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복(2): 다릅니다
시 1:1-4
시편을 통해
‘하나님의 복’에 관해 말씀을 가을학기 동안 나누게 될 것입니다. 복은 하나님이 주시기로 한 그 길을 선택하는 자들에게 허락된다고 지난 주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시 1:1절을 보면, 복
받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듭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가 악한 사람들을 따라가라 말합니까? 누가 나쁜 짓을 하라고 가르치겠습니까? 또 예수를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이 정도 윤리와 도덕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복 받기 위해 가르치는 행동방침도 별반 세상과 믿는
성도간에 차이가 나지 않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믿는 사람들이 결과적으로 받는 복에 있어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이 생깁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전에 살았던 시편 기자도 비슷한 질문을 받고 고민을 한 것 같습니다. 이 질문에 답을 주기 위해 독특한 유대 교육 방법을 선택합니다. 예수님도
지상 사역을 하실 때 이 방법을 많이 사용하셨습니다.
시 1: 3-4절을 보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바람에 나는 겨’라는 두 비유를 보여줍니다. 오늘은 ‘겨’만 집중하려 합니다. 앞에서 복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이 ‘바람에 나는 겨’라는 소리를 듣게 되면, 어떤 반응을 할까요? 누구를 막론하고 ‘바람에 나는 겨’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말이지만 이미지가 이런 역할을 해 줍니다.
‘겨’는 거두어 들일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을 당시 농경사회
사람들은 너무 잘 알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추수 때 농사꾼들을 보기 바랍니다. 알곡만 거두고 쭉정이는 들에서 불에 태워 버립니다. 겨는 속에 알이
없어 사람들의 배를 채워줄 양식이 됩니다. 더구나 생명이 없어 다음 해에 땅에 종자로도 뿌릴 수도 없습니다.
시편 기자는
단지 이런 것만 전달하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1)쭉정이는 알멩이를 잃어버린 인생이라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2) 원래 인간에게 있어야 할 생명이 상실 되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3) ‘겨’는 죄로
인해 나중 불 속에 던져질 심판의 현 주소입니다. 4) 많은 것을 갖고 높은 자리에 있어도 왜 행복하지 못한 이유에 대한 설명입니다.
지난 주에
한국에서 놀랄만한 뉴스가 있었습니다. 주식소식 아닙니다. 학생들이 마약거래를 통해 콘도와 외제차를 운영한다는 것입니다. 더 놀란 것은 회원들이 얼굴도
출중한 sky 명문대 학생들로 구성된 동아리라고 합니다. 왜 많은
것을 배우고 아는 사람들도 행복하지 못한 어리석은 삶을 선택하게 될까요?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피조물 중에서 인간을 가장 고귀한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하게 되고 죄가 세상에 들어옵니다. 죄의 결과는 단순하게는 사망입니다. 이것을 좀 더 상세히 들여다 보면 1)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 형상을 잃게 됩니다. 2) 더 심각한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됩니다.
3) 인간은 창조 시에 허락된 인간의 가치를 놓아 버립니다. 4) 사탄의 종이 되어 인간에게 준 생명을 잃고 행복을 상실한
쭉정이가 된 것입니다. 불에 던져질 쭉정이의 삶은 하나님을 찾지도 않을 뿐 아니라 부인까지 합니다. 육신의 욕망만 추구하며 선한 양심마저 부패해지고 인간이 짐승만도 못하다는 소리까지 듣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바람이 불어
쭉정이가 조금 움직인다고 생명이 있고 산 것입니까? 착각입니다. 그대로
두면 불 속에 던져질 것이 너무 분명합니다. 이런 불쌍한 인생에게 하나님이 허락하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삶에 고난을 허락하여 조금이나마 기억 속에 잠재된 하나님을
찾게 만듭니다. 예: 겨울 날 물 위를 걷는 종교인. 고난이 주는 유익입니다.
2) 사람들의 행복을 방해하는 범죄들을
막기 위해 윤리와 도덕, 철학, 또 법이라는 가치체제와 여러
제도들을 주셨습니다. 선하고 악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십니다. 이것을
통해 그나마 인간의 양심에 쌓인 먼지가 조금 씻겨 나가게 만듭니다. 그때 인생은 공허함을 느끼고 삶의
가치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신을 찾게 됩니다.
쭉정이처럼
사는 자신의 인생이 싫어지고 두렵기도 합니다. 빠져 나오고 싶은 마음도 생기도, 바르게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행동하는 사람도 나옵니다. 그러나
이미 죄로 타락한 인간은 ‘완전한 의’를 이루어 내지 못합니다. 이것이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인간이 만든 철학과 종교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고 3) 마지막으로 최고 은혜인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모든 인간이 행복을 회복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행위로는 안 되지만 오직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 얻는 길이 주어집니다. 복음을 들으면 성령의 역사로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또 죄에 빠진 자신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 가운데 행복을 원하지만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분이 있는지요? 예수 믿고 거듭나는 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자신은 이미 거듭났음에도 불구하고 행복을 못 느끼는 분들이 여기 있는지요? 삶에 너무 지쳐 또 유혹에 빠져 반복되는 죄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때 내 심령이 슬프고 아픈지요? 마 5:3-4절은 이런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해 하는’ 자들에게 천국이 그들의 것이고, 위로 받을 것이라는 행복을 약속해 주십니다. .
이 약속 때문에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내 힘으로는 안 되는 막막한 삶을 놓고 기도하는 가난한 심령을 위로하십니다. 눈물을 닦아 주시고 사막에 친히 만드신 새 길을 가게 하십니다. 또 죄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자신을 바라보며 가슴 치며 애통하는 주의 자녀를 외면하지 않습니다. 품에 안으시고 세상 정욕을 이기는 성령충만을 주십니다. 이것을 믿고 하나님 아바지께 나아가는 성도들에게 세상과 전혀 다른 복이 허락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