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11): 평탄한 길을 걷습니다
시 27:1-14
인간이
태어나서 가장 바라는 것 중의 하나가 큰 어려움 없이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성도에게 어려움 자체가
없어 평탄한 삶이 아니라 험한 인생길 가운데서 평탄한 길을 걸어가는 성도의 삶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첫째, 믿는 성도가 평탄한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본문 1절 은 세 가지 이유를 소개합니다. 먼저 하나님은 빛이
되어 길을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둠은 막혀 있음, 절망, 선택이 어려운 상황을 상징합니다. 이때 어디를 가야하고, 무엇을 선택할지를 알게해 주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들
가운데도 진로를 두고 어디를 가야할지 기도할 때 분명하게 이곳으로 인도해 주심을 경험한 분들도 있습니다. 이번
학기에 졸업을 앞두고 이전과 같은 상황에 놓여 있는 분이 있다면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하나님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으시고 선한 길을 인도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죽을 고비를 만날 때 건져내 주시는 나의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빛이 있어 갈
길을 선택하여 출발하지만 조금 가다 어려움과 고비를 만나게 됩니다. 2절을 보면 나의 대적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오늘 날 경쟁 사회가 추구하는 모습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무한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도태 당합니다. 세상에서 살아 남기위한 사람들의 모습들이 3절에 소개됩니다. 개인의 경쟁을 뛰어넘어 나라가 나라를 무너뜨리는
단계인 전쟁도 불사합니다. 이런 위험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편이 되어주십니다(9절). 그 이유는 하나님의 선하심(토브) 때문입니다(13절).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도록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1하)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실제 경험을 한 사람은 조지뮬러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고아원을 설립하고 죽기까지 60년 동안 15만이 넘는 고아들을 돌보아 주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사람에게 자신의 필요를 말하지 않는 원칙으로(시81:10: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고아원을 운영했습니다. 양식이
없어 먹일 수 없을 때도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때마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도네이션을 하고, 심지어 돈을 문 앞에 두고 가기도 했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오만
번의 기도응답).
다음은, 어떻게 하면 이런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고난이
다가왔을 때 다윗의 모습이 2절에서 소개됩니다. ‘원수들이
나를 죽이려고 달려들어 나를 공격하지만 휘청거리다 다 쓰러지게 될 것이다’(쉬운). 의지가 대단히 강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의지가 아니라
배짱 있는 믿음의 표시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이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믿음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 의지는 거품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이미 이루어져 있는 모습이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내가 주 안에서 바라는 것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믿음을 고난 가운데 갖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살다가 닥치는 어려움 앞에
담대하지 못하기 대문입니다. 그런데 이 담대함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14절). 긴
훈련의 과정 속에서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탑이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를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조금만 힘든 일이 생겨도 사시나무 떨 듯 놀랍니다. 혼비백산이 되어 정말 죽는 줄 압니다. 두려움이 우리에게 올 때
바로 대항하지 않으면 사탄이 우리 속에 생각을 집어넣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의지하고 잔꾀에 의지하게
만듭니다. 더 문제를 꼬이게 만들어 갑니다. 이것이 사탄의
전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 속에 생각을 집어 넣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주십니다. 이것이 사탄과의 차이입니다. 믿음은 흔들리는 내 생각을 견고히 세워줍니다. 사탄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가장 강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막아 버립니다. 힘들게 문제가 풀리는 것 같지만 후에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게 됩니다.
두려워했다면
변화를 시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내게 생길 때 다윗의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3절에 군대가 몰려와 에워싸는 듯한 시련에도 마음이 두려워
떨지 않을 것입니다. 이 믿음의 결단의 훈련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마음이 안정되게 하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5절의 다윗의
고백이 성도님의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위기 앞에 태연할 정도로 문제를 바라보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죽을 것 같아. 하지만 나는 두렵지 않아, 왜냐하면 주의 날개 아래 내가 안전이 거하기 때문이야’ 라는 고백이
우리 성도님들의 입술에도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평탄한 길을 가기
위해서는 하나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4절에서 소개됩니다. “내가
여호와게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것이라.” 이 비밀을 성도가 알아야 합니다.
다윗이
말하는 하나님의 집은 성전입니다. 그 성전에 다윗은 평생 살기를 원합니다. 시종들이 모든 것을 다 섬겨주는 자기 왕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일국의 왕이 편한 자기 왕궁이 아닌 성전에 살기를 원했을까요? 사실 다윗은 자신이 평생 원하던 성전을
완공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5절에 보면 ‘그의
초막’ 또는 ‘그의 은밀한 장막’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입니다. 자신의 피흘림으로 인해 성전을 짓는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만큼 성막에 머물기를 좋아하는 왕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4절에서처럼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름다움’(beauty:
KJV, NIV, NASB)이란 새번역만 ‘자비로운 모습’으로
번역합니다. 그러나 더 정확한 의미는 ‘즐거움’(delightfulness)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집에는 세상이
주지 못하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번역 되어야 다윗이 그곳을 좋아하는 이유가 설명이 됩니다. 재미가 있으면 하루 종일 뭔가를 해도 지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게임 손에 잡으면 내려 놓지 않듯 재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윗은 알았기에 화려하고 파티가 있는 궁전보다 성전을 더 사랑했던 이유입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하나님을 만나는 즐거움을 맛보기 원합니다. 세상이 주지 못하는 찬양의 즐거움, 말씀만이 주는 기쁨, 세상의 어떤 친구가 주지 못하는 위로와 친교를
맛보는데 열심을 한번 내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즐거움을 맛보는 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일 날 드려지는 예배 가운데 우리 속에서 생겨나는 즐거움이 바로 하나님을 만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4절 하반절에서 ‘성전에 살면서 주님을 뵙는 것’(쉬운)으로 고백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신실한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윗은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으로 늘 중요한 선택의 상황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자로 나아가는
시간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선택은 내가 택한 것이 더 이익이다,
좋다는 판단에서 이루어집니다.
살다 보면
때대로 예배 드리는 시간 조차도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요한 미팅이 있을 경우, 아니면 시험이 앞에 있을 경우 그 시간에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기를 바랄 수 있습니다. 이때 가치를 따져 하나를 선택 하게 됩니다. 그 선택이 늘 하나님의
임재에 머물기를 원하는 예배자의 선택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자신이 항상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는 선택을 하게 되는 이유를 소개합니다. 5절에 보면 그 순간은 자신을 하나님이 적들로부터 비밀히
지키는 장소이며 안전한 곳에 두는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늘 위협 속에 살아온 사람입니다. 위로해 주는 사람도 없었고 안전이 숨을 곳 하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성막에 머물 때가 어떤 적들도 그를 찾지 못하고 해하지 못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님 앞에 나아오는 것은 은밀한 장소에 들어가는 시간입니다. 누가
은밀한 사랑을 나누는 곳에 다른 사람들로 방해를 받고 싶어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초대하는 은밀한 장소가 바로 이 예배 장소입니다.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이곳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를 누리고 주님의 사랑을 맛보는 귀한 시간이 될 줄 믿습니다. 주를 예배할 때 하나님은
나를 위해 일하십니다. 6절을 보면, 나를
둘러싼 원수들 위에 내 머리가 들려지도록 해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예배 시간은
소비의 시간이 아니라 선한 생산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시간을 드리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를 위해 선하게 일하시는 분임을 알게 하기 위함 때문입니다(13절). 예배가
없으면 주의 선하심을 맛볼 수 없습니다. 내가 수고하면 좋은 것 얻을 것 같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배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드려지도록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문제에 대한 응답을 듣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7절). 11절의 말씀과 같이 주의 뜻을 보여주셔서 우리를 평탄한 길로 인도하실 것을 믿는 복된 성도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