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8): 지혜자로 살아야 합니다  

10:2-3

 


줄을 잘 서야 한다는 말을 듣고 사는 사람들이 한국인입니다. 선택을 잘해서 좋은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뜻이지요. 때로는 줄을 잘못 서서 후회하고 바꾸기도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조그만 도시 이타카에도 줄을 잘 서야 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이타카 하이스쿨과 웨그만스를 지나갈 때 차가 막힐 때가 있습니다. 차선을 옮겼는데 그 순간부터 잘 안 빠지는 날이 있습니다. 살다 보면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잘 하는 것인지 잘 모를 때가 허다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참 편리한 것 같습니다.

 

10:2절을 보면,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오른쪽에 있고, 어리석은 자의 마음은 왼쪽에 있다고 확실히 구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른쪽에 성공과 번영이 있고, 왼쪽에는 실패와 불행이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지혜자는 옳고 바른 것을 추구하고, 어리석은 자는 잘못된 것을 지향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새번역은 지혜로운 사람의 마음은 옳은 일 쪽으로 기울고,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은 그릇된 일 쪽으로 기운다고 번역합니다. 그렇다면 전도자는 우리에게 지혜로운 자는 누구라고 말합니까? 첫째, 악을 버리고 바르게 살려는 마음과 의지를 늘 가진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많은 지식으로 세상에서 부와 명예를 누릴지라도, 마음이 악한 것을 향해 간다면 지혜자는 아닙니다. 어리석은 자에 불과합니다. 지혜는 박식함과 똑똑함, 학문적 성과 등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집니다. 지혜자는 한방에 나를 무너뜨리는 불의와 악을 따라가는 생각을 내 속에서 몰아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할 수 있도록 가장 직접적이고 실제적으로 도와 주는 것이 하나님 말씀입니다. 절대로 마음속에 두어서는 안 되는 것들과 행동하지 말 것들에 대한 리스트를 확실히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하나님 말씀을 매일 찾고 묵상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이 쓰인 시대와는 너무 다른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성경에 전혀 기록되지 않은 것들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것들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8:12-14절을 보면, 육신대로 살지 말라고 합니다. 육신대로 살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내 힘과 의지로도 죄를 이길 수도 없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를 마음으로 믿고 입술로 고백할 때 성령을 부어 주십니다. 이 성령은 우리 속에 내주하며 도와줍니다. 그 중 하나는 육체가 우리를 죄로 몰고 갈 때 지혜를 주어 피하게 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승리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내 속에 있는 성령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동으로 개입하느냐? 고 물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죄를 짓는 것에 대해 자동으로 막아주고 처리하는 분은 아닙니다. 성령은 그분의 존재를 인정하고, 능력을 의지하려는 사람들에게 다가오셔서 역사하십니다. 넘어지고 쓰러지는 나를 도와달라고 기도로 요청할 때 응답하십니다. 악을 이길 수 있게 성령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둘째, 지혜자는 자신의 의지로는 육신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기도로 성령의 능력에 의지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모든 성도가 죄와 악 앞에서 성령님께 도와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렇지만 육신이 연약하여 무너져 버리고 죄를 짓는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10:3절은 그 근원적 이유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전도자는 지혜자가 아닌 우매한자가 누구인지 말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자신의 우매함을 모든 사람에게 드러낸다고 합니다. 아니 이런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할 것입니다. 1) 본인 경험이나 지식으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기에 남의 생각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입니다.

 

2) 중요한 일에 기도 합니다. 하지만,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지는 않는 경우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판단이 성공으로 이끌었다고 너무나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나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남들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맞을 때도 있지요. 자신만 앞세우는 태도는 하나님도 사람들도 가까이 하기 힘들지요.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스스로 남들에게 알리게 된다고 전도자는 말해줍니다. 결국 성도가 기도하는데도 육신의 정욕에 이끌려 넘어지는 근원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지 않은 것입니다. 성도이기에 기도는 합니다. 하지만 성령님을 더 인정하기 보다, 내 경험과 지식으로 모든 일을 이끌어 가려는 태도가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 성령님은 사람의 종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역사할 수 없습니다. 겸손은 내 속에 계시는 성령이 나를 인도하는 분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늘 내 앞에 주인으로 서실 때만 나를 이끄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생각을 뒤로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하는 겸손한 사람에게, 성령은 죄를 이기고 승리하게 능력을 주십니다.  

 

늘 아버지의 뜻을 구하며 기도하는 겸손한 예수님의 모습을 모두가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성도는 지혜로운 자로 살아야 합니다. 말씀에서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해 아래에서 정의를 실천하십시오. 진정으로 성령을 믿고 의지하는 겸손한 기도의 사람이 되십시오. 모든 일에 성령의 도움으로 사탄이 주는 이생의 자랑과 육신의 정욕을 넉넉히 이기는, 지혜자로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