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17): 영적 계절 감각을 주셨습니다 

24: 3-14

 


이타카는 사계절이 있어 참 좋습니다. 요즘 날씨가 더워지는 것을 보면 여름이 온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사는 자연 세계에 사계절이 있다면 영적 세계도 영적 계절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영적 계절을 주신 이유는 세상 끝에 대한 징조를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성도는 영적 계절을 느끼는 감각을 갖고 있어야만 주님 오심을 준비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 세상이 끝이 나고 있음을 알리는 시작은 우리 삶에서 세 가지 재난들이 일어나는 때 부터입니다.  


가장 먼저 언급된 것은 영적 혼란입니다. 4절에 보면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를 주고 있습니다. 미혹하는 자들을 성경은 거짓 선지자라 부릅니다. 즉 종말의 시작은 거짓 예언자가 어느 때보다 많이 일어날 것을 11, 23-26절에서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그들의 특징은 주님의 이름을 빌린다5절에서 말합니다. ‘예수라는 이름보다 많이 불리고 존귀함을 받는 이름은 없습니다. 이것은 권위를 가지지 위함입니다.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말하여 수 많은 사람을 따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24절에 의하면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증명하기 위해 그들은 큰 표적과 기사까지 행한다고 합니다. 이들의 다른 특징은 광야에서부터 골방까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거짓 예언자가 앞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할 수만 있으면 택한 자들을 미혹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런 사람들을 믿지 말 것을 23, 25, 26절에서 세 번이나 당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끌려 간다는 것이 또한 믿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입니다.

 

다음으로 언급된 재난은 6-7상반절을 보면 전쟁으로 인한 인간 비극입니다. 민족과 민족 사이에서,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 서로 죽이는 전쟁의 대 혼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가장 큰 비극은 전쟁입니다. 전쟁은 사람들의 생명이 위협받는 공포로 몰고 간다는 의미입니다. 두려움과 염려 그리고 생이별의 아픔이 우리 삶 가운데 일어날 것을 말합니다.

 

끝으로 세상의 마지막이 시작됨을 알리는 징조는 7하반절에 의하면 천재지변의 혼란입니다. 자연계의 변화입니다. 기근과 지진 등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자연재해 앞에 인간은 어쩔 수 없습니다. 즉 종말은 인간의 위대한 지혜로도 막을 수 없음을 가르치기 위해 자연의 대변화를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재난은 어느 일정 기간 동안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일 것입니다. 국지적인 현상이 아니라 전 세상이 다 겪게 되는 혼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재난 가운데는 믿는 자, 안 믿는 자의 구별이 없습니다. 모두가 곤란과 어려움을 당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단지 세상의 마지막을 알리는 전초에 불과하다고 8절에서 말씀합니다.

 

둘째, 모든 사람들이 재난 가운데 힘들어 할 때 특별이 성도는 더 추가적으로 고난을 더 받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9절을 보면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너희는 그들과 구별된 믿는 자를 의미합니다. 이 환난의 특징은 그리스도인이라는 특정인들을 향한 세상의 핍박입니다.   

 

환난에 믿는 자들을 넘겨준다는 의미는 결국 죽임을 당하도록 한다는 뜻입니다. 아마도 이때 계 7:14절에 언급된 ‘흰 옷 입은 자들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즉 순교자가 발생할 것입니다. 그 죽음은 단지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만입니다. 그리고 10절에는 믿는 자들끼리 서로 미워하여 잡아준다고 말합니다. 우리 안에도 서로 미워할 수 밖에 없는 갈등 요소가 생긴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넘겨줌을 당한다는 것을 또 다른 의미에서 보면 믿는 자가 대다수가 아니라 오히려 수적 열세를 의미합니다.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때는 초대교회 시기였습니다. 그때는 적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주님을 따르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다수가 소수를 밀어 붙여도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던 때입니다.

 

이것을 감안하면 앞으로 복음이 전파되는 것과 수적으로 성도가 늘어나는 것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마지막 때에는 수적 증가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질적 성숙을 요구하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내 믿음을 지키기도 너무나 힘 들기에 이것을 9절 이후에는 앞의 재난과 구별하여 환난이라고 소개합니다.   

 

이 환난의 시기에 크리스천들이 믿음을 지키기가 힘들다는 것을 10절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실족하게 되어”(개정)라고 말합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좀 더 쉽게 많은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로 번역합니다. 12절은 실족하고 믿음에서 떠나게 되는 이유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불법이 성하므로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불법이 성한 이유는 앞에서 일어난 재난들이 가져다 준 결과일 것입니다. 전쟁과 기근 등으로 먹고 살기가 더 어려워 졌다는 의미입니다. 직장 구하고, 결혼하고, 아이들 키우고 사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기에 불법이 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살기 위한 방법들을 찾다 보면 서로를 속이고 거짓으로 살아남는 방식이 성행하게 될 것이 예상됩니다.

 

종말의 때에 인간은 삶을 영위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살아가게 될 것을 나타냅니다. 인간이 삶을 영위할 때는 그래도 살 만합니다. 왜냐하면 서로 돕는 정도 어느 정도 우리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생존모드로 전환이 되면 사랑은 식고 살기 위한 투쟁만이 남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을 넘겨 주어서라도 생존하려는 극치의 인간 양심의 상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재난에 이은 환난의 모습들입니다.

 

셋째, 이제 정말 확실한 마지막 징조는 땅과 하늘 두 곳에서 각각 따로 보여주는 징조들입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징조들이 일어나면 정말 마지막 순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먼저 땅에서의 최종 징조는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것이라고 14절에서 선포하십니다. 나라가 아닌 민족입니다. 자신들의 문화와 고유의 언어체계를 가진 소수의 사람들(“미종족”) 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재난과 환란 가운데도 복음은 계속적으로 전파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성도는 마지막 순간까지 쉬지 않고 전도와 선교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어떠한 핍박 가운데도 이 땅에서 지속된다는 뜻입니다. 또한 전도와 선교가 땅끝을 향해 계속 나아간다는 것은 신앙의 성숙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숙된 성도는 재난과 환란 가운데도 성장과 성숙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숙된 성도는 고난이 와도 인내합니다. 끝까지 견디는 힘이 있습니다. 나의 주님을 배신하지 않습니다. 나의 이익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불법을 행하지 않습니다. 내 것을 나누어 주는 삶을 힘이 들어도 지속합니다.

 

성도는 그래서 마지막 때에 빛입니다. 성도는 어려울 때 빛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어두워 못 보는 사람에게는 진리로 인도하는 빛입니다. 사랑이 식어 모두가 냉랭하게 살아가는 때에는 따스한 온기가 되어 추위를 이겨 낼 수 있도록 돕고 나누는 사람들입니다.

 

한편, 확실한 종말의 마지막 징조는 땅에서만이 아니라 하늘에서도 일어납니다. 29절을 보시면 환난의 날들이 지난 즉시 하늘의 혼돈이 일어 나는데 바로 이것이 정말 주님이 재림하는 표시입니다.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잃고 별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릴 때 인자의 오심이 하늘에서 보일 것입니다(30).

 

지금까지 세상 마지막 때의 시작을 알리는 재난들과 시간이 더 지나면서 혹독하게 크리스천만을 향한 환난이 있었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은 이 땅에 사는 모두가 겪는 어려움이었습니다. 비록 세계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는 것이긴 했지만, 진짜 마지막 때의 최종적 징조는 우주적 스케일이라는 것입니다.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않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현상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확실하고 명백한 징조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보면 30절에 의하면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진짜 종말이 올 줄 몰랐다는 것과 거짓에 속았다는 억울함입니다. ‘너무 늦었구나하는 후회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눈물을 주지 않기 위해 영적 변화를 잘 감지 할 수 있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주님 다시 오심은 온 인류의 심판이기에 어떤 사람에게는 복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재앙이 되는 날이 될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한 가기 질문은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에 답해야 할 시간입니다. 24장 전체에는 세 가지로 답하고 있습니다.

 

먼저 13절을 보면 견디라고 말합니다. 그것도 끝까지 말입니다. 그래야 승리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끝까지 견딜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어디로부터 공급받게 될까요? 바로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제일 중요합니다. 믿음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소망은 종말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 인내를 끝까지 가게 만듭니다.

 

세상으로부터 고난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주님께로 더 사랑 받고 있다는 사실이 더 크면 어떤 힘든 시간도 견디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신을 배신한 베드로를 만나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었던 이유입니다.   


다음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2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환난이 믿는 자들에게 불어 닥칠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너무나도 감사한 것은 그 환난의 날을 없게 하지는 않지만 그 날의 수는 믿는 자들을 위해 감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연약한 믿는 우리들을 위한 주님의 특별한 배려입니다. 환난 날을 없애지 않는 것은 영적 변화를 추적해 오던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함입니다. 영적 계절을 감지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그 날들이 빠지면 상당한 혼란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말세의 징조들을 알 수 있도록, 느낄 수 있도록, 볼 수 있도록, 들을 수 있도록, 영적 계절의 변화를 말씀으로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들의 감사 제목에 이것도 반드시 추가하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42절을 보면 깨어 준비할 것을 당부하십니다. ‘독수리가 모여드는 곳에 죽음이 있다’(28) 그리고  무화과 나무를 보면 알 수 있다’(32)라는 표현들은 주님이 주신 종말의 징조들을 보고 확실히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그 준비하는 과정 속에 빠질 수 없는 것 하나를 당부하십니다. 바로 45절에서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일입니다. 이것이 진정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가 준비해야 할 삶입니다. 힘들어도 말씀을 매일 먹는 묵상이 있어야 합니다. 바빠도 말씀 읽고 공부하고 출근하셔야 합니다. 시간 내어 전도해야 합니다. 물질이 없어도 선교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가정의 자녀들에게 말씀으로 매일 먹이는 부모들이 살아나야 합니다. 이런 것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진정 충성된 종들입니다.

 

그래야 앞으로 오게 될 재난과 환난의 때에 인내하여 배교하지 않는 충성된 자녀들을 길러 낼 수 있습니다. 영적 계절을 잘 구분하여 엉뚱한 거짓 예언에 속지 않는 신실한 성도들이 우리 공동체 내에 있게 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가장 먼저 구원을 허락 받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소망으로 주님의 오심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끝까지 견디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셔서 저 천국에서도 다시 만나는 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