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7): 무례하지 않습니다  

고전 13:5

 


선교 바자가 있는 날입니다. 성도님들의 수고와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성경은 사랑에 대해 2 가지를 말합니다. 누구를 사랑할 것인가에 대해 말해줍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이 지으신 그 이웃들을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 다음은,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지금 이 사랑의 본질에 대해 몇 주 동안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은 6번째 시간으로 사랑은 무례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의 의미부터 살펴 보려고 합니다. 사람에게 합당한 대우를 해주는 것을 라 합니다. 그렇다면 무례하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부당하게 대우하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기초가 되는 기본 예의가 없다는 뜻입니다.

 

가정에서 무례함이 발견됩니다. 집에서 키우는 동물도 어릴수록 더 잘 보살피고 함부로 다루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린 자녀들을 내 소유라는 생각에 함부로 핀잔 주고, 욕하고 때리기도 합니다. 부모 마음에 안 들면 소리치고 야단칩니다. 그뿐 아니라 부부 사이에도 서로 상처 주는 말이 오고 갑니다.

 

믿음의 공동체는 어떻습니까? 서로 존중하고 사랑해야 할 형제자매들입니다. 그런데 좋은 대학을 나왔다. 사회에서 높은 지위에 있다 돈이 많다 등의 이유로 사람을 무시하는 무례한 행동을 범하기도 합니다. 사람을 무시하는 그런 태도를 가지고 있다면, 21세기를 살면서도 종이나 노예를 다루던 전근대적 사고를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 시간은 가정이나 교회에서 내가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는지를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나를 무례히 대해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으신지요? 꼭 그렇게만 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나도 상처를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무례함이 우리 모두에게서 떠나갈 줄 믿습니다.    

 

서로에게 무례함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쌍방간에 사랑과 노력이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젊은이들은 어른들을 존중하며 편안히 모셔야 합니다. 한편, 나이 드신 어른들도 어린 사람들을 따듯하게 대하는 것이 무례하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쌍방간의 이해와 사랑이 서로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것을 피하는 길인 것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무례함이 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를 좀더 나누려고 합니다.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을 대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손에 돌을 들었습니다. 당시 정당한 법에 의한 정죄 행위입니다. 아무도 잘못된 행위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녀를 향해 용서와 사랑의 마음을 품었습니다.

 

첫째로, 무례하지 않는 삶은 법보다 사랑으로 먼저 사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정죄보다는 용서를 허락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에게 가능 하려면 세상 가치가 나의 판단 기준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남을 심판하고 정죄하기보다, 생명을 살리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있어야 합니다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께로 오자 사람들은 가라고 야단치며 무례하게 대합니다. 당시 어린이들은 무시의 대상이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무례하게 사람을 대하는 마음 바닥에는 나보다 못하다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성도는 둘째로, 세상에는 무시해도 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주님의 실제적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어린 아이들은 물론 주님은 세리와 창녀들 조차 무례하게 대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시간에 물을 길러 온 남편 다섯인 수가 성 여인을 기억하는지요? 그녀에게도 주님은 외면하지 않고 다가 가셨습니다. 셋째로, 세상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과 달리 주님이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우고 훈련해야 합니다.

 

세상은 죄 지은 사람들, 허물과 약점이 있는 사람들, 약하고 돈 없고 권력이 없는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은 무례함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 한번이라도 그들을 멸시한 적이 없습니다. 죽어 마땅하고 진멸의 대상인 땅 끝의 이방인들인 우리들까지도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도저히 사랑 받을 수 없는 우리를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자로 대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이것이 다른 사람을 무례하게 대하지 않는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그 사랑에 감격해서 가정에서 무례하게 자녀를 대하는 모습이 사라져야 합니다. 교회에서 서로 무례하게 행하는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이 변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전부 사람 사이에 무례함을 이야기 했습니다. 남은 시간은 하나님에 대한 무례함을 나누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심판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신적이 있는지요? 인간의 무례함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담 이후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가 분명합니다. 그런데 사람들로부터 창조주 소리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창조가 아닌 엉뚱한 이야기를 신뢰합니다. 죄와 사망 가운데 있는 인간을 구원하려고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으로 온 것을 무시합니다.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영생을 허락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살아나신 예수를 부인합니다.

 

예수 없이도 구원이 있다는 헛소리를 지어냅니다. 지옥과 하나님의 심판을 농담으로 여깁니다. 계시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 말씀까지도 인간 스스로가 창작한 책 중의 하나로 취급합니다. 이런 것들이 오늘 날 교회 안에서도 저지르고 있는 하나님께 대한 무례함입니다.  

 

한 가지를 더 생각 해 보려 합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세상에서 복음을 지켜 나가도록 권위를 부여하였습니다. 그런데 잘못된 신앙관을 가지고 자신의 것이 맞다고 주장한다면,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도전이며, 명백한 죄이며 무례함입니다. 하나님을 완전히 무시하는 사람에게서 하나님에 대한 어떤 사랑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 사랑과 십자가 구속의 사랑을 아는 성도가 되었다면, 더 이상 이웃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무례한 모습으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온전하신 하나님의 사랑만이 우리 가정에서 교회에서 무례함을 물리칠 수 있음을 믿으시는지요? 하나님과 이웃에게 무례하지 않게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