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복(3): 열매 맺습니다 

1:1-3

 

하나님의 복에 대해 나누고 있습니다. 지난 주까지 두 가지를 말씀 드렸습니다. 1) 하나님이 주는 복을 받기 위해서는 복 주려고 정하신 그 길만 선택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세상과 다릅니다. 세상은 힘들고 지친 자들을 외면 합니다. 반복되는 허물과 죄를 가진 사람들을 품지 않고 버립니다.

 

하지만 주님은 세상에서 상처받아 주를 찾는 자들에게 눈물도 아픔도 없는 천국이 너희들의 것이라는 소망을 허락하십니다. 또 반복되는 죄로 인해 애통해 하는 주의 백성을 품고 죄를 이길 힘을 공급하시며 위로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른 복을 덤으로 받고 산다는 것을 믿고 살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잠깐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키우는 식물도 다른 좋은 영양분을 먹고 자라면 다른 것에 비해 꽃도 예쁘고 열매도 튼튼히 자랍니다. 그렇다면 성도들 역시 하늘의 복을 받고 덤으로 받으면 세상과는 다르게 사는 모습이 나타나야 하지 않겠느냐는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 시편 기자는 시 1:3절에서 나무 비유를 사용해 답을 주고 있습니다.

 

첫째, 나무는 뿌리가 있습니다. 뿌리는 나무를 든든히 서게 해 줍니다. 성도에게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뿌리는 자신의 경험도 환상도 환청도 아닌 오직 말씀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말씀을 믿지 않기에 세상 풍조에 휘둘리고 지배를 받습니다. 그래서 늘 자신의 가치관을 바꾸고 변합니다. 그 좋은 예가 성경에 기록 되어 있습니다.

 

17:21절을 보면, 바울이 아테네에서 만난 철학자들은 이것 들어 봤어? 최근 이론이야등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런 태도는 세상을 사는데 필요한 태도입니다. 하지만 성경의 권위, 창조론,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소리들이 책으로 쏟아지는 것에 내 신앙이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나무는 외부 환경에 의해 흔들리지 않게 뿌리에 고정 되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누구를 믿는지 그리고 무엇을 믿는지 말씀이라는 뿌리로부터 모든 것을 공급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시 1:2절처럼 억지나 강요가 아닌 너무나 자연스럽게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지 않고, 읽지 않는 사람은 다른 곳에 뿌리를 내립니다. 쓴 물을 흡수하거나 독을 빨아 들입니다. 당연히 하나님 말씀 자체를 부인합니다. 자신의 생각도 가치관도 너무나 자유롭습니다. 심지어 세상에서 무엇을 믿든 또 아무것도 믿지 않아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까지 말합니다. 무지이고 오로지 개인의 주장이며 성경을 부분만 아는 것이라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

             

하지만 성도는 뿌리로부터 전혀 다른 영양분을 공급받기에 믿는 것이 다르고 입에서 나오는 고백이 다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잉태하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시고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영원한 생명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행위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신 십자가의 공로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성도의 뿌리인 하나님 말씀에서 공급되는 믿음의 열매입니다. 얼마나 세상과 다른 믿음의 고백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교회 다녀도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인생의 주인으로 믿고 고백하지 않는 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이 고백은 종교가 아닌 믿음의 뿌리인 신앙입니다. 예수를 믿는 신앙인들은 세상과 다르게 산다는 것 알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둘째, 나무는 열매를 맺습니다. 성도가 열매를 맺는다는 의미는 주 안에서 새롭게 변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성장하면 어린 티를 벗고 어른 티가 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새로워집니다. 성도에게 열리는 열매는 과거 죄에 빠져 사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베드로와 바울이 그랬고 예수의 모든 제자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성도는 그냥 산이나 들에 심겨진 나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땅이 깊고 생명을 늘 공급 받는 물가에 심겨진 나무입니다. 자연스럽게 열매가 열리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가 강조하는 것은 몇 년에 한번 열리거나 아니면 해거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3절을 보면 철을 따라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도대체 철을 따라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정해진 철이 되면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린다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나무를 바라보면 1)신뢰할 수 있는 한결같은 측면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신앙생활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2) 예수 믿으면 말씀을 읽고 주님과 교제하기를 사모하는 자연스러움이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예배도 기도도 말씀도 듬성듬성 한다면 어떻게 뿌리로 좋은 영양을 받아 언제 열매 맺을 수 있겠습니까? 물가에 심은 나무는 무서운 태풍늘 피해갈까요? 아닙니다. 험한 비바람 다 맞으면서 열매 맺는 나무로 성장한 것입니다. 성도의 신앙생활은 내 환경이 아닌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뿌리 내려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열매를 맺느냐입니다. 과거의 술 도박 마약 음란시기 미움 질투 등의 열매가 계속 열려서는 안됩니다. 그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말씀 묵상뿐입니다. 가장 강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지요? 하나님 말씀입니다. 말씀이 내속에 들어와 더러운 세상 정욕과 싸워 이것들을 밖으로 물리칠 때 변합니다. 이것이 그릇/묵상의 원리입니다.

 

성도는 세상과 다르게 삽니다. 뿌리에서 공급받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뿌리는 말씀입니다. 매일 말씀에 닻을 내리고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하고 나누는 묵상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추한 것들을 내 힘이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물리치고 성령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세상과 다른 열매를 맺어가는 가을학기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