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제직(1): 그리스도의 일꾼
고전 4:1-2
1월 첫 주는 교회 표어를 성도님들과 나누고 나머지 주일들은 주로 제직들을 위한 말씀을 나누어 왔습니다. ‘제직’이란 단어가 생소한 분들도 계실덴데요. ‘제직’이란 말은 교회에서 직분을 맡은 자들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서리집사, 안수 집사, 권사, 장로, 전도사, 목사를 말합니다.
올해도 1월 마지막 주일에 신규 및 기존 제직들 서약식이 있습니다. 특히 작년에 교회에 등록하고 세례
받고 30살 이상 되는 분들 가운데 새롭게 서리집사를 받으실 분들이나 다른 교회에서 집사임명을 받은 분들에게
이메일이 가게 됩니다. 본인들이 기도하시고 직분을 맡을지를 결정하시고 서약식에 참가하면 됩니다.
오늘
말씀은 제직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모든 성도들이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면서 주님 앞에서 어떤 마음의 자세가 필요한가를 나누는 것이기도 합니다. 1절에서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말을 보게 됩니다.
첫째, 성도는 ‘주의 소유’라는 의식이 필요합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주인이 따로 있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오직 주의 말씀이 내 가치판단이 되어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세상은 일요일이라 쉬고 놀러가고 자기 할 일 우선으로 합니다. 하지만 믿는 성도는 다릅니다.
주일은 한 주 동안 분주했던 삶을 멈추고 하나님 앞에 예배자로 서는 날입니다. 우리들이
해야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해 사망가운데 영원히 던져질 우리를 건져주실 구원자를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살아나신 믿음을 고백하며 하나님게 영광을 돌려드리는 날입니다. 세상과 구별되게 살아가는 것이 주께 소유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또
내가 가진 소유 역시 내 것이 아닙니다. 주인이 주셔서 가지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쓰시고자 할 때 아낌없이 드리는 삶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사역을 보면,
유월절에 다락방 주인은 자신의 공간을 주를 위해 내어 주었습니다. 주가 필요하다고
할 때 나귀 주인은 그것조차 풀어 사용하게 했습니다.
‘가진 모든 것이 다 내것이다’라고 생각하면 하나님 나라 위해 내어 드리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그런데 주인의 것을 주인을 위해 내어 드리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아직 힘들어 하는 분도 있지만 우리 교회는 십의 일을 주님께 드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내가
가진 전부가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다 가져가지 않으시고 오히려 나에게 다 주시며 사용하라고
하셔서 감사의 표시로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위해 매주 얼마를 드리기로 작정하고 드리는 주정 헌금,
감사헌금 비전센터 헌금, 선교헌금 생활을 통해 드리는 훈련에 더 참가해 보면 좋겠습니다.
둘째, 성도는 ‘일꾼’이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일꾼’이란 밑에서(휘포) 노를 젖는다(에렛소)는 의미를 가진 합성어입니다. 즉 배 밑에서 노를 젖는 노예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반드시 북소리에 맞춰 노를 저어야만 했습니다. 배가 나아가게는 하지만 방향을 정하지는 않습니다.
그 일은 주인이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일꾼은 주님이 가려는 방향을 위해 정말 죽기까지 헌신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교회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사도행전의 초대교회가 보여주는 것이 있습니다. 얘배와 교육, 구제와 봉사, 전도와 선교,
교제 등 5가지 영역입니다. 이런 주의 일들을
위해 교회는 제직들을 세우는 것입니다.
교회는
매년 직분을 받는 임시직뿐 아니라 한번 받으면 평생 제직으로 삼기는 항존직이 있습니다. 항존직을 받는 분들은
하나님 나라와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자원하는 헌신된 마음이 있어야 겠지요. 또 일정기간의 훈련이 필요하고
성도들의 동의를 받는 투표절차가 있게 됩니다.
주의
일에 동참하기를 원하는 일꾼들에게 마지막으로 요구하는 것은 2절 말씀처럼 충성을 요구하십니다. 왜
우리 주님은 부르신 일꾼들에게 충성을 요구하실까요? 끝까지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몇 주, 몇 년이 아니라 주님이 오실 때까지 교회는 이 땅에 존재하고 서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5장을 펴면 달란트 비유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주님이 성도에게 요구하는 ‘충성’의 의미를 몇 가지 보려 합니다. 이들은 모두 1,
2, 5달란트를 주인으로부터 받게 됩니다. 비유를 보면 충성된 종은 1) 받는 즉시 실행으로 옮깁니다. 받은 돈을
가지고 장사하는 것을 미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충성된
종은 지체하지 않기도 하지만 2) 받은 돈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장사해서 받은 만큼 이윤을 더
남기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윤을 배로 남기기가 쉽습니까? 이들은 밤잠
자지 않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윤을 남길 것인가를 열심으로 연구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성실함이 보입니다.
이윤이
배로 남았을 때 사람들은 어덯게 할 수 있을까요? 다 다를것입니다. 그러나 3) 충성된 자는 그것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주인 앞으로 가져오는 정직함이 있습니다. 반대로 충성되지 못한 종을 보면 주의 일도 미룹니다.
내 일이 바쁘면 주의 일은 뒤로해도 되는 이유로 내세웁니다.
더
나쁜 것은 주인의 생각과 다르게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주인의 생각은 땅에 묻어두는 것이 아니라 장사를 해서
이윤을 남겨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땅에 묻어 이자도 받지 않았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종은 주인의 생각을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가서는 안 됩니다.
성도는
내 마음에 안 든다고 계속 불평하며 주의 부르심이나 주의 사역이 진행되는 것을 미루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올해 우리 교회 성도는 물론 제직들은 ‘내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사명의식 속에 믿음으로 불순종을 이겨내고, 최선을 다해 기쁘게 주의 일을 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피 값으로 사 주시고 소유삼아 주셨습니다. 지나친 내 생각은 주의 일꾼이 취할 태도가 아닙니다.
또 너무 느리게 가지도 말고 주님보다 앞서가지도 말고 북소리에 맞춰 나아가기 바랍니다. 성령의 리듬에 맞춰 맡긴 일에 최선을 다하는 충성된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