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복(13): 흔들리지 않는 복
시 16:1-2, 8
살다 보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학교에 진학해서 첫 학기를
다니는 학생들은 이 학교가 정말 나에게 맞는지 불확실할 수 있습니다. 학교뿐만 아니라 선택한 전공도
걱정이 됩니다. 연애를 시작한 사람은 이 사람과 정말 평생 같이 갈 수 있을까? 라는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불확실성
속에 사는 인간은 늘 생각이나 믿음조차도 흔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흔들림 속에서
성도의 반응은 세상 사람들과 다릅니다. 또 달라야 합니다. 성도는
흔들릴 것 같지만 주 안에서 바로 서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중심에 뭔가가 잡아주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거친 바다를
항해 하는 배들에 밸러스크 탱크에(ballast tank) 물을 채워서 흔들리는 배의 무게중심을 잡아
빨리 복원하게 도와 줍니다. 오늘은 바다와 같은 불안전한 거친 세상에 살아가면서 갑자기 흔들리는 일들이
생겨날 때도 동요하지 않았던 믿음의 선배의 소리를 들어 보려고 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첫째 비결은 피할 곳이 있어야 합니다. 1절을 보면, 다윗은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힘든 일이 생겨 불안하고 떨리고
삶이 흔들릴 때 나를 지켜줄 것이 있으면 마음이 안정 됩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그의 피난처가 된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에서
다윗이 사용한 ‘신의 이름’을 한번 보기 바랍니다. 자신을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대적들보다 더 강하고 능력 많으신 전능자 하나님을 의미하는 ‘엘’이 사용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진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무엇이 우리를 흔들겠습니까? 이런 분의 날개 밑은 어떤 것도 우리를 상하게 하거나 두렵게 할 수 없습니다.
성도님들
흔들릴 때마다 하나님을 찾기 바라고 주님이 피난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주께 피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어떻게 하는 것이 ‘주께
피하는 것’입니까? 이런 개념들이 우리 신앙에 정확히
자리 잡혀 있지 않기 때문에 혼돈이 오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처럼 성전에라도 계신다면 그곳을 찾아갈 텐데 말입니다. 오늘날 믿는 우리들에게 도대체 ‘피한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교회로 가라’는 말인지 사실 정말 애매 합니다. 기도하러 예배당을 찾아도 24시간 열려 있는 교회도 사실 거의 우리 주변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안심할 수
있는 것은 ‘피한다’는 의미가 장소적 개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 ‘피한다’는 말을
KJV는 ‘I put my trust’라고 번역합니다. 보호할 힘과 능력을 가진 하나님을 내가 ‘신뢰한다’는 뜻입니다. 불안하고 흔들릴 때 내가 최고로 의지하는 분이 정말
하나님인지 우리들에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신뢰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피하는 일은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이 신뢰는 오랜 시간 가져온
서로의 관계에서 온다고 말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동의하기에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정말 이 아이가 나를 믿는다는 것을 언제 경험하셨습니까?
자녀를 가진
분들은 저와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높은 곳에 세워 놓고 팔을 펼쳐 보이는 아빠에게 뛰어내리라면
그냥 주저 없이 아이들은 뛰어 내려 버립니다. ‘뛰어 내려도 나를 받아주는 아빠’를 우리 아이들은 너무나 많이 경험했기에 그런 무모한 짓을 할까요? 아니면
정말 믿음이 있기에 그렇게 할까요?
저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많이 놀고 친한 관계를 가지는 시간이 부족한 아빠였습니다. 그런데 너무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주저 없이 그냥 아빠 말에 뛰어내리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후자를 더 믿습니다. 저만 그렇게 믿는 줄 알았는데 오늘 시편 저자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피하다’는
동사의 시제를 보면 미완료형이 아니고 완료형입니다. 이것은 다윗이 하나님께 고백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을
완전히 믿고 기대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믿는 순간 주저함 없이 말씀대로 행하는 것임을
증명해 줍니다. 하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이 무조건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도가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신앙을 가지는 두 번째 비결은 하나님이 나와 맺은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누군가와 약속을 했는데
일방적으로 파기 하거나, 수행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모든 것이 흔들립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이 철저히 약속을 지킬 것을 확신합니다.
그 증거는
2절 상반부에 “내가 여호와게 아뢰되”라는 말씀에서 사용한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 부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라는
이름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은 관계에서 불려지게 됩니다. 그 속에는 약속한 것은 철저히 지키는
하나님이라는 경험이 베여 있는 확실한 고백인 것입니다.
1절에서 자신이 신뢰하는 대상이 전능한 ‘엘’ 하나님임을 말했다면, 자신에게
준 약속들을 충실하게 이행 해 주실 ‘여호와’ 하나님을 실제
의지하는 모습입니다. 잘 알듯이 다윗 주위에는 목숨을 내어 놓을 만큼 충성스런 군인들과 지혜로운 조언들과
물질적으로도 지원하는 신하들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기로
선택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특징은 하나님만이 내 삶의 주인 된다는 절대적 신앙을 품어야 합니다.
이런 성도들은 2절 중반부를 보면 하나님을 ‘아도나이’라 부릅니다. ‘주님’이라
부릅니다. 종은 모든 책임을 짊어진 주인과는 다릅니다. 다윗은
지혜롭게도 자신이 인생의 주인 됨을 내려 놓고 하나님께 그 자리를 맡겨 드립니다.
자신은 종이
되어 그분의 뜻을 수행하는 종으로만 서게 됩니다. 그럴 때 8절처럼
흔들림이 없는 인생이 되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 성도는 2절 하반부에서 ‘주밖에 좋은 분은 없습니다’라는 찬양을 입술에 담게 되는 것입니다. 종은 뭔가를 결정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주 앞에 나와 이미 결정된 주인의 뜻을 먼저 듣고 난 후 성실히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종 된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것은 세 가지입니다. 1) 주님이 앞서 가게 해야 합니다. 2) 주님이 나의 능력이 될 수 있게 오른편에 서 계시도록 해야 합니다. 3) 기도 가운데 세밀하게 말씀하는 주님의 뜻을 듣기 위해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믿음의 성도들에게 어떤 흔들림도 없는 인생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