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복(1): 선택입니다
시 1:1-6
종말에 관한 시리즈를 마치고 오랜만에 시편으로 돌아왔습니다. 시편은
성경을 읽다 보면 절반에서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150장의
양이 만만치 않습니다. 또 모세에서 포로귀환까지 약 1,000년에
걸쳐 기록 되었고 수십 명의 저자가 등장합니다. 내용 또한 다양해서 인생백과 사전이라는 별명을 붙여도
될 것 같습니다.
다른 성경책에서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다면 시편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 시간입니다. 제가
왜 ‘사람의 소리’라고 말하는 이유는 시편의 속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시편은 하늘로부터 인간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명령이나 예언이 중심이 아닙니다.
시편은 살면서
만나는 사건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 믿음의 반응을 시 형태로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또 시편은
시대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입에서 떠나지 않은 한 주제를 다룹니다. ‘인생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시편은 그 답을 ‘복, 행복’이라고 답합니다.
이 세상의
어떤 누구도 불행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복 있는 삶, 즐거운
인생, 행복한 삶을 원합니다. 하지만 늘 인간은 행복을 방해하는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합니다. 하나는 행복을 위협하는 위험들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행복을
위협하는 수단은 시대가 변하면서 역시 달라졌습니다.
예를 들면, 고대에는 활과 창과 칼이 무서운 것이라면 지금은 어마 무시한 위력을 가진 정밀 폭탄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은 세상은 지금도 질투 시기 원한 전쟁의 장소라는 사실입니다. 행복을 위협하는 본질적인 환경은 여전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복을
위협하는 또 다른 하나는 행복을 추구하려는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실패라는 계속되는 좌절감입니다.
얼마나 많은
철학과 정치인들이 행복을 꿈꾸었고 시도했습니까? 플라톤이 주장한 이상국가론, 근대의 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혁명론. 동양에서는 공자의 덕치사상, 노자의 이상국가론 등 수 많은 가르침과 제안들이 있었습니다. 또
정치가들은 실제 현실에서 평화와 자유가 있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주장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오류와 허점을 너머 많은 사람들에게 가난과 고통을 주거나 생명까지
빼앗고 더 아픔을 인류에게 주었습니다. 얼마나 무력한 존재가 인간임을 알게 했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비극이 더 맞다’고
생각하고 자포자기하거나 냉소주의자가 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늘어갑니다.
대한민국에서도
2011년 경향신문에 ‘삼포세대’를 필두로 2015년에는 ‘N포세대’라는 신조어가 나왔습니다, 젊은이들이 취업난과 불안정한 일자리, 집 하나 살 수 없는 절망적으로 치솟는 집값, 물가상승으로 생활비
지출 등으로 연애, 결혼, 아이 그리고 꿈과 미래까지 포기하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너무 슬픈 이야기 입니다.
놀랍게도
시편은 행복에 대해 이렇게까지 말합니다. 첫째, 행복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야. ‘누구나 행복할 수 있어’ 라고 합니다. 시1:1절은
‘복 있는 사람’으로 시작하여 어떤 한 사람이 참으로 행복한
상태에 있다고 합니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부러움을 불러 일으키도록‘야! 그 사람 얼마나 행복할까!’로 번역됩니다. (O! happiness of that one, 불 특정인을 지칭하므로 누구나 가능).
이 말을
들으면 ‘이런 세상에서도 행복이 가능한가요?’질문합니다. 시편 기자는 ‘네, 당신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라고 당당히 답합니다. 너무 기대가
됩니다. 다음 주에 구체적으로 나누게 될 것입니다. 우선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 질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 하나님이 직접 행하신
일 때문입니다.
시 1:3절을 보면, 물가에 심은 나무가 있습니다. 누군가에 의해 심어진 것입니다. 물은 생명이며 나무는 인생입니다. 물(생명)이 있는 곳에
놓이지 않으면 나무는(인간) 잎이 풍성하고 열매를 맺는 행복을
맛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죽이셨기에 생명 되신 예수 안에서 풍성을
누리는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둘째, 시편은 행복해지는 것은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거나 상황에
달려 있지 않다고 합니다. 단지 옳은 선택에 있는 것입니다. 시 1:6절은 너무 단순하게 악인과 의인의 두 길을 제시합니다. 의인의
길을 선택하는 것만이 행복해지는 것이라 말합니다. 그러므로 행복은 하나님이 제시한 그 길만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선물입니다.
이 말을 듣다 보면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시편도 세상 사람들과 같은 인간이 행복에 대해 말하는데 정말 믿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두 가지 근거입니다. 1) 시편의 저자는 하나님이 직접 말하거나 꿈이나 계시로 받은 말씀대로 그대로 살아 본 사람들입니다. 2) 오래 동안 그들이 경험하고
검증된 믿음의 고백을 ‘성령의 감동’으로 노래하고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에덴에 두었습니다. 타락하기 전에도 땅을 경작하는 일은 힘들고 때로는 상처를 입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찾아 오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행복이었습니다. 치유와 회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순종으로 하나님과 교제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게 되고 인간은 행복을 잃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허락하는 행복은 무엇입니까? 세상이 추구하는 것을 따르지 않고 그 길에 서지 않고 그것에
만족하지 않는 선택입니다. 하나님과 행복한 관계를 잃은 죄인임을 깨닫고 돌아서는 선택입니다. 예수를 나의 구주로 내 인생의 주인으로 믿고 고백하는 선택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길을 잘 선택하여 시절을 따라 열매 맺고 형통한 복을 누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