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12): 사람을 찾습니다
행6:1-7
교회는
늘 사람이 필요로 한 곳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성령이 그 사실을 알고 사람을 찾는 일을 멈추지 않고
계십니다. 성령님이 찾는 사람은 누구이며 어떤 이유 때문인지 말씀을 통해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성령은 교회가 성장할
때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고충을 해소시키기 위해 사람들을 찾습니다. 사도들의 기적들이 초대교회의 성장에 한몫을 했습니다. 하지만5:42절을 보면 ‘성도들이 집집마다 다니며’ 전도하는 모습 또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쉬운성경). 그 결과 6:1절에 날이 갈수록 제자들의 수가 늘어갔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는 성장과 함께 자연스럽게 문제를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구제사업의 영역에서 발생하였습니다. 매일 교회가 음식을 나누어 주면서 헬라어를 사용하는 과부들에게
관심을 쏟지 않아 그들이 배급을 받지 못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자신들이
구제에서 빠지는 것을 불평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현상은 고의적인 잘못이 아닙니다. 수적으로 증가하는 교회가 일으킬 수 있는 자연스런 현상 중의 하나였습니다. 성도는
늘고 구제 대상들은 점점 늘어날 때 사람들이 모자라는 일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교회는
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편 사람들이 늘 부족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
현상은 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미국이나 한국이나 어디에나 같은 현상입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들이 모이는 것에 비례해서 봉사하고 섬기는 분들이
적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몸 된 교회가 이루기 원하는 사역들을 진행하도록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새 학기에
많은 분들이 우리 교회에 오셔서 섬김의 자리에서 봉사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성도는 어느 교회를 다니시더라도
제직으로 봉사하고, 예배, 교육, 구제와 봉사, 전도와 선교, 친교의
영역에서 섬기는 분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숙된 신앙은 말씀대로 배우면 그대로 살아가는 삶이 교회 신앙생활
가운데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캠퍼스에 있기에 많은 분들이 오고 가는 변화가 많습니다. 그래서 새로 오시는 분들이 적극적으로 빈자리를
채워주지 않으면 정말 힘든 곳입니다. 그래서 더욱 성령님은 사람들을 찾아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도록
부르십니다. 이곳에 계시는 분들이 오시는 여러분들을 섬길 수 있는 수가 늘 부족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못하더라도 한 학기를 보낸 뒤부터는 더 적극적으로 섬김의 자리들을 채워주는 성도로 성숙해 갈
줄 믿습니다.
둘째, 성령은 성도가 감당 할
수 있는 사역을 맡김으로 목회자들로 하여금 주님이 명령한 사역에 집중하도록 하십니다. 2절에 의하면 교회에 불평이 들려오기 시작하자 사도들은 성도들을 불러 모으고 이런 일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풀어갑니다.
사람들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지만 더 큰 문제가 사도들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이 음식을
나누어 주는 구제사역을 맡다 보니 정작 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소홀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르치는 일을 못했다는 것은 섬기는 사람들을 훈련시키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많았지만 정작 섬김의 봉사자는 많이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더 많은 사람들을 구석 구석
관심 있게 살피지 못하는 일들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사도들은 교회에 제안을 하게 됩니다(3절). 자신들을 대신해서 섬길 사람들을 뽑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초대교회가 교회를 운영해 나가는 행정적인 발전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일곱 집사가 선출됨으로 구제와
봉사 영역에서 섬기게 되고, 반면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을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영역에 더 집중하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 교회도
이제 네 분의 장로님이 세워집니다. 네 분들은 각각 예배, 교육, 구제와 봉사, 전도와 선교, 친교의
부서들을 맡아 팀장님들과 제직들과 하나 되어 더욱 활발하게 사역을 이루어 나갈 것입니다. 모든 제직들은
각 사역부서에 참가하고 사역들을 협력하며 함께 이루어 가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성도가 교회에 오게 되면 제직으로 임명 받고 부서에 들어가서 3년 정도 한 부서를 섬기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나가면서 맡은 부서에서 전문가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3년 간격으로 로테이션을 하며 각 부서들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모두가 예외 없이 각 부서들을 골고루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1년 있다 가시는 분들은 1년이라고 그 부서에서 최선을 다해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목회자는
일년의 목회 계획을 세우고 당회와 협의해서 제직들에게 발표하게 됩니다. 그러면 제직들은 부서장님들과
협의해서 어떻게 추진해 나갈 것인가를 기도가운데 계획하고 실제 실행해 나가게 될 것입니다.
온 성도가
참여하는 목회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부서별로 책임 맡은 장로님들이 소개 될 것이고 그 부서를 담당하게
되는 팀장님들이 섬기는 분들로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말씀에 집중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졌을 때
7절에서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더욱 왕성하여졌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사람들은 더욱 증가했던 것처럼 우리
교회도 놀라운 역사를 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셋째, 성령은 주님이 원하는
자격을 갖춘 사람들을 교회가 인정하는 방식을 통해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사도들이 하던 구제의 일들을 대신할 사람들을 세우려 할 때 네 가지 조건을 제시합니다. 3절과 5절에서 공통된 것은 성령충만입니다. 그런데 각각 다른 점은 3절에서는 지혜가 충만한자, 5절에서는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먼저, 성령 충만해야 할 이유는 우선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롬 8:9).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하나님으로 부터 주어지는 힘을 공급받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행할 때 어느 누구도 지속적으로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이
능력주실 때만이 우리는 어려운 일도, 하찮은 일도 지치지 않고 수행해 갈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눈치보며 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 이름나는
것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시간나고 내 체면 구겨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될 때만 발을 넣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그 모든 조건에 구애없이 주의 능력으로만 하게 됩니다. 성령은 우리들로 하여금
모자라면 채워서 하게 합니다. 힘이 없으면 새 힘주시며 추진해 나갑니다. 주머니가 비면 세상의 것들을 흔들어 우리에게 전부 쏠리게 하셔서 채워주십니다.
이것을 믿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다음으로
요구되는 지혜와 믿음은 성령의 은사로 주어지는 것입니다(고전12:8-9). 성령 충만한 사람이 갖는 지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믿음의
공동체가 무엇때문에 이 사역을 하는지를 알고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교회일을 하다보면 세상이 하고 있는
방향으로 일을 추진하는 때가 간혹 있습니다.
바로 이때
우리가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지를 깨닫고 다시 궤도수정을 하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사람들을
살립니다. 절대로 사람들을 죽이지 않는 교회 사역이 되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은 구원을 향해 나아가기에 사람들을 단지 배부르게 하고 옷을 입히는 것만으로 교회 사역을 마치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조건은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는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한편으로, 전문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앞으로 이들이 맡아서 할 일들은 사람들로부터
원망을 산 일이기 때문에 행정적인 처리 능력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특별히 2절에 “접대를 일삼는 것”에서
‘접대’라는 용어는 음식을 나누어 주는 일도 포함하지만 ‘재정출납’의 의미도 있기에 어느 정도 전문성도 요구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주의 일을 위해 믿음만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주의 사역에 사용 되었음을 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성령은 모든 것을
선하게 이루어 갈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특별히 골라 부르십니다. 그들이
5절에 일곱 집사입니다. 그들 이름을 일단 보시기 바랍니다. 모두가 히브리식 이름이 아니라 헬라식 이름들입니다. 물론 히브리식
이름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헬라파 유대인들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예루살렘에 살던 히브리파 유대인들도 아이들의 이름을 그렇게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곱 집사 이름이 모두 헬라식 이름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자신들의 과부들이 빠진 것을 적극적으로 원망했던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들이 직접하지 않았다 해도 영향은 받고 있었을 것입니다.
일곱 집사들은
이제 기득권을 얻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자신들의 사람들이 밀리지 않도록 힘을 발휘할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아마도 자신의 가족들에게 이득이 돌아가도록 더 보살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 일이 더 잘 안 되야 할 텐데 반대로 잘 진행되어 갔습니다.
일곱 집사는
교회가 자신들에게 맡겨준 구제사역에 열심을 다했음을 결과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7절 상반절을 보면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의 수가 더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분석한 문제들을 잘 다루었고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에게도 골고루 음식을 배분하여 원망이 그치게
되었을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로부터 더 칭찬을 받고 더 많은 소문이 나서 사람들은 주님을 믿게 되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 내었던 것입니다. 어찌된 일입니까?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원망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아니라는 것을 우선 말해줍니다. 그들 가운데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성령은 모든 일을 선하게 이루어 가기 위해 그 사람들을 원망 가운데서도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원망 속에서 불평에 동조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원망에 묻혀 자신들이 불리하다고만 소리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를 살피는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불평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어는 누구보다 문제를 잘 파악하고 있다는 의미도 됩니다.
이들이
자기 일을 잘 해줌으로 사도들도 주님이 그들에게 명령하신 말씀을 더 전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원망하는
자들 가운데 이런 믿음의 사람들을 불러 내지 않았다면 교회는 더욱 어려운 가운데 빠져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원망을 누르고 하나님의 선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을 특별히 골라 불러 내었던 것입니다.
우리 코넬한인교회
성도님들도 성령의 부르심이 있을 때 응답할 때 선한 일에 내가 동참한다는 믿음을 가지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