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2): 죽음을 정복해야 합니다
로 1:4
오늘은
부활 주일로 지냅니다. 예수 믿고 난 뒤 많은 부활절을 지내셨을 것입니다. 매번 부활절을 보내면서 정말 부활이 나의 믿음으로 고백 되고 있는지요? 그냥
산다고 하니 살 것 같이 느껴지십니까? 그 정도로는 부활에 대한 믿음을 확실히 갖고 있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은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본문 4절에서
예수님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고 선포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아담 이후로 주님이 다시 오시기 전까지 인류의 어느 누구도 맛보지 못한 것입니다. 오직 예수만이 경험하신 일입니다. 같은 인간으로 오셨기에 믿을 수
있게 하십니다.
인류가
늘 고민하고 풀 수 없었던 난제가 바로 죽음입니다. 왜 죽음이 있는 것이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 왔습니다. 예수님이 오기 전에 인류는 모든(철학, 도덕, 종교) 방법들을
나름대로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방법을 제시한 사람들은 죽는 아이러니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만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주님만이 죽음을 정복했습니다. 그래서 예수가 진리입니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고 풀 수 없는 난제를
해결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죽음으로부터의 자유함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첫째,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는
죽음을 맞는 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어떻게 죽느냐에 대한 걱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믿는 우리들에게도 이것만은 보장이 되지 않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길에서나, 병에 걸려, 아니면 사고 가운데 우리도 포함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이 있습니다. 어떤 죽음이 내게 올지라도 죽음을 대하는 순간 죽음 그 자체에 대한 공포를
갖지 않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아쉽게도
어떤 사람도 죽는 자신의 상황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죽음의 순간이 찾아올 때 죽어가는 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중계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저는 죽는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했는지 아닌지를 장의사 두 분의 간증을 듣고 알았습니다. 시체의
근육만 만져 보아도 거의 99%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어떻게 죽든지 죽는 그 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죽음자체는 무섭지만 막상 그
순간에 죽음을 정복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죽음을 정복한다는 것은
죽는 순간 정말 가고 싶은 장소로 가는 것을 의미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죽으면 좋은 곳에 가기 바랍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만이 죽는 순간 가기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 이유 때문에 죽는 순간 사람들은 공포와 환희의 두 가지를 느끼게 됩니다.
누가복음 16장의 거지 나사로는 죽는 순간 천사에 의해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게 됩니다.
그러나 부자는 이 땅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지만 나사로가 가는 곳에 함께 가지 못하는 결과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죽은 자의 몸을 만져보면 바로 알 수 있다고 말하시는 장의사의 간증을 신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죽어보지
않았기에 모른다’고 말하시는 분들은 너무 무책임한 것입니다. 책임은
모든 가능성에 대한 것이어야만 합니다. 인간이 만든 제도 중에 보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보험처럼 아까운 것이 없습니다. 파킹티켓 하나 받아보지 않은 분이
왜 보험은 들까요? 주님을 믿지 못하신다면 보험이라 생각하고 믿어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죽음을 정복하는
것은 마지막 심판 때 실제로 맛보게 됩니다. 살전 4:16절에 의하면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모든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난다고 합니다. 인류가 모두 죽음을 경험하였지만 여기서부터는 영원한 죽음과 생명이 나눠지는 순간입니다(마 25:46).
영원한
죽음을 ‘사망’이라고 부르고 영원한 생명을 ‘영생’이라 부릅니다. 영원한
죽음이 있는 곳을 ‘불못’이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계20:14). 그래서 지금 이 땅에서 예수를 믿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지금 믿느냐 안 믿느냐가 나의 죽음 이후의 세계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죽어서는 다시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일까요? 죽기 전에 수 많은 기회가 사실은 주어집니다. 게다가 같은 사람이 다시 믿을까요?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것은 나의
최종적인 결단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주안에서 세례를 받으신 분들은 영생의 복을 누리게 된 것을
축하 드립니다.
죽음을
이기는 것은 우리가 이룬 것이 아닙니다. 육신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주님이 먼저 이루어 놓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 복을 누릴 뿐입니다. 주님을 살리신 영이 우리를 다시
죽음 가운데서 일으켜 세울 것을 믿습니다. 여기 함께 하시는 모든 성도님들도 같은 곳에서 다시 만나는
복을 누리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