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신앙생활(2): 만남, 관계, 동행입니다
고전 2: 9-12
세상 사람들이 성도들에게 종교를 가지고 있느냐고 물으면, 우리는 ‘신앙생활을 한다’고
말합니다. 사실 신앙생활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라고 물으면
다양한 답들이 나옵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에 나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다른 분들은 ‘예수를
믿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늘은 성도의 신앙생활에 대해 만남, 관계, 동행이라는 시간적 순서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신앙생활의 출발은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이 만남은 꿈이나 환상이나 음성으로 특별하게 다가 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기대하지 않은 일상에서 평범하게 일어납니다. 성경적인 좋은 예가 바로 모세입니다(출 3:1-4).
모세가 애굽에서 사람을 죽이고 바로를 피해 광야로 도망을
칩니다. 그곳에서 양을 치고 있던 때였습니다. 하루는 떨기에서
불이 붙는데 타서 없어지지 않는 신기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호기심을 가지고 가까이 다가갑니다. 오늘 본문 고전 2:9절처럼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남을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예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어느 날이 있었습니다. 친구를 통해 우연히 성탄절 저녁 연극을 보러 오라고 초대를 받습니다. 아니면
신앙서적을 선물 받거나 다양한 이야기들이 간증으로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본문 10절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만남들을 계시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나중에서야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성령님은 만남이 이루어진 이후부터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끌기 위해 지속적으로 대화를 나누십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만물을 다스리는 주관자임을
듣게 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접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한번도 누군가 말해주지도 않았고 들어보지도 못한 신비스런 하늘의 비밀을 듣고
알게 됩니다. 복음은 간단합니다.
우리 인간은 죄로 인해 행복하지 못하고 결국 죽게 됩니다.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심판과 영원한 멸망이 있다. 하지만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더 나아가 나의 모든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믿기만 하면, 이 무서운 것들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입니다.
너무 좋은 소식입니다.
이 만남은 한번으로 완성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긴 세월 동안 반복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의 첫 여정인 만남의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만남을
이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복해서 복음을 듣지만, 안타깝게도
믿음의 단계로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구체적 이유들은 다음에).
다음으로, 신앙생활의 두 번째 단계는 ‘관계’입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를 알고 믿게 되는 ‘만남’이
이루어지면, 신앙생활은 그 다음 단계인 ‘관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성도와 예수님은 목자와 양의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성도는 주인의 음성을 알고 다른 것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 삶이 시작됩니다.
주 안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겨 나기 시작합니다. 세상
가치관이 더 이상 나를 사로잡지 못합니다. 하늘에 보화를 쌓는 삶을 원하게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던 헐벗고 배고파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보이고, 소외된
자들의 신음 소리가 들려옵니다. 12절에서 보는 것처럼 이런 것들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일 것입니다. .
성도가 이렇게 행동할 수 있는 이유는 더 많은 돈이 생긴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더 잘 알아가기 때문입니다. 11절처럼
성령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 나에게 이런 재물과 재능과 명예를 주신 이유를 깨닫게 하신 결과입니다. 이것이
관계에서 일어나는 것들입니다.
한편, 첫
단계에서 두 번째 단계로 이어질 때 주의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주님과 관계를 이어가야만 더 좋은
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 못하고 주를 떠나는 분들이
생깁니다. 그래서 예수를 알고 믿기 시작하고 고백하는 분들에게 ‘교회에 잘 나가라’고 권하는
이유입니다.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는 신앙생활에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알기 시작한 분들에게 더 긴밀한 관계가 유지 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믿음의 공동체에서 말씀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더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가질 수 있는 기도가 지속됩니다. 찬양이 드려지는
예배가 있습니다.
성도는 예배자로 살아가면서 세상에서 실패하고 넘어지고
좌절될 때 성령으로부터 감동과 위로를 받습니다. 또 이 땅에서 내 의지와 재능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이것을 위해 필요한 모든 능력을 하늘로부터 공급받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서 종합선물 세트인 예배가 있는 교회 공동체가 중요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신앙생활의 단계는
동행입니다.
주님과의 동행은 한 번 만나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 이후에도 영원히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끝까지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믿는 성도조차 동행을 부담스러워합니다. 그 이유는 순종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더 솔직히 말하면 내 마음대로 살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손은 세상에 한 손은 주를 잡고 있습니다. 세상을 붙잡고 있는 손을 놓지 않는 이상, 성령과의 동행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늘 갈등과 불만이 있을 뿐입니다. 성령님은
내가 가고 싶지 않은 길을 가게 하십니다. 또 내가 원하는 시간에 맞추어 답을 허락하지 않고 그것도
너무 오랫동안 기다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만이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잘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가장 적합한 곳에 가장 적절한 시기에 데려다 놓아야 할 성령님이 우리 말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순종 없이는 주님과 동행은 불가능합니다. 내 마음대로 사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가 걷는 신앙생활입니다.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이 세상에서 가장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험한 세상을 성령과 동행하는
것이 성도의 길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속에 내주하며 동행 하기를 원하십니다. 시작에서부터 함께하셔서 이 땅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가기를 원하십니다. 그
이유는 너무나 간단합니다.
사탄이 우는 사자와 같이 먹이를 찾아 두루 다니는 세상에서
예수와 함께 하지 않으면 믿음조차도 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예수와 동행하는 것이
가장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만나 친밀한 관계를 가진 우리 성도님들 성령과 끝까지 동행하는
신앙생활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