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13): 우리가 소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5:13

 


올해는 한 주 앞서 졸업 축하 예배를 드립니다. 먼저 지금까지 졸업생 여러분을 인도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축하 받으실 일만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을 세상으로 파송하면서 그 어떤 선물보다 주님의 말씀을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세상의 소금입니다.  

 

첫째, 성도는 세상의 소금이기에 자신보다 상대를 더 귀하게 만드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요리에 음식의 맛을 내는 양념들이 참 많습니다. 그 중에 소금이 있습니다. 소금은 요리 과정에서 자신의 맛보다는 늘 음식 맛을 낫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음식을 먹을 때 특별히 그 요리에 들어간 소금을 칭찬하지 않고 음식 맛이 좋다고 합니다.  

 

꼭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서 오신 주님과 같습니다.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이렇게 사랑한 신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자신이 키우는 강아지를 사랑할지라도 강아지로 태어나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개 취급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셨고. 자신을 죽여 죄인들을 의인으로, 멸망 당할 존재를 가장 귀한 하나님의 자녀로 바꾸어 주신 분이십니다.

 

성도는 세상의 소금입니다. 성도는 소금처럼 자신보다 상대를 귀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나 보다 남을 돋보이게 할 때 사람들은 감동을 먹습니다. 축구시합에서 무리해서 골을 넣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동료에게 자신의 공을 넘겨주어 팀이 승리하게 만드는 감동을 선사하는 플레이어와 같습니다.

 

여러분이 파송 되어 서 있게 될 세상의 자리에서 다른 사람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늘 그들이 있기에 내가 설 수 있음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소금과 같이 감동을 만들어 가는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둘째, 성도는 세상의 소금이기에 세상이 부패하는 것을 방지해야 합니다. 소금은 자신이 변질되지 않기 때문에 부패를 막을 수 있습니다. 소금의 또 다른 매력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어떻게 세상의 부패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 앞에서 거룩을 유지하지 못하면 세상에서 섞게 됩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11:45) 이 말씀은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율법의 사람들이 되게 만든 것이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율법 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율법도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율법이 형식화 되어갈 때 율법은 우리를 외식하는 자로 만들어 갑니다. 위선과 외식이 가득 찰 때 주님으로부터 화 있는 자라고 칭함을 당하게 됩니다. 회 칠한 무덤과 같이 속에는 시체와 같은 죽은 삶이 있고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는 삶은 있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세상을 부패하도록 우리 자신이 만들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겉 사람은 날마다 낡아지나 속 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고후 4:16). 그 이유는 날마다 주 안에서 새로워지지 때문입니다. 내 속에 계신 성령님이 날마다 나를 성화로 인도하기에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 보다는 내일이 다른 나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 원리를 이해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이 땅에서는 점점 주님 닮아가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고후 3:18). 한번 따라 하시겠습니다. ‘나는 주님을 닮아간다.’ 주님 닮는 삶은 성령 충만하지 못할 때 우리는 결코 이루어 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성령충만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만 우리 속에서 이루어 질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성도는 세상의 소금이기에 항상 적절한 양이 들어가야 세상에서 제 맛을 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잘못 오해하면 세상에서 늘 중립을 취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늘 중간 자리에 서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늘 안정적인 자리만 찾는 태도입니다. 하지만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성경은 이것을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 삶으로 소개합니다. 여호수아 1:7절에 의하면 주님이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명령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갈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로 명령을 받습니다. ‘그들에게 주신 땅을 정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막상 가나안에 들어가 보니 두렵습니다.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이 가나안 한 가운데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여리고를 하나님의 기적으로 이겼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 속에 두려움도 생겨납니다. 이번에는 이겼지만 다음에도 이길 수 있을까?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들과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고 타협하기 시작합니다. ‘너무 힘들다 포기하자, 아니면 나중에 우리가 더 힘을 가지고 난 뒤 정복하자. 지금은 힘을 기를 때다.’ 많은 의견이 나누어 집니다.

 

그러나 좌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이렇다 저렇다 나누어질 때 늘 성도는 말씀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성도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신앙인의 태도는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헷갈리는 소리가 들려올 때 여러분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성경을 손에 드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여러분을 지키는 길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도는 세상의 소금이기에 자신이 녹아 없어지는 희생을 감당해야 합니다. 음식 재료들 가운데는 요리과정에서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눈에 뛰어 음식을 돋보이게 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소금은 자신의 형체가 남지 않습니다. 녹아서 더 이상 존재감을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이 철저히 녹지 않아 알맹이가 그대로 있으면 그 음식은 실패한 것입니다.

 

소금은 반드시 죽어야 나중 맛있는 음식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라면 반드시 세상에서 죽으면 산다는 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죽을 때 살아나신 부활을 의미합니다.

 

직장이나 세상 속에서 철저히 자신을 죽이는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죽으면 죽는 것이 아니라 한 알의 밀알처럼 살아납니다. 우리는 죽어야 내 속에 있는 생명 되신 주님이 살아나십니다. 세상은 자신이 죽지 않고 자신이 살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자신들이 그 영광을 가로채 가 버리는 것이 됩니다. 우리들은 살던 죽던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철저히 남을 위해 죽는 사람입니다. 직장에서 나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해도 죽으십시오, 살아계신 주님이 듣고 계십니다. 경쟁에서 나의 의견이 덮어질 때 믿음을 가지십시오. 여러분은 강한 생명을 가진 한 알의 씨앗이기에 다시 살아납니다. 그들이 다시 나중이라도 곰곰이 여러분의 아이디어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마치 긴 겨울에 모든 것이 죽은 듯하지만 대지를 뚫고 새싹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여러분이 제안한 그 아이디어의 신선함에 놀라고 나중에라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자신이 죽지 않으려고 하지만 우리는 죽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들이 오 리를 가자고 할 때 십 리를 갈 수 있습니다( 5:41). 더 힘든 것을 부과할 때 회사에서 실험실에서 투덜거림 없이 맡으실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못하지만 내게 힘주시는 그분의 능력으로 능히 감당할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왼뺨을 때리면 오른쪽까지 내어 드릴 수 있습니다(5:39). 나의 조그마한 잘못을 드러내어도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명령이 모든 사람과 화평하라( 12:18)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겉옷을 달라 할 때 속옷까지 줄 수 있습니다( 5:40). 때로는 수치와 모멸감을 주는 일들이 있을지라도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있습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억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이미 주님과 함께 죽은 자는 수치와 모멸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냥 죽은 것입니다. 그런 것에 감각이 없습니다. 느낌이 없다기 보다는 성도는 그것을 이길 사랑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더 큰 사랑이 있으면 우리에게 던지는 모멸감이나 수치감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을 때 주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존재로 여겨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으로 앞으로 파송을 받게 될 졸업생 여러분.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세상의 소금입니다. 소금이 되어 사시기 바랍니다.

 

졸업생 되시는 분들 다 일어서시기 바랍니다. 이들을 위해 통성으로 기도하며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