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1): 풍족함으로 나눕니다
시편 37:9-26
새해가 오면
모두들 올해 특별히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나름대로 결심을 합니다. 코넬한인교회가 한 해 동안
열심을 다해 나갈 방향은 ‘구제와 봉사로 세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도가 왜 이 사역을 해야 하며,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를 말씀 안에서 답을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우리가 세상을 향해 구제와 봉사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고, 국가가 세금을 거두어 복지를 이루어 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한 나라 지도자로 선출되는 분들이 공약으로 보편복지를 실현하겠다고 까지 하는데 왜 교회까지 나서서 도와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해도 필요한 사람들은 늘 있기 때문입니다. 항상 누군가의 도움과 구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생겨 납니다. 갑자기 개인에게 닥친 사고가 생깁니다. 예상하지 않은 천재지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실수로 인해 인재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12절은 이 땅에 구제가 필요한 이유를 악인들 때문이라고 추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의인 치기를 꾀하고 그를 향하여 이를 가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남이 무너지기를 바라고 계획을 세워가는 사람들로 인하여 늘 선한 자들이 피해를 당하기에 그들에게 또 다른 의인의 구제와 봉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악인들이
의인들을 해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9절은 자신들에게 끝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영원의 개념이 없기에 더 집요하게 이 땅에서 자신의 계획을 이루어 내려고만 집착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남들이 이 땅에서 잘되는 꼴을 못 보는 사람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인은
다릅니다. 이 곳에서 이루어 낸 것만으로 만족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에
가면 내가 이 땅에서 이룬 것이 부족해 보여도 주님이 나를 통해 이루려고 했던 그 목적을 다 이루고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이것 못하면 안 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남보다 돈이
조금 없어도, 직위가 조금 낮아도, 명예가 더 높지 않아도 늘 만족합니다.
11절은 이런 사람들을 ‘이 땅에서 풍성한 화평을 누리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의인들을 늘 악인들이 해하기에 이 땅은 그들을 향한 구제가 필요한 곳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이 땅에 필요한 구제와 봉사에 대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심지어 세상의 지도자가 되려 해도 선거 공약을 내세우기 때문입니다. “대학 등록금을 없애 주겠다.
아이를 낳을 때 혜택들을 주겠다”는 수 많은 공약들이 대선이 다가오면 들려옵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자들을 해하여 사실상 생겨 날 필요도 없는 구제를 만들어 내는 악인들을 무너뜨릴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직접 그 일을 감당하고 있음을 15, 17, 20절에서 보여주십니다. 이것을 세상에서는 ‘정의’라고 부릅니다.
‘정의’는 세상이 하나님이 지으신 질서대로 바로 서 있는 것을 말합니다.
14절에 보면 악인들이 사용하는 수단들은 칼과 활입니다. 칼과 활은 힘을 상징합니다.
적들로부터 국가와 백성을 지키는 수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사용하여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엎드리게 하는 행위를 합니다. 착취의 도구로 사용하여 그들을 보호의
대상이 아닌 구제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자들입니다.
특히 14절에 ‘행위가 정직한 자를 죽이고자 하나’라는 구절은
악인들의 행위에 대해 잘못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억누르고 심지어 죽이려는 의도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운
질서는 사람들의 양심에서 들려옵니다. 그래서 ‘민심이 천심이다’라고 말하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악인들에 대해
하나님의 반응은 가장 먼저 13절에 그들을 ‘비웃으신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날이 다가옴을 알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이 이 땅에서 무너지는 날을 정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그렇습니다. 다음으로 15절에서는 악인이 휘두른 ‘칼은 그들의 양심을 찌르고 그들의 활은 부러지리로다’ 합니다.
궁금한 것은
누가 그렇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에 의해서 그렇게 될 것으로 짐작하지만 그러나 명확하지 않습니다.
문맥으로 보아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악인의 날을 아시는 분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이 세상을 선하게 창조하시고 공의로 다스리는 책임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직접 하시는 일에 도구가 될 뿐입니다. 우리가 데모를 해서 잘못된 위정자들의 양심을 찌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백성의 모습을 보고
두려운 마음이 생기게 하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겸손하게 그분의 손에 의해
사용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우리 교회가 2017년 여름에 하게 될 구체적인 구제와 봉사활동에
대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작년에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가난하고 힘든 분들을 돕는 일에 얼마만큼의
물질이나 관심을 드렸는지요? ‘너무 바빠서 돕는것조차 기억 못했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예방하기 위해 교회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구제헌금과 봉사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매년 추수감사절에 가난한 이웃들에게 물건을 보내는 활동을 주일학교를 통해 이루어 질 것입니다.
작년에는 18가정이 참여했습니다. 올해에도
더 많은 분들이 참여해서 보내질 줄 믿습니다.
더 구체적인
구제와 봉사 사역을 하나 더 소개하고자 합니다. 여름 방학 동안 유티카 난민봉사 프로젝트입니다. 준비위원들이 조금 더 일을 진행한 후에 교회 전체로 보고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역을 위해
사람들을 만나고 장소를 물색하고 구체적인 사역 활동들을 정하는 것이 남아 있습니다.
우선 기도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세상의 가난과 아픔을 당한 분들을 위로하고 애통해 할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 마음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물질이 걱정이 아니라 마음이 없는 것을 더 걱정해야
합니다. 마음은 참가로 나타납니다. 앞에서 돕는 분들도 필요하지만 뒤에서
필요를 공급하는 분들도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는
인적자원에서 빈약합니다. 말도 안 된다고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입니다. 여러분의 시간을 남들에게 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진 분들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두들 방학이면 학기 보다 더 다들 바쁩니다. 그러나 시간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유를
찾으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시간 만들 수 있습니다. 유티카는 이곳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없지만 다 참가할 수 없으면 하루라도 봉사하셔도 됩니다. 수고하는
팀원들을 위해 식사를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간식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나눠 줄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 날은
수고한 팀원들과 참가한 아이들과 함께 바베큐와 달란트 잔치를 하려고 합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받은
달란트로 교환할 수 있도록 선물도 필요합니다. 아이들 장난감이나 옷들 그리고 책들이 주로 필요하게 됩니다.
물건들을 모아 두었다가 실어 나르고 나눠주는 일을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성도님들의
삶에 구제와 봉사라는 영역을 설정하시고 지금부터 기도로 준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성도는 이렇게 계획한 것들을 넉넉히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도 그다지 남을 도와줄 형편은 못 됩니다. 교회가 부자들만 있는 곳이 아닙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만 하는’ 당위성이 있어 문제입니다.
세상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 너무 많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나 자신도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말해놓고 보면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은 모두가 도움을
받을 사람만 있고 아무도 도와 줄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가난하고 힘든 사람을 누가 돕습니까?
바로 의인들입니다. 성도의 몫입니다. 그러면 의인은 돈이 많은 사람들입니까? 아닙니다. 상대적으로는 적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22절에 의하면 하나님의 복 때문이라고 말합니다(22절). 복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늘이 주는
것이기에 우리에게는 잉여가 될 수 있습니다. 쓰고도 남는 것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은 자신이 열심히 수고해서 번 돈이라고 생각하기에 하나님께 받은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은 나
자신이 뭔가를 했기에 하늘이 도왔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나의
노력의 결실입니다. 그러므로 너무 아깝고 남 주기 싫을 수 있습니다. 쌓아둡니다. 남을 위해 사용할 수 없는 것을 욕심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주께 복을 받은 사람은 기근의 날에도 풍족하여서(19절), 가난한 자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종일 꾸어 주는 사람이라고 21, 26절에서 말씀합니다.
정말 이들이
많이 가져서 기근의 날에도 풍족할까요? 힘들고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16절을 보면 “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풍부함보다 낫도다”라고 말합니다. 이 의미는 성도들이 비록 세상 사람들보다
적은 것을 가지지만 나누어 줄 수 있는 손이 있기에 그들의 소유가 세상 사람들보다 더 풍요롭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과 비교하면 가진 것이 적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 적음 속에는 남을 도울 수 있는 분량까지도 하나님이 허락 하셨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2017년도에는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동정하고 종일토록 후히 나누어 주어도 주리지 않는 복이 성도님들의 가정에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