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의 때(1): 믿음의 시련이 있습니다  

                                       벧전1:1-9

 


6월에 접어들면 늘 마지막 때에 관한 말씀을 나누어 왔습니다. 올해는 초대교회가 품고 있었던 종말에 관한 신앙을 베드로 사도를 통해 살펴 보려고 합니다. 가장 먼저 베드로가 서신을 기록하던 당시 시대적 배경을 벧전1:1절은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이 여러 지역으로 ‘흩어진 나그네’라고 합니다

 

왜 그리스도인들이 유대를 떠나 나그네로 살았는가는 행 8:1절은 말해 줍니다. 스데반 집사의 일로 교회는 박해를 당하게 되고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로 흩어지게 됩니다. 벧전 5:13절에 의하면 베드로는 ‘바벨론’으로 알려진 로마에 머문 것으로 나타납니다.

 

기독교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 사도는 마지막 수년을 로마에 머물다 AD 68년에 순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순교하기 4년 전 64년에 로마에 대화재가 발생합니다. 네로 황제는 그리스도인의 소행으로 몰아 대박해가 일어납니다. 당시 소아시아에 흩어져 살던 성도들에게로마 박해 소식이 전해졌고 커다란 불안과 두려움이 됩니다

 

벧전 4:12절에서 ‘불시험’으로 언급되는 로마의 박해를 배경으로 베드로서가 기록 됩니다. 사실 고난은 과거나 지금이나 성도들에게 난제입니다. 초신자는 예수를 믿는 다는 것 때문에 고난이 생기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느 정도 예수를 믿은 분들은 신앙생활 중에 고난이 있다 것은 알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고난이 내게 오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고난 중에는 힘겨워합니다.

 

우리는 이미 요한계시록을 통해 앞으로 성도들에게 일어날 핍박과 환란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또 주님 오시기 전에 온 세상에 발생할 영적 혼란, 전쟁과 천재지변이나 자연재해 등에 대해서도 일곱 가지 인을 통해 이미 살펴 보았습니다. 세상 마지막에 대한 지식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세를 바라보는 믿음의 시각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벌써 우리는 지금까지 경험 하지 못했던 것들을 주위에서 실감 있게 느끼고 있습니다. Christmas 대신 holiday라는 용어를 흔하게 접하게 됩니다. 크리스천들은 편협적이고 독선적인 신앙관을 가진 사람으로 인식되곤 합니다. 우리는 이런 변화를 보면서 무엇을 느낍니까? 단지 세상이 변했다고만 생각하는지요?

 

왜 그렇게 세상이 변해가고 있는지에 대해 성도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첫째, 벧전 1:5절을 보면 베드로 사도는 자신들이 ‘말세’를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말해 줍니다. 이미 예언된 것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죄로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는 순간부터 마지막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둘째, 말세에는 반드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으로 인해 시련이 있을 것을 말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천 년 전 성도들은 박해가 일어나자 마지막 날이 가까왔음을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좀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너무 긴 시간 동안 주님의 재림은 연기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역사는 핍박과 환란과는 반대로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세상 역사를 보십시오. 사람들을 억압에서 해방시키고 소수인들의 종교와 믿음의 자유를 허락하기 위해 투쟁했습니다. 아직도 완전하지 못하지만 해방과 자유를 실제로 주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스도인들은 역으로 핍박을 당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이해가 잘 안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2가지 이유)

 

첫째 이유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성도의 삶이 원인이 됩니다. 초대교회 당시 유대를 떠나 소아시아 이방 땅으로 흩어졌습니다. 그곳에 살아가는 성도들은 사람이 만든 우상들을 섬기고 음란하고 방탕한 삶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았습니다. 성도의 거룩한 삶 그 자체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사는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날에도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들과 같은 생각을 갖기를 강요합니다. 다른 종교, 다른 신이라는 용어보다는 같은 것을 서로 다르게 보는 관점의 전환을 제안합니다. 절대 진리를 인간의 관점으로 끌어 내리려 합니다. 점점 세상과 구별되어 사는 크리스천 공동체는 세상의 타겟이 될 것입니다.

 

둘째 이유는 사탄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간이 점점 끝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12:12절을 보면, 마귀가 불 가운데 던져질 그날이 점점 다가오기에 더 많은 사람들을 데려가기 위해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입니다. 누가 지옥 불에 가려고 하겠습니까? 그러니 거짓 선지자를 일으켜 미혹합니다. 또 협박과 핍박을 해 옵니다. 성도들은 이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어야 벧전 1:6절처럼 잠시 근심하지만 크게 기뻐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상과는 달리 성도가 시련 중에 기뻐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1) 벧전 1:7절에 의하면, 성도는 시련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할 때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얻기 때문입니다. 벧전 1:3, 4, 5절은 썩지도 쇠하지도 않는 산 소망을 가지고 핍박을 이긴 성도들이 결국 받게 될 것은 하늘에 간직된 유업, 즉 구원임을 구체화 시켜 줍니다.

 

2) 벧전 1:2절에 의하면, 말세에 닥쳐올 시련을 잘 견딜 수 있는 것이 하늘로부터 거듭난 자들에게 주어지지 때문입니다. 어려운 가운데 하나님은 놀라운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죽을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오직 주의 사람들만이 누리는 평강을 더해 주신다고 약속합니다. 게다가 벧전 1:5절에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것들은 장차 받게 될 시련 중에서 성도가 찬송을 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끝까지 영생으로 이끄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때문에 받게 될 어려움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영광입니다. 이미 말세를 살고 있습니다. 장차 올 믿음의 시련을 잘 통과하는 거듭난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