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3): 경배 받으실 분
마 2:1-12
함께 따라 하시겠습니다. “예수님은 경배 받아 마땅한
분이십니다.” 이 땅에 인간으로 오신 주님은 존경이 아닌 경배 받으실 하나님이십니다.
첫째,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이방인들 까지도 자연의
신비함을 보고 예수님을 경배합니다. 1절에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을 찾습니다. 왜
그들이 아기를 경배하러 왔는지 궁금합니다. 자신들의 왕도 아닌 유대인의 왕(2절)입니다. 이상한 별이 그들을 마지막으로 인도한 곳은
왕궁이 아닌 이름 모를 사람의 집이었습니다(9절).
왕궁이 아닌 이름 모를 사람의 집에서 태어난 아이는 왕이
될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헤롯 왕이 유대인이 아닌 이두매 사람, 에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비록 왕궁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분명 이 아이가 유대인의 왕이 될 것으로 짐작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더 궁금하게 만드는 것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유대인의 왕이 태어난 것을 그렇게 기뻐할 이유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잘못되면 자신들을 정복할 불세출의 영웅이 태어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시골에 평범한 부모와 함께 있는 한 아이를 보고 엎드려 경배하고 보배함을 열어 예물까지 드립니다(11절).
박사들이 아이를 경배하는 이유는 단지 이상한 별의 주인공이라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자신들은 이 별의 주인공은 한 나라의 왕이 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왕은 자신들에게
까지도 영향력을 미치고 심지어 다스리게 될 왕으로 믿고 경배하는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역사에서 다윗이라는
위대한 왕이 자신들을 다스렸던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박사들은 이 아기가 인간의 죄에서 구원하실 그리스도임을
알지도 못했고 고백도 하지 않습니다. 단지 자신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났다는 확신만은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그리고 12절에서 꿈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으로
충분히 이 아이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 증명이 된 것입니다.
박사들은 단지 자연의 신비함이 보여주는 위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아차릴 수 있는 깨어있는 이방 종교인들이었습니다. 사실 세상 종교의 역할은 원래 이것입니다. 지금도 그래야만
합니다. 인간들의 심성 속에 심겨진 것으로 만물을 보고 하나님을 알도록 하는 것입니다. 로 1:19-20절을 보시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하셨으므로 사람들 속에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세상이 창조된
이래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성품인 그분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은 그가 만드신 만물을 보고서 분명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쉬운 성경).
그러나 이 수준을 넘어가야 합니다. 자연을 통해 희미하게 아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을 보고 믿는 믿음이 우리에게는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유대 땅에 살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왕이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경배를 원하지 않습니다.왕이 태어났다고 이방인들까지 와서 경배하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아무런 행동도 없습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더 자세히 태어날 장소까지 알고 있었지만 경배하지 않습니다. 유다를 다스리던
헤롯 왕도 가서 아이를 경배하고자 한다고 말은 그렇게 합니다(마2:8). 물론 거짓입니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란 사람들은 말 조차도 하지 않습니다.
이상합니다.
우선, 헤롯 왕에게 눈치가 보여
그랬을 것입니다. 왕궁에서 자신의 아들이 아닌 다른 아이가 왕이 된다면 자신의 왕위가 끝이 난다는 뜻입니다.
좋아할 사람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헤롯이 왕이 되기 위해 얼마나 로마인들에게 아첨을
받쳤는지 기록들이 기록들이 알려줍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도 무관심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오랫동안
기다려 오던 메시야 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들은 동방박사들의 뒤를 따라갔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살펴 보았는지도 모릅니다. 한편 이들의 행동이 오히려 이 아이를
보호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왕이 말로는 경배하겠다고 말하지만 의심 많고 시기심 많은 헤롯 왕을 너무나 이들이
잘 알기에 그들은 오히려 침묵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의 배려가 강하게 작용했다면 비밀스럽게라도
이 집을 방문해서 아이를 보고 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아이를 방문한 사람들은 누가는 목자들이 마태는 동방박사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음을 알고도 찾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로마에게서 해방될 수 있는 자신들의 위대한 왕이 태어난다면 로마에 반역이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종교 지도자들이긴 하지만 또한 당시 정치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정치적으로 자신들에게 너무나 위험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평화롭게 사는 유대가 로마에 의해 짓 밟히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입니다.
아직 때가 아니라는 인간적인 생각이 강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인간의 이익과
자신들의 판단에 의해 무시되는 순간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경배하지 못하도록 막았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그들의 생각과 판단은 전부 인간적인
것입니다. 혹시 자신들의 행동이 자신들을 파괴하고 가족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현재의 질서들을 엉망으로 만들고 가진 부와 명성과 지위를 상실하는 결과를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왕이 될 아이를 찾아와 경배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메시야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아님을 선언하며 자신들의 안일을 지켜 나가는 어리석음입니다. 나의 일이나 목표 때문에 아직
주님을 믿을 때가 아니라고 말하는 분들입니다. 모든 일정과 모든 우선순위가 자신의 것으로 채워져 있는 우리들의
삶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계신다면 이제 주님께 모든 것을 내어 드리고 진정으로 경배하는 삶이
시작되기를 소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세상에는 경배는커녕 예수를 죽이고자 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헤롯 왕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목자가 난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단순한 목자가 아닌 그들을 통치할 위대한 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6절).
용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얼마 긴 시간과 노력을
로마에 드렸습니다.
주전 31년 경에 악티움 전투에서
안토니우스를 이긴 옥타비아누스가 로마 왕이 됩니다. 그때 안토니우스의 오랜 친구였던 헤롯은 자신이 살기 위해
직접 로마로 가서 옥타비아누스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까지 아부를 합니다. 그리고 옥타비아누스에게 신임을 얻어
차지한 유다의 왕 자리였습니다. 새로운 왕이 난다면 너무나 억울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한 인간의 본능이 나타납니다. 아기를 죽이려는 자신의 의도를
감추고 자신도 아이에게 가서 경배하겠다는 거짓을 앞세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거짓에 방해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동방 박사들의 꿈에 나타나 그들에게 할 일을 지시하십니다. 별을 보고 하늘의
뜻을 알려고 했던 그들이 꿈에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거나 불순종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헤롯은 나중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많은 아이들을
죽입니다(2:16). 그는 가장 악한 자에 해당됩니다. 이방인들인 동방 박사들까지도 신비함에 이끌려 아기를 경배합니다.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비록 경배는 하지 않지만 주님에 대해 아직 위협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헤롯 왕은 주님을 자신의 직접적인 적으로 간주하고 즉각적인 살인 행동을 취하려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경쟁자가 아닙니다. 경쟁할 수도 없는 분이십니다.
유대의 왕이 아닌 이 세상 만물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공통점은 모두 예수님을 인간으로만 본다는 것입니다. 유대 종교인들은 주님을 인간으로만 보기에 다윗의 후손으로만
취급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으로만 대합니다. 그러나 아직
그들에게는 필요 없다는 결론입니다. 헤롯은 주님을 인간으로만 보기에 자신의 적은 죽여도 될 대상으로 여깁니다.
동방박사들 역시 비록 별을 보고 신비함에 관심은 보였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가져온 선물은 왕을 상징하는 금과 그분의 제사장 되심을 나타내는 유황과 주님의 죽음을 예비한 몰약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부활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이심을 보지 못할 때 인간은 그분을 십자가에
죽이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죽으신 후에 삼일 만에 살아나심으로 하나님 되심이 증명 되었습니다. 인간 예수만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모른다면 인간은 주님과 늘 갈등 구조를 이룰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도 주님이 인간 예수로만
보기에 자신들의 지적 수준으로만 보입니다. 그래서 예수 이야기를 그들의 안주 감으로 올려 놓습니다.
아니면 좀더 지적인 사람들은 논쟁거리로 삼습니다.
한 가지 좋은 예가 바로 2003년에 세상을 흔든 다빈치 코드라는 책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이시기에 가능한
이야기를 적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다는 흥미로운 주제로 관심을 끌었습니다.
출판사와 저자는 돈깨나 모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신론자들과 반기독교 정서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주장에 힘을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님이 인간 예수만으로 나타날 수 없습니다. 그분은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이지만 죄 없는 분이시기에 처녀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었습니다. 죄가 없기에
그분은 하나님이심을 증명합니다. 그러나 또한 인간이기에 사탄이 주는 유혹을 경험합니다.
첫 인간 아담은 유혹에 넘어갔지만 주님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유혹을 말씀으로 물리치십니다.
인간은 약하지만 말씀은 이길 수 있음을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입니다. 인간의 질고와
고난 가운데서도 그분은 죄를 짓지는 않았습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으로 오셨지만 승리하시는
인간이 되셨습니다. 사탄의 시험에 이기신 모습이 바로 우리도 유혹을 이길 수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다빈치 코드라는 작은 주제들은 주님을 인간으로만 보는
예수에 대한 현대인의 반응입니다.
예수님은 경배의 대상이지 우리 인간의 조롱의 대상이 아닙니다. 인터넷이나 무신론자들이 하는 소리는 듣기는 하되 수용하거나 심지어 믿어 버리는 행동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조금만 있으면 알게 될 텐데 왜 유혹에 넘어가십니까? 거짓 된 것들은 주님이 오는 날에 다
무너지게 됩니다. 다 사라지게 됩니다. 오직 진리만이 남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각자 다르게 주님에 대해 반응합니다. 종교 지도자들과 서기관들과
같이 너무 현실적이고 이기적인 계산은 주님을 경배하지 못하게 합니다. 헤롯 왕처럼 자신을 지키기 위해 주님을
죽여야 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도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것을 잃어 버린다고 해도 주님은 경배 받으셔야
마땅합니다.
모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동방박사들에게 나타나기 전에
자신들에게 먼저 말씀하실 것이라는 교만이 앞서 있었습니다. 자신들은 선택 받은 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에게는
나타나고 자신들에게는 감추는 하나님이 싫었습니다. 나중 된 자들이 먼저 된 자들 앞에 설 때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존심 구겼을 것입니다. 다른 성도에게는 뜻을 보여
주시면서 나에게는 침묵하는 하나님께 몹시 불편해 하는 우리들은 아닙니까?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기도는 들어주시는데
나에게는 응답하지 않는 하나님이 죽은 분으로 여겨지십니까?
이제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은 나의 교만과 불신과 원망과 저주를 내 속에서 멀리해야만 주님이 나의 경배 대상이 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경배자가 되는 복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