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9): 사람의 본분을 다하는 것입니다.
전 12:13-14
다사다난했던 2023년을 보내는 마지막 주일입니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 있을 줄 압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 났고, 많은 감사할 일들이 우리 교회와 가정에 있은 줄 믿습니다. 올해보다 더 주시고 더 잘되게 할 것을 믿고 감사하며 새해를 맞이하는 성도님들 되기를 바랍니다.
몇 주 동안 전도서를 통해 인생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전도자는
해 아래 인생은 허무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생을 비관주의자나 염세주의자로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허무를 강조하는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이 가진 한계를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전도자는 하늘 아래가 아닌 하늘 위의 소리를 들려 주려는 것입니다.
1) 인생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행형입니다. 이 땅에서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으로 이어가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기억하며 살도록 전 3:11절을 보면,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언제 주었을까요? 사람을
창조할 때 호흡으로 불어 넣어준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사탄의 유혹을 받아 타락할 때 죄로 인해 영이 죽습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기억도 않고 점점 시간이 가면서 알지도 못하게 됩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기 위해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온 것입니다.
우리에게 온 예수를 만나지 못하면 해 아래 살다 죽은 후에도 하나님과 영원히 단절된 사망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를 만나면 달라집니다. 죄 용서함을
받고 헛된 인생이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아 복된 인생이 됩니다. 그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가
우리를 찾아온 이유입니다.
2) 인생은 공허하지 않고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인생이 공허하다’ 고 말합니다, 허전한 것입니다. 누군가 함께 있어야 하는데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없습니다. 불순종의 죄로 인해 에덴에서 추방당해 하나님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는 공허한 인생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한 것이 있습니다. ‘흩어짐을 면하자’ 라고 말하며 바벨탑을 쌓기 시작합니다. 혼자 사는 것이 너무 힘들기에
모여 살아 공허함을 피하자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성벽을 쌓고 모여 살지만 그곳은 에덴으로 변하지
않습니다. 높은 탑을 쌓아 스스로 하나님을 만나려고 종교를 만들기도 했지만 실패합니다.
공허한 인생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에덴에서처럼 하나님이 동행하도록 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을 본 사람들은 너무 기뻤습니다. 슬픔이 기쁨으로, 아픔이 치유로, 회복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면서도 우리가 하나님과 늘 동행하도록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은 우리 속에 늘 계시며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든 함께 하십니다. 힘들고 아프고 낙담될 때 위로하시고, 이끄시고 인도하시고 능력을
주십니다. 그래서 믿는 자에게는 외롭고 쓸쓸하고 허전하고 우울하고 공허 할 수가 없습니다. 늘 우리 곁에는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함께 하면 해 아래에서
주신 것을 가지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즐겁게 살아갑니다. 우리에게 주신 것은 돈이 아니라, 풍성입니다. 전도자가 말하는 사랑하는 이는 내가 알고 만나고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모두 즐겁게
사는 삶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공허하지 않은 삶입니다.
3) 마지막으로 전도자는 인생은 의무를
다해야 함을 알려 줍니다. 전12:13절을 보면,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합니다. 결국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사람이
이 땅에서 해야 할 의무(NIV)입니다.
인간이 의무를 다하는 것은 예수 안에서 거듭나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안 믿는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도 모르고 살다가 죽는 순간에 가서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명령을 지키는 시간이 강제로 주어지게 됩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은 어떤 사람도 예외 없이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너무 늦은 시간입니다.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두려움과 그 결과를 따라야 하는 지킬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명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예수를 영접하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갑니다. 세상에서는 ‘잘 되는 것’이
영광이라 하지만, 성도에게는 다릅니다. 나의 성공을 전부
하나님께 돌려 드리느냐입니다.
재능과 물질을 가지고 살아도 하나님 나라 위해 투자하고 나누지 못하면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명령에 따라 사는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누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나에게 주신 이유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저 편하게 살고 부러움을 받는 사람으로 살라고 주신 것 아닙니다.
성도는 세상과 구별되도록 불림을 받았습니다. 세상에는 전쟁과
폭력, 빚으로 팔려가고, 배고파하는 이웃들이 아직도 너무
많습니다. 물질이 아니라도 관심과 법률적 도움으로 억울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다 돕지는 못하지만 요청을 받는 곳에는 기도와 선교헌금이 빠짐없이 보내지면 좋겠습니다.
인간의 의무를 다하는 삶은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까? 하나님만 바라보기 바랍니다. 사실 힘듭니다. 해 아래 삶은 너무 사람들과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을 이끌어 가시고,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기에 나쁜 결과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옳습니다’ 라고 수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입니다.
다음으로, 인간의 의무를
다하는 것은 하나님 명령을 지키는 것이라고 전도자는 말합니다. 의무를 다해야 하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전 12:14절을 보면,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살다가 사라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 내뱉는 말 한마디도 시기와 질투와 냉대와 핀잔과 미워함인지를 판단하는 절대자 앞에 서야 합니다. 전도자는 인생들에게 심판을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질 2024년 새해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 생각을 바꾸고, 말을 바꾸고, 행동까지 변화되어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비록 우리가 해 아래 헛되고 공허한 인생 가운데 살지라도, 해 위로부터 공급되는 풍성함을 예수 안에서 즐기고 누리는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