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7): 스스로 일어나 움직이게 하십니다
행 3:1-10
새
학기가 한 주 지났습니다. 특히 신입생 여러분들은 이곳에서 누군가의 도움 없이 살아가는 시간들이 어떠했습니까? 스스로
생활한다는 것이 재미도 있지만 쉽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가을학기에는 우리 모두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들로부터 일어나 걸으시기 바랍니다.
첫째, 스스로
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을 미뤄두거나 하지 않고 있는 것이 무언인지 살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2절을 보면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날마다 한 지정석에 앉아 성전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는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다는 안타까운 사정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평상시처럼 제 구시가(오후 3시) 되자 사람들은 모두 성전으로 기도하러 가기
시작합니다. 이때 베드로와 요한도 성전으로 올라갑니다(1절).
성전으로 올라간 이유는 물론 기도하러 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그들만이 모이는 곳이 예루살렘에 따로 있었고(1:13) 그곳에서 주로 기도를 했던 것으로(2:1)
보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성전에 간 다른 이유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주님이 성전에서 하셨던 것과 같은 일을 하기 위해서 입니다. 성전에 기도하러 모이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올라갔을 것입니다.
모두가
기도 시간에 맞춰 분주하게 올라갑니다.
그런데 한 예외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데 자신은
매우 느긋해 보입니다. 이미 그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역시 성전 안에 있어야 할텐데 바같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기도하러 오는 시간에 맞추어 오는 것이 아니라 미리 와 있습니다. 그래서3절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보고 구걸하기 때문입니다. 일찍부터 와서 자리를 잡고 구걸하는 매일의 삶이 그의 일과였습니다.
그는
살기 위해서 누군가가 그를 매일 메고 오면 구걸해서 번 돈으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한번도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늘 누군가에게 의지해야만
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이것을 비난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그의 처지를 우리는 이해하고 동정합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중요한 것은 기도하는 일입니다.
성경
본문은 그가 먼저 와서 성전에 들어가 기도하고 나와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구걸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를 아는 사람들도 매일 그가
살아가도록 구걸하는 장소에만 데려다 줍니다. 그를 돕는 분들도 그에게는 단지 먹고 사는 것만 중요하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는 중요한 것을 알고 있지도 못했고 행하지도 못했습니다. 우리 모두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피는 분이 되기 바랍니다.
아무리
바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직장에 나가야 하는 삶이 있다하더라도
매일의 영의 양식을 먹고 호흡하는 더 중요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둘째, 스스로 움직이기 전에 먼저 도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누군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주위에 있다면 손을 내밀어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바랍니다. 3절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그는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의 도움 요청은 그가 살 수 있는 돈을 구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스스로 일어남의 기적은 시작됩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 나쁘지 않습니다.
돕기 위해서 우리 곁에 다른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이고 공동체가 있습니다.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특히 학부 신입생들은 지금까지 부모님들의 도움으로 학교 가고 모든 것이 부모님들의 지도하에 삶을 살아왔습니다.
이제 독립해서 한 주 살면서 이미 눈물로 지새운 분도 있을 줄 압니다. 아직 눈물이
안 나왔다면 견딜만한가 봅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겨울이 있으니 기다려 보시기 바랍니다.
공부하는
것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기본적으로는 미국 교육시스템 속에서 자란 분들은 그다지 생소하지는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고등학교라는 범주가 아닌 대학이라는 낯설은 분위기가 조금 어색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에서 유학오신 분들은 좀 더 자율적이고 여러분의 참여를 요구하는 수업 등이 조금 더 낯설게 느껴질 것입니다.
여기서
태어난 분도 있지만대부분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른 이국 땅에 유학생으로 이민자로 있습니다. 도움이 많이 필요한 곳임을 의미합니다. 남편 따라 오신 주부들 이타카와 코닝이라는 새로운 지역과 환경들이 여러분들을 맞이할 것입니다. 어디를 가도 새롭고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교통 신호등 체계 등 새로운 것들이 눈에 띄고 어색할 것입니다.
어린
우리 자녀들도나름대로 스트레스가 있을 것입니다. 학교에 가면 들리지 않고 잘 말도 안 되어서 몇 달은 고생할
것입니다. 아이들 학교에서 돌아오면 부모님들 더 많이 챙겨주시고 위로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어른들도 잘 되어야겠지만 아이들도 우리 주님의 미래입니다. 더 많이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는
부모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삶의 자세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다 참석은 힘들지만 토요 새벽기도회에 오셔서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남편들 되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이곳에 오시기 전에 어떤 신앙생활을 했는지 모르지만 새로운 교회에 적응하고 사람들을 알아가는 것 시간이 걸릴것입니다.
그러나 도움이 필요하면 도움을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새로 오신 분들은 심방 예배를
요청하시고 목장 모임에 가서 어려움들 있으시면 기도제목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코넬에
있는 다른 모임들도 여러분에게 정보를 주고 싶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믿음의 공동체로
영적인 면을 더 돕습니다. 내 영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복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스스로 일어나 걷기위해서는 나의 심령에 ‘일어나 걸으라’는 성령의 소리가 들린다면 믿음으로 일어서기
바랍니다. 6절에 성령에 충만한 베드로가 그 사람에게 말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이 사람은 참 다행이었습니다.
성령에 충만한 베드로와 요한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생활을 해 나가면서 목장지기님들 부서장 팀장님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그분들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에 민감하시기 바랍니다.
대부분은 요청의 소리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요청은 여러분에게는 일어나 걸으라는
소리입니다. 멈추어 있는 섬김의 자리에 나아오라는 것입니다. ‘일어나라’는 것은 ‘주의 일을 하라’는 소리입니다.
소리를 듣고 일어나 걸어야 합니다.
앉아
있는 자는 구걸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일어난 자는 스스로 일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남을 도울 수 있는 자로
변합니다. 앉아있을 때에는 늘 남들의 도움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스스로 일어나 걸을 때는 자신과 같이 실망되어 주저 앉아 있는 분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고 일어나 걸으시기 바랍니다.
스스로 행하시는 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많은 교회 부서들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중보 기도팀, 내년 1월 달에 가게 될 이디오피아
선교팀, 내년 7월에 이루어질 유티카 난민사역, 교회어린이 교사, 한글학교, 호산나 찬양대,
찬양팀, 음향 담당자, 설교 번역팀 정말 많이
있습니다.
이
소리는 새로 오신 분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미리 오셔서 일년, 이년을 보내시는 성도님들에게도 해당되는
소리입니다. 아직 주의 일에 섬겨보지 못했다면 오늘부터라도 성령의 소리에 반응하여 자리를 들고 일어나 스스로
걷는 자리로 나아가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붙잡아 두었던 것이 무엇입니까? ‘스케줄이 바빠요. 실험이 안 풀렸어요. 논문이 잘 안
쓰여지네요. 수업이 부담되네요.’ 이것들이 여러분을 일어서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입니까?
모두들
한번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이 믿음이 여러분을 일으켜 세울
줄 믿습니다. 오늘 결단의 주인공들이 바로 신입생들과 새 가족들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겨 볼 마음의 결단이 결단이 있는 복된 시간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의
능력이 부족하면 주님은 채우십니다.
능력이 없으면 하늘이 문을 열고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부어주십니다. 이것이 성도의
삶이며 복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으로 사는 자가 아니라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들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일어선 사람은 주의 일을 할 때 주님이 만족해 하는 수준까지 더 나아가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스스로 일어나지 못한 이 사람이
치유되는 기적을 주신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14절을 보면 그가 치유함을 받은 이후 베드로와 요한의 곁에
있었다고 합니다.
병
나으면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 많을 것입니다.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여행도 해보고 싶을 것입니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 먹으러 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번도 친구랑 놀지 못했는데 이제 그들을 만나러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일을 먼저 하지 않고 사도들과 함께 다니며 그들의 위협에 증인이 되어 주었습니다.
유대
공회는 사도들의 기적으로 고민하게 됩니다(4:6).
그래서 대책을 세우기 위해 제사장들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이런 식으로 가만히 두었다간
유대교를 믿던 사람들이 전부 개종할 지경입니다. 사람들이 4:4절에
의하면 오천 명씩 예수를 믿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병자가 나았다는 소문이 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걷게된
이 사람은 자신을 고쳐준 사도들이 옥에 갇히게 되었다는 소리를 들은것 같습니다(4:3). 자신에게도 위협이 올 것을 느끼고 도망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낫게 해준 기적을 보며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증인의
삶입니다. 진실은 두려움을 물러가게 만듭니다. 그는 사도들 곁에 서
있게 됩니다(4:14).
그리고
사도들이 단호하게 말씀을 전하는 모습을 보며(4:20)
이름도 없는 그도 새로운 하나님의 증인으로 살아갔던 것입니다. 사도들의 힘이 되어
준 것 입니다. 공회원들도 사도들에게 세상을 어지럽히는 종교라고 비난을 하고 싶어도 이 사람으로 인해 실제로
능력 있는 뭔가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고 4:17절은 기록합니다.
재미있는
책이 있습니다. 오래 되어 책이름과 저자도 기억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예수님이 고쳐서 나은 사람들이
과연 어떤 삶을 살아 갔는가를 상상하면서 기록한 책입니다. 그들이 모두 다 주의 일에 더 열심을 내어 일했을까?
라는 의문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입니다.
과연
그들은 치유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답은 기대했던 대로 그들은 주님을 위해 일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일을 하며 살아갔습니다. 이런 모습은 10명의 나병환자들이 치유함을 받고 오직 한 사람만이 주님께 돌아와 감사하는 모습을
성경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코넬한인교회 성도 분들은 한 분도 빠짐없이 성령이 힘주시어 스스로 결단하고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의 일도 최선을 다하십시오. 더 나아가서 나를 일어서게 하신 주님을 위해서도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