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신앙생활(6): 결혼과 신앙
고전
7:1-3
한국의 여성가족부가 2023년에 전국 12만 가구를 대상으로 가족실태조사를 발표했습니다. 질문 가운데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것은47%가 나왔습니다. 2020년 34%에 비해 13% 증가했습니다. 또 결혼하지 않고 남녀가 함께 사는 것에 동의는 26%에서 39%로 나왔습니다. 결혼 후 무자녀에 동의는 28%에서 35%정도 늘었습니다.
동일 질문에 대해 특히 20대의 경우 ‘비혼 독신’(66.9%),
‘결혼하지 않고 남녀가 함께 사는 것’(57.7%), ‘결혼 후 무자녀’(56/6%)로 가장 높은 동의를 보여 주었습니다. 비록 한국에서
조사된 설문이긴 하지만, 이런 실상을 염두에 두고 오늘은 결혼에 관한 것을 말씀에 비추어 살펴 보려고
합니다.
첫째, ‘결혼해야 합니까?’ 라는 가장 기초적인 질문부터 다루고자 합니다.
본문 1절을 보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라는 말이 눈에 들어 옵니다. 언뜻 독신으로 사는 것이 좋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과연 그런 의미로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무엇보다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도 그런 명령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먼저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에 두 장에 걸쳐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 내에 음행이 있음을 지적하고 권면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전 5:1절에 의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 공동체 내에서 벌어졌습니다. 심지어 이방인들도 하지 않는 근친상간 등의 음행이 고린도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또한 고전 7:2절을 공동번역으로 보면, 당시 고린도 지역에 ‘음행이 성행하고 있으니’라고 말해줍니다. 이런 고린도의 실태를 감안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다”는 말은 독신주의를 옹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음행의 주체가
되었던 남자들이 여성들과 절제 없는 성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1절을 다시 공동번역을 보면, 이런 당시 실태를 감안하여 “남자는 여자와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라고 번역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런
심각한 음행을 믿음의 공동체에서 방지하기 위해서 2절에(공동번역) “남자는 각각 자기 아내를 가지고 여자는 각각 자기 남편을 가지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이 있습니다. 1) 바울 사도는 독신/비혼주의를 주장하지 않음이 드러납니다. 2) 남자와 여자라는 성을 구별하고 있고 각각 남편과 각각 아내를 언급합니다.
3) 성경은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여 한 몸을 이루어 각각 자기 남편과 아내와의 성적관계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그렇다면 ‘2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단지 우리가 음행을 피하기 위해 결혼하는 것인가?’라 는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만약 결혼이 그런 목적만이라면 두 가지 문제에 부딪힐 것입니다. 하나는, 결혼 생활에서 부부의 사랑의 관계는 단지 합법적 음행의 수단이거나 음행의 피처로만 취급될 것입니다. 양심적으로 너무 힘든 부부생활이 될 것입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은 육체의 본능을 극복할 수 없는 인간의 연약함 때문에 결혼이라는 제도를 허락한 것으로 보일 뿐입니다. 과연 성경은 결혼을 그렇게 말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창 2:18절을 보면, 아담이 창조됩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음을 알고 그를 위해 돕는 배필을 지으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다음 순서는 바로 여자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바로 창2:19절을 보면, 오히려 하나님은 미리 만든 온갖 짐승들을 그에게로 데리고 갑니다. 20절을
보면, 아담은 그들에게 이름을 지어줍니다. 그 다음에 아담에게
‘(공동번역 추가 ‘그 가운데’)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라고(KJV:
there was not found) 기록합니다. 아담이 느낀 마음입니다.
동물들이 아담 앞으로 왔을 때
각각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줍니다.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동물을 다스리는 권위가 인간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아담은 뭔가 만족해 보이지도 않고 쓸쓸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모습과 짐승들의 모습이 너무나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더욱 힘들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이 데려온 동물들은 다들 암수 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만 걸어 다니는 것은 그래도 참을 만합니다. 하지만 자신만 혼자입니다. 함께 할 짝이 없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본 하나님은 22절에서 드디어 그에게서 갈비뼈를 취하여 여자를
만들어 데리고 오십니다.
이들은 부모를 떠나 한 몸이
되어 부부가 되고 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창세기를 볼 때 결혼제도는 인간을 향하신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부부의 사랑은 한 몸을 이루는 과정을 통하여 견고해 지는 것입니다. 또 부부는 서로에게 기쁨과 만족을 주며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가장 작은 공동체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부부가 결혼생활을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탄생한 부부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3절을 보면, 남편과
아내는 서로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살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의무’는
단지 서로의 성적 관계의 의무를 넘어갑니다. 부부는 서로 의지하는 버팀목입니다. 곁에 있다는 것 만으로 외롭지 않습니다. 서로의 연약과 부족을 보충하고
채워주는 존재입니다.
북스터디에서 배운 예를 응용해
보겠습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원칙과 사실을 중요시하는 남편이 있습니다. 이런 남편을 둔 아내는 남편이 때로는 차갑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지켜 나가려고 결단한 것을 순종해 가는 것을 보며 아내는 남편을 존경하게 됩니다. 반대로
아내가 율법주의적 성격이 강하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내는 무엇보다 가정이 잘 운영되도록
원칙과 약속들에 민감하게 됩니다. 남편과 아이들이 가정의 룰을 잘 지킬 때는 평안합니다, 문제는 가정에서 정한 룰과 원칙 대로 안될 때 갑자기 돌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의 잘못하는 것을 지적하고 부정적인 말을 하며 서로에게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이 때 “엉망인 이 집을 이렇게 산뜻하게 만들어주는 당신이 있어 너무 행복하고 고마워요!”라고
말하는 남편이 되어 보십시오. 원칙대로 안되면 가정과 자녀들이 안 될 것 같아 보이는 곳에도 은혜가
흘러 넘치는 것을 아내에게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아내에게 여유를 갖고 가족들과 상황을 보도록 도와
주는 남편이 되어 보기 바랍니다.
오늘은 결혼에 대한 기초적인
것만 나누었습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실 때부터 인간을 위해 정한 질서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주 안에서 한 몸을 이루며 관계를 통해 서로에게 기쁨과 만족을 경험케 하는 정말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약함을 이해하고 서로를 보완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랑이 충만한 부부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