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2):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신 이유
창5: 1-3
오늘은 주님이 이 땅에 인간이 되어 찾아오신 것을 축하하고 감사하는 날입니다. 다른 어떤 것들보다 나누어야 할 주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그것은 왜 주님이 우리를 찾아왔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왜 예수님이 우리에게 찾아 오셨을까요?
첫째, 우리 속의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을 아담의 불순종으로 잃어 버렸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 땅에 꼭 와야만 했습니다. 창세기 1-2장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 되었습니다(창 1:27; 5:1). 창조하신 후에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창1:31)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은
유일하게 하나님의 선하심을 반영하는 탁월한 피조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인간을 만들고 생기를 불어 넣으시기에
영혼을 가진 자가 되었습니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하나님으로부터 생기를 받음으로 산 영(living soul)이 됩니다. 그 영혼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자리 잡게
됩니다. 이것이 동물과 인간을 구별하는 가장 큰 특징입니다. 이렇게
창조 된 인간은 깨달음과 이성을 가지고 동물들과 구별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또한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동물들보다
뛰어나게 지혜를 담고 있었기에 인간은 동물들의 이름을 다 짓을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형상은 하나님을 아는 것과, 알고 싶어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따르고, 하나님과 교제하고 싶은 속성을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무엇인가를 알게 해 주었습니다(의로운 삶). 또한 인간으로
하여금 삶 전체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유 의지를
하나님께 복종 시키게 만들어 순종의 사람이 되게 했습니다.
그런데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
모습이 가장 먼저 창세기 4장에서 발견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일그러질 때 사람과의 관계도 파괴 되어짐을 보여줍니다. 가인이 자신의 사랑하는 동생을 죽이는
살인입니다. 파괴된 하나님의 형상의 결과가 얼마나 인간의 극악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됨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둘째,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후손에게
물려 줄 수 없는 아픔을 아시기에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야 했습니다. 창세기 5장은
타락 이후 하나님의 형상 이해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장입니다. 아벨이 죽은 후 아담은 아들 셋을
낳게 됩니다. 그런데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다고 말합니다.
아담이 타락 후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 자신의 형상을
따라 아들을 낳았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단지 외형적 모습의 의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 아담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은 것과 상이한 것이고 그 속에 주어진 하나님의 형상에 무엇인가 문제가
발생했다는 뜻입니다.
아담이 불순종하게 되자 가장 먼저 우리 속에서 일어난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 아름다운 것이 우리 속에서 파괴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단지 우리 인간은 동물들과 구별되는
특성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이는 자연인이 가지는 성품으로 합리성과 이성을 말합니다.
인간만이 갖는 선택의 자율성과 결정력, 그리고 자신이 결정한 것에 대한 책임성이 포함됩니다. 이런 것들은
타락으로 인해서도 ‘상실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심하게 부패한 것이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통해 주어진 것이기에 이들 역시 타락으로 인해 분명히 부패 된 모습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은 것만해도 슬픈 일인데 하나님의 속성을 이어줄 수 없다는 것이 우리 인간에게는 너무 슬픈 일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 거룩을
향한 열정과 의로움을 상실하게 됩니다. 또한 이성과 양심, 감성을
포함한 어느 하나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영과 혼이 이 상태가 된 인간은 맹목과 무지에
시달리게 됩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죄와 무질서만 남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죄의 종 노릇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어 더욱 악한 모습이 되어 갔습니다. 우리 인간이 앞으로 주님이 오실 때까지 얼마나 파괴 되는 모습일까요? 짐승의
수준 일 것입니다. 말도 안 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모습입니다. 이 안타까움 때문에 주님은 우리에게 오셨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기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인간이 되셔서 오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고 나의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할 때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회복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처음 아담은 자신의 이웃인 모든 동물들에게 맞는 이름을 선사하였습니다. 자신의 갈비뼈에서 만들어진 가장 가까운 이웃인 여자를 자신의 몸으로 여기는 사랑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형상대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결국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이웃들에 대한 사랑의 모습을
나타내며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향하여 가는 바른 방향이 하나님의 형상 속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이것으로 인해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바른 태도를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의 영혼 속에 있는 모든 기능들을 온전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성과 의지가 하나님에
대한 순종의 바른 모습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예수를 믿어 구원받지 못하면 잃어버린 하나님의 아름다운 형상을 회복하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영원히 찾지 않으며, 찾지도 못하고, 관계의 단절을 맛보며 살게 됩니다. 죽음과 사망이 지배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만이 있습니다. 죄책으로 몸부림치며, 방향을 모르고 방황하는 타락한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에 의해서 회복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님의 형상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히1: 3). 그분을 바라볼 때 에덴에서의 완전한 인간의 모습이 어떠했으며 또 얼마만큼 우리가 변질 되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은 예수님이 오시고 난 후로 미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인류는 죄 지은 아담 이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죄 없는 인간의 몸으로 오심으로 인해 인류는 다시 아담에게 주었던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을 이 땅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인간으로 죄 없는 분이시기에 하나님의
완전한 형상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인간이 되신 주님을 이 땅에서 보았기에 예수를
믿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분이 나를 위해 오셨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형상이 회복된 아름다운 모습이 우리 삶에 나타나는 성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