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의 때(6): 믿음으로 마귀를 대적하라
벧전 5:8-9
오늘은 싸움
이야기를 좀 나누려고 합니다. 살다가 한 번씩은 싸움을 해 보셨을 텐데요. 형제끼리 싸우기도 하고 친구와 주먹다짐도 합니다. 칼로 물 베기라는
부부싸움도 있습니다. 성도간에 싸우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싸우지 말아야 하는 것이 전제입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사랑해야만 하는 상대들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반드시
성도가 싸워야 하는 전쟁이 있습니다. 영적 전쟁입니다. 특징이 있습니다. 상대가 눈에
보이면 주먹질이나 발로 차기도 할 텐데 영적 존재라 그럴 수도 없습니다. 사탄의 급소가 보이는지요? 싸우면 백전백패가 분명하기에 싸울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교회 다니는
성도들조차도 어떻게 싸우는지 모르는 분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영적 전쟁에서 싸우는 3가지 방법에 대해 좀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 영적 전쟁은 주님이 이미 승리했기에 우리는
방어를 잘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사탄의 머리를 짓밟아 버렸고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승리를 이미 이천 년 전에 선포하셨습니다. 패배한
사탄은 영원한 불 못에 던져지기 전에 최후의 발악으로 벧전 5:8절에 따르면, 먹이감을 찾아 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잘 방어하기 위해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근신:
벧전 4:7)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깨어 있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마귀가 늘 내 주위를 돌며 기회를 살피고 있음을 인식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잠깐 경계를 내리는 순간에도 어디에서 펀치기 날아 올지 모릅니다. 그런데 마지막 때의 마귀의 공격은 급소를 노리는 큰 것 한 방입니다. 왜냐하면
적의 입장에서는 마지막 최후 공격이기 때문입니다.
친절하게
베드로 사도는 마귀의 마지막 공격이 어떻게 진행될지, 더 나아가 막아내는 방법까지도 알려 줍니다. 벧전 1:6절에서 공격은 여러 가지 시험으로 올 것이다. 벧전 4:12절은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어려운 불 시험이라
합니다. 그래서 벧전 2:5절에서는 불에도 잘 견딜 수 있는
재료인 산 돌이신 예수로 지어진 신령한 집으로 든든히 세워질 것을 베드로 사도는 권고합니다(구원의 확신).
둘째, 성도를 향한 적의 마지막 공격 지점이 어디인지
잘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아담 이후 우리 인생을 향해 공격 해오던 마귀의 공격 패턴을 보기
바랍니다. 애써 모은 재산을 공격대상으로 삼습니다. 건강을
무너뜨립니다. 성도들이 이 땅에서 누리는 것들을 빼앗아 갑니다. 그래서
사탄이 노리는 것이 생명과 재산과 건강인줄 착각합니다.
사실은 아닙니다. 단지 최후 공격을 위한 선제 타격일 뿐입니다. 성도들의 소중한 것들을
빼앗아 가는 목적은 하나님이 자신을 보호해 주지 않았다고 원망하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사탄이
노리는 최종 목표는 분명합니다. 요10:10절에 의하면,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서운한 마음이
들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점점 멀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당하는 고통으로 인해 영원히 누릴 천국의 기쁨을 잊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사탄이 우리들에게서 최종적으로 노리는 것은 천국에 들어가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 빼앗고 무너뜨리기 위해 유혹도 하고 위협도 하고
다양한 포탄을 인생 가운데 쏟아 붓는 것입니다.
그래서 벧전 5:9절은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살아나셨다는 이 믿음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림은 내 죄를
용서하기 위함이요. 다시 살아나심은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함임을 믿어야 합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 잃게 만들기 위해 마귀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데려 갈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땀 흘리고 밤잠 못
자며 벌인 재산도 하루 아침에 가져갑니다. 건강도 잃게 만듭니다. 앞으로도
계속 무차별적으로 내 것을 잃게 하고 강제로 빼앗을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자신이 배반했던 경험이
있기에 성도는 그런 고난과 아픔 가운데도 믿음만은 무너지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이 전쟁에서 믿음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요? 벧전
4:12절과 이어지는 절에서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고난을
즐거이 받으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마지막
때에 성도가 받는 고난은 지금까지 살면서 내 믿음을 드러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들을 최종적으로 모두다 떼어 내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내 속에 있는 예수를 드러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성숙).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하나 들어 보려 합니다. 전쟁은 고지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고지’는 흙으로
덮어 위장을 합니다. 하지만 속은 어떤 포격에도 무너지지 않는 콘트리트로 만듭니다. 우리의 믿음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예수를 믿는 순간 거듭나고,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우리 속에 자리잡습니다.
하지만 이
믿음은 온갖 비본질적인 물질 건강 명예 신념 가치관 등으로 둘러 싸여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다 떨어져
나가야 점점 예수를 나의 구주로 마음으로 믿고 입술로 고백할 때 생겼던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온전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 역할을 해 주는 것이 바로 고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인생에게
고난(징계)을 주십니다.
믿음이 있어야
사탄의 마지막 공격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벧전 2:5절처럼, 우리의 믿음은 가장 강하고 단단한 산
돌이신 예수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보십시오.
로마 병정의 휘두르는 채찍에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손에 못을 박아도 우리를 향하신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죽임을 당해도 사망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가장 강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임이 증명되었습니다. 마지막 때에 사탄은 예수를 붙잡지 못하도록 믿음을 흔드는 무자비한
공격을 가할 것입니다. 고난은 힘들지만 하나님 아버지가 함께 해 주시고 죽어도 산다는 믿음을 강하게
하는 은혜의 시간입니다. 굳건한 믿음으로 마귀를 넉넉히 대적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