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풀리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행 16:16-34
2016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되돌아보면 슬프고 힘든 일들 하나님의 은혜로 잘 견디어 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풀리지 않고 근심 가운데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올해 마지막으로
나누고 싶은 것은 우리 앞을 가로 막고 있는 문제들이 풀리는 비밀입니다.
16절을 보면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 머물던 어느 날 귀신들린 한 여종을 만납니다. 이 여종은
따라 다니면서 바울이 가는 곳마다 이렇게 소리칩니다. “이 사람들은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종들이다.
이 사람들은 여러분에게 구원의 길을 전하고 계시다”(17절). 언뜻 들으면 틀린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지극히
높으신 분으로 인정마저 합니다. 게다가 바울 일행을 구원을 전하는 자들로 칭하며 큰 소리로 전도의
효과를 높여 주고 있습니다. ‘가만히 두어도 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잠시 듭니다. 실제로 바울 일행은 며칠동안 가민히 그녀를 두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확실히 잘못된 것입니다.
우선 그들을
계속 따라 다니며 큰 소리를 냄으로 바울 일행이 복음을 전하는데 방해를 받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귀신의
힘을 얻어 점을 치는 자였습니다. 가만히 두면 귀신의 힘에 밀리는 꼴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울 일행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챈 여인을 더 영적파워가 있다고 사람들이 따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도시는
주님을 믿기보다 귀신에 더 의존할 것입니다. 하나님 영광 보다는 사탄이 승리하는 꼴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것을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며칠이 지나’도록 왜 가만히 두었느냐는 것입니다. 심지어 18절에
‘참다못한 바울은 돌아서서’라는 구절은 의도적으로 참아 왔다는 뜻입니다.
바울 일행은
앞에서 해오던 것처럼 왜 당장 귀신을 쫓아내지 않고 있냐는 것입니다. 답답하지만 그들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 일행이 머무는 빌립보는 매우 중요한 선교지였기 때문입니다. 초대 기독교가 새로운 세계인 유럽을 접수하느냐 못하느냐를 결정지을 만큼 중요한 곳입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곳에서 문제를 일으킨다면 앞으로 게속 복음을 전하는데 방해가 될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던 것입니다. 혹시 1차 여행 때처럼 추방을 당했던 비시디아 안디옥(13:50)의 경험을 떠올렸는지 모릅니다. 상황을 보니 이 여인은 놀랍게도 주인들이(16절) 있었고 그들은 여종으로 인해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이런 여인을
처음부터 고친다면 전도는 물 건너 갈 것이라는 선교팀의 판단이 앞섰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뭔가를 깨닫게
됩니다. 빌립보에 와서 루디아 가정이 믿고 구원 받은 이후에는 계속 다른 열매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령이 더 이상 역사하지 않고 있는 것을 안 순간 하나님의 뜻을 개달은 것입니다.
사탄의 힘을
빌어 점을 치는 이 여인에게 들어있는 귀신을 몰아내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겠는가! 자신들의 인간적인 생각이 성령의 역사를 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문제가 생기지 않고 쉽게 가는
것을 선택한 것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 삶에 있어서 이런 태도 하나님 뜻 아닙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그들을 어려워 보이는 곳으로 오게 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힘들다고 포기하고 더 쉬운 것 선택하면 이곳에
보내신 분의 의도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곳에 오게해서 무엇을 이루게 하려 했는가에 더 집중해야
합니다. 먼저 주님의 목적을 이루기를 원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게다가 하나님
의지하지 않는 것 하나님 영광 가리는 것입니다. 여러분께 주신 능력 사용하지 않는 것 주님 못 마땅해 하십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씀으로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생각 거두어 들이고 다시 주
안에서 도전하기 바랍니다. 이것이 문제를 푸는 첫 비결입니다.
바울 일행이
깨달음이 있은 후 드디어 귀신을 내쫓습니다. 그러자 더 심각한 문제가 닥칩니다. 주인들이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음을 알고 바울 일행을 잡아 로마 관리에게 넘깁니다(19절).
그들은 바울 일행을 잡는 합당한 이유를 제시합니다. 늘 사탄은 우리를 꼼짝 못하도록
가장 현실적인 이유를 내놓습니다.
비교하게 합니다. 그것이 돈일 수도, 더 편한 장소일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내가 고민하는 문제들이 풀릴것 처럼 유도합니다. 매력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사탄은 늘 속이는 자입니다. 쉽고 더 넗은 길은 늘 사탄이 우리를 유혹하는 도구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을 계속
힘들게 만들어야 이곳을 떠날 것입니다. 그래야 더 이상 복음이 전해져서 생명들이 살아나지 못할 것입니다.
더 이상 빌립보를 생각조차 못하도록 사탄은 생각을 집어 넣으려고 노력합니다. ‘이곳은
저주 받은 곳이야. 아무것도 안되. 빨리 다른 곳으로 가야 우리가 더
하나님의 영광 드러낼 수 있어.’
그래서 사탄은
바울 일행을 더 괴롭게 하기위해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을 고발하게 합니다. 조용하고 안정한 자신들의
생활을 이방인들이 와서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로마 시민들이 받아들이고 실천하기 힘든 풍습을 선전한다는(21절) 죄목입니다. 이들이 반드시 떠나야 하는 합당한 이유를
제시합니다.
로마제국의
기강을 흔드는 어떤 사상이나 종교도 허락할 수 없습니다. 로마황제만이 주인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예수만이
그들의 주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로마 법을 어기는 것으로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군중들도 돕고 로마 관리들도 한 마음이
되어 감옥에 가둡니다(23절).
자신의 생각
버리고 하나님 뜻따라 귀신을 내쫓았는데 현실은 더 악화되어 갔습니다. 여기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더욱 어려운 상황이 될 때 가만히 못 있고 돕는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천사도
보내지 않고 직접 나서 하늘에서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옥터가 흔들리고 문이 열리며 발에 묶은 차꼬가 다 풀려
버립니다.
이때 마지막
시험이 주어집니다. 이 상황이면 바울 일행은 도망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하고 있는 것입니다.
형편이 조금 좋게 풀리면 우리는 너무 내 형편으로만 해석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을
도망가라는 싸인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도망갔다면
아픈 몸으로 얼마가지 못해 잡혔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성령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았기에 기다렸습니다.
베드로의 경우에는 두 번다 천사가 나타났던 것을 잘 알고 있었던 바울입니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천사가 나타나지 않았고 그들을 데리고 나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눈
앞에 일어나는 기적조차도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고 성령의 움직임을 기다린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를 풀어가는 두 번째 비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자세입니다. 기다릴 때 하나님은 기적을 베푼 목적을 보여 주십니다. 이 사건을 보고 목숨을 끊으려는 간수의 생명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의 생명도
구하지만 온 가족이 예수를 믿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죄인들 역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증인이 되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예수 믿고 구원 얻었다는 기록은 없지만 이들 역시 성령의 능력과 간수가
하나님을 믿는 역사를 체험합니다. 이들이 나중 온 유럽에 예수를 소문내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상하는
것을 넘어 역사하는 하나님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더 좋은 환경이 내게 주어진다고 해도 우리가 성령보다 앞서 나가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하실 때까지 기다리는 믿음과 희생이 필요합니다. 2017년도에는 이런 믿음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