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의 때(7): 말씀이 늘 생각나는 사람이 되십시오 

벧후 1:12

 


우리가 살펴 보고 있는 베드로 서신의 배경은 심한 핍박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주님이 곧 오실 것을 믿고 참아내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기다리던 주님은 오지 않고 고난만 더해가자 점점 재림의 진정성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더 큰 문제는 재림의 문제를 넘어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에 대한 의심으로 확산되기 시작합니다.

 

또한 베드로 사도의 개인적 형편은 벧후 1:14절을 보면 이 땅에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음을 직감하게 됩니다. 이런 현실들을 보면서 벧후 1:12절에서 베드로 사도는 주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들에 대해 확실히 설 것을 당부합니다. 더 나아가 진리의 말씀이 생각나기를 당부합니다. 말씀이 생각날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자신의 경험 때문입니다.

 

26:31절을 보면, 십자가 사건이 있기 전에 예수님은 제자들 모두가 자신을 버릴 것을 예언합니다. 26:34절에서는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할 것을 말씀합니다. 실제로 나중 배신이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호언장담까지 한 사람이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사람이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충동 때문입니다(근거:다음 두 구절).

 

26:33절에서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또 마 26:35절에서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그의 말을 살펴보면 남들과 다른 자신을(나는, 내가) 강조합니다. 충동적인 신앙은 사람들로부터는 참 멋진 믿음을 가졌다는 칭찬을 들을 수는 있습니다.

 

이런 일시적이고 충동적인 고백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는 말도 듣지 않으려 합니다. 주님을 무시 합니다. 얼마나 슬프고 어리석은 모습입니까? 놀라운 것은 우리도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고 싶은 충동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 인정하는지요? 그렇다면 이런 충동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말씀 안에서 훈련 받지 않은 우리의 인격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벧후 1:5-7절에서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더하라고 말합니다. 성도님들은 우리 교회 사명 중 하나인 말씀으로 훈련 받기를 즐거워할 줄 믿습니다.

 

둘째, 사탄의 놀음에 놀아나기 때문입니다. 누가는 베드로의 배신 뒤에 사탄이 있음을 알려 줍니다. 22: 31절을 보면,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손아귀에 넣어(새번역) 제멋대로 다루겠다는 뜻입니다(공동). 욕심을 미끼로 사탄이 우리를 충동시킨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셋째, ‘말씀이 생각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벧후 1:12절은 물론 13, 15절에서 말씀이 생각나게 하려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늘 생각하는 것은 바람에 배가 떠밀려 가지 않게 닻을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만이 일시적이고 충동적인 감정에 만족하는 가장 위험한 신앙생활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만들어 줍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내 감정과 지적 능력, 또 강한 나의 의지에 지배 받지 않으려고 늘 훈련 받는 과정입니다. 내 감정이 만족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은혜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해도 성령의 역사는 진행되고 있습니다. 행함이 없다고 말하는 곳에도 하나님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제 말씀이 내 삶에서 생각나기 위해 해야 할 것들을 나누려고 합니다. 1) 하나님 말씀이면 무조건 순종한다는 신앙습관을 기르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찬양과 기도도 말씀과 친교가운데 아무런 감동 없이 흘러 갈 때가 있습니다. 성경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아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향해 하라는 그 말씀에 순종하면 내 영혼에 말씀이 살아나는 역사가 있을 줄 믿습니다.

 

2)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는 시간 속으로 나를 이끌고 들어가야 합니다. 다 함께 찬양하고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합니다. 나는 그냥 시간(크로노스)만 흘러 갑니다. 그런데 치유의 역사가 다른 성도에게 있습니다. 잃어버린 영혼이 회개하고 돌아오고 있습니다. 기도 응답에 감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이 만족스럽지 않고 뭔가 채워지지 않을 그 때에는 반드시 나를 은혜의 시간으로(카이로스) 끌어 넣어 달라고 성령님께 기도하는 성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기도의 자리). 

 

3) 말씀을 듣고 반응하는 습관을 완전히 새롭게 해 보기 바랍니다. 말씀 가운데 씨 뿌리는 비유가 있습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처럼 사탄이 와서 얼른 빼앗아 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 내게 주시는 것임을 깨닫고 아멘으로 해 두기 바랍니다. 그러면 사탄이 말씀을 훔쳐 갈 수 없어 내 속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줄 믿습니다.

 

마지막 4) 주님을 늘 생각하고 닮기를 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말씀이 늘 생각나는 삶을 산 분이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40일 동안 금식하는 예수님께 다가갑니다. 인간이 가장 참기 힘들고 가장 갖고 싶은 세상 욕망을 미끼로 던집니다. 예수님은 어떤 환경과 심리 상태에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늘 말씀이 생각났고 말씀으로 사탄을 물리치는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만족을 추구하는 인격의 영역이 있습니다. 이 만족을 감정이든 지적 영역이든 의지적 결단에만 의지한다면 너무 위험합니다. 일시적이고 충동적인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위험을 극복해야 합니다. 오직 말씀만이 나를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말씀을 평생 읽고 암송하고 묵상한 것을 나누는 분들이 더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나를 드러내고 내 생각이 하나님 보다 앞서 가는 충동적인 신앙은 하나님께 교만이며 말씀에 대한 불순종임을 베드로 자신의 경험을 통해 알려 줍니다. 달지 않은 말씀일지라도 내게 준 것으로 받아들이고 잘 깨달아 열매 맺는 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말씀이 생각나서 그 말씀에 지배 받고, 말씀으로 승리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