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2):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 

시편 36:5-10

 


부부가 살아가면서 서로 사랑도 없이 산다면 부부라고 말하기 힘들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매 순간 마다 우리 삶에 관여하시는 주님의 사랑 느끼며 살아야 진정한 성도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인자로 표현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사랑은 땅에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과 구별됩니다. 히브리어로 헤세드라는 단어는 자비, 인자(개정), 사랑(공동), 한결 같은 사랑(새번역, 현대), mercy(KJV), love(NIV), lovingkindness(NASB) 등으로 번역합니다. 이해는 갈듯하지만 정확히는 의미가 잡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5절을 보면 주의 인자가 하늘에 있다라고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하늘에서 사람에게로 내려오다가 멈추어서 하늘에 있다는 것입니까? 그러면 사랑이 아니지요. 내게 와야만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땅에 있는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사랑의 출처를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임하는 사랑이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서부터 오기에 땅에서부터 하늘까지 충만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원문에는 없지만 영어 번역들은 reach(NIV)extend(NASB) 등의 동사를 넣어 번역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만드는 사랑은 어떤 대상에게만, 한정적인 시간에만 제한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없어집니다. 그리고 특정 대상에게만 한정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하늘에 있어 비와 구름과 공기처럼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땅끝에 있는 우리들에게도 미치게 되었음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요즘 우주과학의 발달로 빛 등에 대한 상식이 많이 늘었습니다. 우리가 보는 별 빛은 이미 오래 전에 먼 곳에서 보내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에서 오는 사랑도 하나님이 존재하던 시점으로부터 흘러 내려온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사랑은 영원하고 앞으로도 영원만큼 흘러 갈 것입니다.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그리고 5절 하반절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주의 성실함’(현대인의 성경)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들에 의해 방해를 받거나, 하나님 자신의 불완전함으로 인해 우리들에게 공급되는 사랑이 불규칙적이거나 끊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랑을 늘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사랑은 심판에서 우리가 구원 받을 때 경험하게 됩니다. 이때 라는 개념이 사용되는데 그래서 6절에서 사랑 대신 의가 나타납니다.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심판은 큰 바다와 같고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구하여 주시나이다.” (체다크)는 심판 및 구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시의 저자인 다윗이 느끼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은 산과 같고 큰 바다와 같다고 고백합니다. 산은 하늘 아래에서 가장 높은 것입니다. 바다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깊음을 맛볼 수 있는 곳입니다. 다윗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심판과 구원이 이처럼 높고 깊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이루어짐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심판 때에 구원을 선언하시는 기준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입니다. 의가 구원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죄 없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을 죄 없다고 선포하실까요?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시편 기자는 6절에서 창조 때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본문에 사용된 바다’’는 깊은 심연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창세기 1:2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고라고 할 때 수면에 해당됩니다. 그러므로 6절에서 사용된 산과 바다는 천지가 창조된 후 그 어느 누구의 손도 닿지 않는 순수한 모습 그대로인 것입니다. 바로 이 개념을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태초에 창조가 이루어질 때 하나님의 뜻대로만 만물이 만들어집니다. 그 상태는 전혀 죄가 없는 순수한 모습입니다.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말씀 그대로 지어진 그 자체가 인 것입니다. 그래서 죄 없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고 그 개념은 심판과 구원에 사용 됩니다.

 

구원 얻는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을 때 의롭게 되는데 이 의로운 상태가 바로 하나님 말씀으로 새롭게 거듭난 상태, 즉 죄가 들어오기 전의 죄 없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바로 그 상태를 구원이라 부릅니다. =죄 없음=그 상태를 구원이라 부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됨은 거듭남이며, 주 안에서 성령으로 거듭남은 새로운 창조이며 구원입니다. 즉 거듭남=죄 없는 모습으로 창조=그것은 의의 상태=구원이라는 등식이 성립됩니다(고후 5:17 쉬운: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창조입니다”). 창조가 어떤 피조물보다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 되었다면, 거듭남 역시 사망이라는 심판에 이르지 않기를 원치 않는 사랑으로 시작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사랑은 보배와 같이 소중한 것입니다. 7절에 언급되는 보배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소중한 희귀한 물건이나 사람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귀하고 소중한 이유는 우리를 죄에서 용서하실 유일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간음죄와 살인죄로 많은 사람들이 다윗의 도덕적 결함을 비난하고 정죄합니다. 심지어 친 아들이 자신의 왕위를 빼앗으려고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삼하 7:16절의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는 신실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는 믿음 때문에 죄 가운데서 용서를 체험합니다. 이 경험을 통해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믿고 회개하는 자에게 용서와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배로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다윗에게 생겨난 이 믿음의 전 과정을 한 번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신의 왕위가 영원하다는 약속을 받았는데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를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약속 안에는 죄 용서함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죄 용서함이 없다면 어떻게 영원한 왕위가 가능하겠는가? 그렇다면 나의 어떤 죄에 대해서도 하나님이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구나를 믿은 것입니다.

 

결국 다윗은 이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며 회개합니다( 51).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 믿음이 맞다(의라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믿는다는 것 안에는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지 못하면 믿음을 가진다는 것이 불가능해 집니다.

 

죄 용서함은 오직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을 믿는 길뿐입니다. 십자가의 주님이 나의 모든 죄를 가져가시고 나에게 다시는 죄를 묻지 않는 다는 믿음입니다. 온 천하에서 이런 죄 용서하심을 베푸는 분은 유일하신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우리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죽이시고 우리를 죄 가운데서 건져내 주셨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믿기만 하는 자는 모든 죄로부터 용서함 받는 놀라운 복이 주어지게 됩니다. 죄 사함의 길은 오직 한 길 십자가뿐입니다. 그래서 귀한 보배입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을 내어주신 무한한 십자가의 사랑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사랑은 날개 그늘 아래에서 누리는 평안입니다. 7절 하반절에 보면 어린 병아리가 어미 날게 밑에 거하는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보호하심과 평안이 우선으로 느껴집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은 성도가 이 땅에서 살아갈 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실제적인 도움과 보호를 의미합니다.

 

아기 병아리가 노출 되어 있다면 무서운 메의 먹이가 되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어미가 날개 아래에 품고 지켜주기에 안전한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도망 다닐 때를 기억한 것 같습니다. 광야에 숨어 있지만 사울에게 아부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곤 했습니다(삼상24:1).

 

그래서 다윗이 가는 곳이면 어디나 추격하여 다윗을 곤란하게 만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늘 그때에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은 그를 따라 다녔습니다. 날개 그늘은 쉼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평강입니다. 주변 환경은 죽이려는 자들로 둘려 있어도 늘 마음은 쉼을 얻는 것이 바로 평강(샬롬)입니다.

 

주의 날개 그늘이 있는 곳을 8절에 의하면 주의 집으로 묘사됩니다. 바로 성도가 세상에 거할 때 위안을 받는 곳입니다. 우리를 위해 세상에서 쉼을 얻게 하는 곳입니다. 바로 그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주의 날개 그늘과 같은 곳입니다. 삶에서 지치고 힘들 때 교회는 늘 위로를 받고 쉼을 얻는 곳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에 세상이 줄 수 없는 풍성함이 있습니다. 십자가 밑에 와서 나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의 보혈로 씻김을 받는 예배가 있습니다. 예배가 없는 인생은 스트레스 덩어리를 안고 사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허락하는 복락의 강물을 마시는 새해 되기를 소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원천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늘 예수 안에 머물러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이때 누리는 사랑은 9절 말씀처럼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게 됩니다.’ 주 안에 거할 때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주님의 뜻을 알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주의 뜻 이루며 살아가도록 인도하시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성도는 주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전인격적으로 주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주의 인자가 계속 베풀어 진다고 10절에서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 사랑이며, 죄 가운에서도 용서하는 사랑이며, 성령으로 충만한 풍성함이며, 삶의 도움과 보호이며, 주의 뜻 이루도록 이끄시는 인도하심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이 2017년도에 성도님들에게 흘러 넘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