모든 죄를 담당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구원 얻는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8:12절 상반부처럼, 죄인은 백 번이나 악을 행하고도 장수하는 그런 세상을 계속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전 8:14절처럼, 나쁜 사람이 받아야 할 벌을 선한 사람이 대신 받고, 착한 사람이 받아야 할 보상을 나쁜 사람이 받는 삶은, 주님이 심판하러 올 때까지 지속 된다는 것입니다.

 

남은 질문이 있다면,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반드시 있음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8:12절 하반부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잘 될 것 것이며, 13절처럼, 악인들이 이 땅에서 누리는 것은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임을 확신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런 믿음을 성도의 종말론적 신앙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지금은 아닌 것 같지만,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바르게 하십니다. 악이 패하고 선이 승리합니다. 뒤집어진 세상을 하나님이 바로 잡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 날에 예수가 진리라고 믿었던 나의 믿음이 옳았다는 것이 확인 될 것입니다.

 

우리 인생 그리 길지 않는 것 아시지 않습니까? 해 아래 인생이 조금 있으면 진실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예수를 그냥 선한 선생으로 생각하고, 이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을 무시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곧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조금이나마 두려워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둘째, 진리를 찾는데 집중했으면 합니다. 좋은 방법 중 1) 자꾸 세상 사람들이 쓴 책에 의존하여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냥 성경을 보았으면 합니다. 진리는 오직 하나님 말씀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지 못하게 만드는 질문들을 기억하면서, 한번 통으로 성경을 읽어 보기 바랍니다.  

 

성경을 읽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면서 세상 이야기만 쌓아가면 진리를 아는 시간은 더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읽어도 이해 되지 않는 것들은 당연히 의문을 가지십시오. 하지만 말씀이 거짓이고 하나님의 말씀임을 부인하지는 않으려는 태도를 간직하기 바랍니다. ‘이해는 안 되지만 뭔가 있어라는 자세를 유지하라는 뜻입니다.  

 

내가 이해가 안 된다고 진리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미성숙한 태도입니다. 한번 성경을 통독했다고 답이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안 보일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세 번을 통독해 보기 바랍니다. 예수를 믿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에 대한 답을 찾게 될 줄 믿습니다

 

2) 진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예배자의 귀에 들려집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자세입니다. 예배는 사람을 만나러 오는 시간이 아닙니다. 내가 인정하든 안 하든 만 왕의 왕 되신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얼마나 예배에 집중하느냐는 것입니다.

 

특히 말씀에 대한 집중은 중요합니다. 우리 마음 밭에 뿌려지는 생명의 씨를 사탄이 와서 주어가지 못하게 막아 주기 때문입니다. 아멘으로 응답하는 것은 내 마음을 훔치러 오는 사탄에게 들려주는 경고음입니다. 성도는 내 마음을 사탄에게 내어 주면 안됩니다. 예배 시간에 없어야 하겠지만 살짝 불평이 생기는 순간이 있습니다.

 

말씀이 잘 이해가 안 되는 경우도 있고 그런 날도 있을 것입니다. 이때 사탄이 내 속에 생각을 집어넣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사탄을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성령님 말씀이 내 귀에 쉽게 들려 올 수 있게 목사님의 입술을 주장하여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 태도가 매 순간을 진리에 더 가깝게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모순된 세상을 살아 내려면 하나님은 반드시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악이 범람하고 정의를 찾기 어려운 세상에서 말씀만 따라야 합니다. 진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임을 내 입술에서 고백 되어야 합니다. 진리가 승리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매 순간을 성령에 의지하며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