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4): 복 받기 원합니다
시편 34:1-8
오늘은 새
학기를 맞는 개강 주일입니다. 이제서야 우리 교회는 새해 분위기가 납니다. 모두들 주님께서 주시는 복으로 충만한 새 학기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것을 분명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복을 받는지 함께 본문 말씀을 통해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1절을 보면 주를 늘 송축하고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입술에 계속 끊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시를 쓰고 있는 다윗의 상황을 시의 표제가 말해줍니다. 이 시의 배경은 삼상21장에서 사울을 피해 블레셋으로 도망하던 때입니다.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와 환호를
받는 장군도 아닙니다.
자기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창피한 순간인지도 모릅니다. 모두가 두려워하던 골리앗을 단숨에 물리친 다윗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도망자로 추락한 것입니다. 이 순간에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내에서 사울의 추격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피한 곳이 하필이면
블레셋입니다.
그리고 그
넓은 땅 중에서도 골리앗의 고향이었습니다. 다윗은 선택이 없어 그곳으로 내려갔을 것입니다. 그런 행동을 감행할 때 어느 정도 다윗은 요행을 바랐을 것입니다. 정확히 골리앗을 죽인 사건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습니다. 골리앗을 죽일 때는 어린 나이였습니다. 이제는 외모 역시 많이 바뀌어 있습니다.
결혼까지 한
사람입니다. 의젓한 군인으로 성장하여 어린 시절의 외모는 감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곳에 오기 전 삼상 18:30절에 의하면 블레셋 지휘관들은 계속 이스라엘을 괴롭혔다고
기록합니다. 사울은 다윗에게 계속 싸우게 만들었습니다. 다윗은 승리
하였고 더욱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전쟁에서
마주친 장수들이 분명 자신의 얼굴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바로 이런 순간 다윗처럼 우리의 결정이 복을 받는
비결을 가져옵니다. 인생에서 힘들고 어렵고 포기할 수도 있는 순간입니다. 이때 하나님을 높이는 믿음을 잃어 버리지 않는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말은 쉽지만 힘든 주문일지
모릅니다.
신입생들은
이제 두 번째 학기를 맞이합니다. 첫 학기가 힘드셨던 분도 있을 줄 압니다. 그래서 이번 학기는 조금 믿음생활에서 떨어저 공부에만 집중하려는 마음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때 여러분의 진정한 믿음이 찬양과 믿음의 고백으로 입술에서 나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둘째는, 여호와 하나님을 자랑함으로 그것을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뻐하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2절 상반절을 보면 ‘내 영혼이 하나님을 자랑한다’고 말합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다르게 말하면 내 몸과 의식이 하나님을 자랑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왜냐하면 자랑은
일단 입으로 하는 것인데 영혼이 자랑한다는 것은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놀랍게도 시편을 살펴보면
입술로 찬양하는 것 보다 영혼이 찬양한다는 표현을 더 많이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역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의 영(my soul)만이 여호와를 자랑한다고 합니다.
입술에서 찬양이
멈추는 것은 몸이 피곤하고 지쳐 있다는 진단입니다. 내 속에서 찬양의 의지가 생겨나지 않는 것은 심적으로
매우 힘든 시간임을 말해 줍니다. 그러나 성도의 살아있는 영이 그분을 자랑합니다. 사실 우리가 하고 싶지 않는데 억지로 하려는 마음은 의지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영은
어떠한 환경에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이것이 믿는 사람들의 복입니다.
몸과 혼(의지)은 환경에 지배를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영은 지치지 않습니다. 그분을 잊지 않습니다.
영이 하나님을 자랑한다는 것은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는 성령의 충만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 영이 여호와를
자랑할 때 가장 먼저 생기는 효과가 2절 하반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놀랍게도 그 효과는 나에게 먼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서 발생합니다. ‘곤고한 자들이
그것을 듣고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복입니다.
삶에 지친 사람들은 하나님을 자랑하는 우리 소리를 들어야 살아납니다.
힘든 시간이
나를 찾아올 때 성령의 말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세상이 말하는 ‘긍정적 사고’와는 전혀 다릅니다. 그 차이는 ‘주 안에서’ 이루어지는 말들입니다. “주 안에서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힘 주실 것입니다. 주님이 위로해 주십니다.
주님 더욱 의지하세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3절에서 사람들에게 요청합니다. ‘함께 여호와의
영광을 노래하고 그 분의 이름을 함께 찬양하자’고 제안합니다. 당시 다윗 주위에 모여든 힘든 사람들을 격려하는 모습입니다. 나의 영이 주 안에서 즐거워할
때 공동체 모두를 살리는 복이 있음을 믿으시고 나아가는 봄 학기가 되기 바랍니다.
세 번째는, 직접 하나님께 간구하는 사람은 어떤 두려움도 극복하는 복이 있습니다.
4절에 다윗은 직접 하나님을 찾아 자신의 문제에 대해 도움을 요청합니다. 다윗도 골리앗의 고향인 블레셋으로 도망갈 때 별 계획이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곳까지
몰릴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 그 순간에도 간구합니다. 자신의 얼굴을 사람들이 처음에는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신분도 속이고 그곳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낯선 사람이 성에
들어왔음을 알게 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안 것입니다. 그의 명성은
이곳에서도 확인이 되었습니다.
삼상21:12절에 보면 다윗은 그 순간 매우 두려워했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강심장을
가진 사람이라도 적들 앞에 자신이 노출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골리앗의 형제들도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형제를 죽인 원수를 제일 먼저 찾아와 보복하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안전할 수 있었습니다. 비결이 무엇이었을가요? 이때
다윗은 하나님께 간구(개정), 호소(공동), 간절히 찾았다(새), 부르짖었다(현)고 번역합니다. ‘간구’는 정말 위급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찾아가 간절히 호소하듯 부르짖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간절한 부르짖음에 응답해 주셨던 것입니다.
다윗은 순간
미친 사람 흉내를 냅니다. 침을 수염에 흘립니다. 성 문짝을
괜히 긁기도 했습니다. 이 모습은 자신이 노출되고 난 뒤 도망치려고 점점 자신을 성문으로 옮겨 오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에 포위당해 그것조차 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한 가지 더 큰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다윗을 아는
순간 원수를 돌로 죽일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블렛세 사람들은 그를 가만히 살피기만 합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기이한 행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정상적인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죽일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다윗은 그곳에서 미친 사람 취급을
받고 쫓겨 나게 됩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8절에서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는’ 순간이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의 어떤 두려움도 주님은 간구하는 자에게서 물리쳐 주십니다.
위기의 순간에, 절대 절명의 순간에 주님을 찾는 자리에 나아오기 바랍니다.
새벽에, 수요기도회에 간절히 부르짖기 바랍니다. 이것이 봄학기를 새롭게 시작하는 모든 성도들이 가져야 할 복 받는 자의 자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우리에게 복 받는 자의 태도를 5절에서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의 번역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공동 번역은
“그를 쳐다 보는 자, 그 얼굴 빛나고.” 누구의 얼굴인지 불 분명합니다.
새번역: “주님을 우러러 보아라. 네 얼굴에 기쁨이 넘치고”로 좀더
구체화 됩니다.
얼굴이 빛나는
주체는 다윗임이 확인시켜 주는 번역입니다. 그리고 광채를 낸다, 빛난다의
뜻은 결국 얼굴에 기쁨이 있다는 것을 전달합니다. 그래서 현대: “고통당하는
자들이 여호와를 바라보고 기뻐하니”로 번역을 합니다. 개역개정에서 번역된
‘광채를 낸다’는 것은 다윗의 얼굴에 기쁨이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마지막으로
복 받는 자의 태도는 주께 부르짖을 때 우리의 얼굴에 기쁨이 있기를 요구합니다. 그런데 지금 다윗의 상황을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죽였던 블렛셋의 영웅 골리앗의 동네입니다. 다윗 자신은 그들 모두의 원수입니다. 지금 살기위해 미친 짓 하는 사람의 얼굴에 기쁨이 있을
수 있을가요? 실제 있었습니다.
사실 그래서
다윗이 산 것입니다. 만약 슬픈 얼굴을 하고 미친 짓을 하였다면 그 모습을 사람들은 다윗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생각했을까요? 거짓이라고 다윗을 당장 죽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였기에 미친것을 즐거워하는 사람은 정말 미친 것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비결입니다. 우리도 주의 일을 하다보면 얼굴에 기쁨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해야하기에 의무감으로 합니다.
직책을 맡았기에 안 할 수 없어서. 다른 교회같은 데는 사역을 감당하지 않으면 집사,
권사, 장로라는 직책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억지로 해야 하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달랐으면 합니다.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정말 기쁨이 충만하여 주의 일에 뛰어 들기 바랍니다. 다음 주에는 제직을 임명합니다. 이미 한 달 넘게 그분들에게 자신들의 직책을 감당 하기를 묻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냥 대답이 아니라 주의 일이기에 그 일을 맡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7절에서처럼 천사를 보내 함께 하게 하십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 속에서
하는 주의 사역들을 지치지 않게 해 주십니다. 천사는 우리를 돕는 영적존재들입니다. 구약에서는 필요시마다 파송되어 믿음의 백성들을 지켜주고 돌보았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순간에
성령이 함께 하시며 정말 하나님의 복이 우리 앞에 흘러 넘치고 있음을 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하나님만
경외하는 자로 나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