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와 신앙생활(3): 불에 타지 않는 신앙 

고전 3:10-13


 

신앙생활에 대해 말씀을 나누어 오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은 만남, 관계, 동행의 순으로 성장하면서 단계별로 나아갈 때 필요한 것을 살펴 보았습니다. 오늘은 신앙이라고 말하는 것에 궁극적으로 무엇이 채워져야 하는가를 나누려고 합니다. 10절을 보면 바울 사도는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도움을 주기 위해서 마치 집을 짓는 것에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이 기초입니다. 바울 사도는 11절에서 신앙의 터에 대해 말합니다. 사실 신앙의 기초는 우리 성도가 무엇을 알고 믿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외에는 구원이 없고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 받는다는 믿음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이어서 12절을 보면 믿음이라는 집을 짓는 재료에 대해 언급합니다.  

 

6가지가 소개됩니다. 그 중 금, , 보석은 영속성을 나타냅니다. 나머지 3개는 앞에 것들과 대조를 이룹니다. 일시적이고 한계를 가진 나무, , 짚이 언급됩니다. 이렇게 구분 짓는 이유가 있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원하는 삶과 전혀 다르게 살았던 일부 성도에 대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13절에 의하면, 다들 멋진 집을 지었는데, 어느 날 불에 타버릴 집을 짓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 본문에서 한 가지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 믿은 후 이어지는 신앙생활을 많은 번역들은 공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것으로 인해 성도들은 좋은 일을 많이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오해를 사게 했습니다.

 

또 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참가하는 봉사보다 강제나 억지로 섬기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공동번역은 공적이라는 단어 대신 성도가 신앙생활을 해가면서 각자가 한 일로 번역합니다. 한편 현대인의 성경은 종말론적 해석으로 각자의 일한 결과로 번역합니다. 여기서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신앙생활이란 믿음의 전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성도들의 모든 행위를 말합니다. 2) 성도의 모든 행위들은 언젠가는 하나님으로부터 평가의 대상이 됩니다. 3) 그렇지만 마지막 심판 때에 상을 받기 위한 평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는 구원 받은 사람들입니다. 또 구원 그 자체보다 더 큰 상은 우리 믿는 사람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날에 불로 우리의 공적을 시험한다는 의미를 좀 세밀히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종말보다 오히려 이 땅에서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날에 대한 번역도 재고할 필요가 있게 됩니다. NIV‘the Day’로 대문자로, 그리고 공동번역은 심판의 날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NASB 또는 KJV‘the day(그 날)’ 입니다.

 

결국 신앙생활을 하는 어느 날 나에게 불 같은 시련이 다가오는 그 날(the day)을 의미합니다. 물론 종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 배신, 경제적 위기, 건강 문제, 실업자가 되고, 사업이 망하는 것 등 많은 고난의 시기일 것입니다. 그때 믿음을 잃어버리는 성도가 있고,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붙잡고 영광을 드러내는 두 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날인지 모르지만 이 땅에서 만나게 되는 그 날의 불의 시련을 어떻게 이겨내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답은 간단합니다. 금 은 보석과 같이 불에 타지 않는 것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그렇다면 그것들이

무엇입니까?

 

첫째, 믿음입니다. 성령이 늘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입니다. 그래서 16절에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라고 성도에게 질문 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들이 처한 상황이 어떠할지라도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명확하게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그것을 실현하게 도웁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시대가 변해도 성령 하나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만세 전부터 계신 하나님의 뜻을 성령이 지금도 우리들에게 그대로 전달해 주십니다. 성도들이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헤매는 일이 없게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내 속에 내주하며 하나님의 뜻을 전해주는 성령님께 늘 여쭈어 보는 신앙인이 되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입니다. 믿는 것을 제외한 신앙생활의 전부는 행함입니다. 죽을 때 가져갈 수 없는 것들을 손에서 흘러가게 하는 이웃 사랑입니다. 그때 하늘에 보화가 쌓입니다. 천국에서 샤핑 할 것도 아닌데 왜 보물을 쌓아야 할까요? 상 받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가서 영원히 살 곳을 아름답게 채우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올해 우리 교회가 가는 단기선교는 의미가 큽니다. 단지 인원이 가장 많이 가는 첫 해로 기록되는 것을 뛰어넘기 때문입니다. 세상 것들이 전부가 아니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시간과 물질에 대해 자유함을 선포하는 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역사를 만들어 내는 교회와 가정에 복을 부어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셋째, 오직 하나님에 대한 사랑입니다. 사실 믿음은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죽음을 맞이하면 그 역할을 다하게 됩니다. 소망 역시 최종 목적지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면 전혀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영원합니다. 이 땅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우리는 영원을 누리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 세 가지를 확실히 가지고 있던 신앙인이 있습니다. 바로 다니엘의 세 명의 친구들입니다. 3:17절을 보면 풀무불에 던져질 때 하나님이 능히 자신들을 건져내주실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또 그 유명한 18절 상반부의 그렇게 하지 아니할지라도에 들어 있는 뜻은 죽어도 영원한 하늘의 소망을 소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비록 어린 나이에 볼모로 잡혀왔지만 그들을 보호하시고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늘 기억하며 살았습니다. 어느 날 모든 것을 태우고 남을 불 앞에 서게 됩니다. 그들 인생에서 가장 큰 시련이었습니다. 그러나 18절 하반부를 보면, 다른 신들이나 우상에 절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사랑의 고백을 합니다.

 

결국 불에 던져졌지만 그들은 타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보여준 모습이 바로 우리 성도들이 이 땅에 살면서 가져야 하는 신앙입니다. 예수를 믿고 따라갈 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깁니다. 감당할 수 없는 사고나, 직장을 잃거나, 사랑하는 친구들과 가족들과 이별하는 일도 있습니다. 심지어 질병과 가난과 핍박 같은 위기도 찾아 올 것입니다.

 

그때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세상 가치관이 내 믿음이 되면 안됩니다. 우리는 이미 진리 되는 예수를 만났습니다. 성도는 소유가 삶의 목적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늘에 소망을 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와 물을 다 쏟으며 대신 죽으신 얘수님의사랑을 고백하는 성도입니다. 불에 타지 않는 신앙을 가진 성도로 살아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