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3): 인간이 죄인임을 알게 합니다
로 1: 27-32(쉬운성경)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다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란 공통분모가 만들어 낸 답은 아마도 자신이 죄인이라는 소리일 것입니다. 심지어 죄를 지은 죄인 조차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소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왜 죄인이라는 소리를 우리는 그렇게 듣기 싫어할까요? 내가 지은 죄를 숨기기 위해서입니다. 죄인이란 소리를 듣는 사람은 가장 먼저 ‘무슨 죄를 내가 지었냐’고 따질 것입니다. 사람들은 본문에서 언급된 죄들을 보면서 설령 그런
것이 죄인지는 모르지만 나와 무관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행동으로나 양심적으로나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자신이 죄인이라고 말하는 성도들이나
성경이 매우 듣기 싫고 보기 싫은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 소리는 범죄자들, 그리고 양심을 속이는 사람들에게나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착한 마음 갖고 바르게 살고 좋은 일 해가며 사는 분들이 예수를 받아들이기가 정말 힘이 듭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니 억울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32절처럼 악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부추기거나 잘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더욱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은 세상에서 착하게 사는 사람들은 천국에 간다고 가르치는 종교를 더 선호합니다. 기독교는 자연스럽게
독선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기독교가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진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진리는 경쟁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로만 존재해야 하기에 그런
속성을 갖습니다.
그렇다면 바르게 사는 사람들조차도 자신이 죄인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특히 악한 짓이라곤 한번도 안 한 모범시민이 어떻게
자신이 죄인임을 시인할 수 있겠습니까? 상식으로는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그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진리는 그런 사람들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런 분들에게
이런 접근을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사람은 왜 죽는지에 대해 묻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의학적, 과학적, 철학적, 심지어 다른 종교적 이유들을 가지고 설명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죽는 이유는 죄라고 유일하게 성경만이 가르치고 있습니다(로 5:12).
공자는
죽음에 대해 알기를 거부했습니다. 부처는 죽음을 극복하기에 불가능한 현실로 봅니다. 일단 죽음을 극복할 수 없는 것으로 인정했다는 것에는 솔직함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인간이
극복할 수 없다’라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한 후 엉뚱하게 인간자력으로 해탈할 수 있다는 것은 모순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로 5:12절은
선포합니다. 성경보다 진실되고 논리적인 것은 없습니다. 세상에
죽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죄인임이 드러납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이 죄인임을 알게 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결국 진리는 복음을 말합니다.
마지막 질문은 왜 인간이 죄인임을 아는 것이 그렇게 중요할까요? 죄에 대한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32절에 의하면 ‘그런 일’ 즉
앞에서 언급된 죄들을 행하는 사람은 죽어 마땅하다는 하나님의 의로운 법’이 선포됩니다. 그 심판은 마땅히 죽어야 한다(사형)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있는 우리가 예수를 믿지 안았다면 모두 죽어 마땅한 존재들입니다. 그것을 알고 자신이 죽어 마땅한
존재임을 시인하는 것을 ‘회개’라 부릅니다. 이 회개는 주님이 왜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야 했는가를 알게 합니다. 마땅히
죽어야 할 내가 죽지 않고 예수가 대신해서 죽으신 것임을 믿게 합니다.
이 믿음이
생길 때 즉각적으로 두 가지가 일어납니다. 땅에서는 죄용서함 받았다는 확신이 내 속에 생깁니다(기쁨, 감격, 감사). 한편, 이 믿음이 나의 입술로 고백되는 순간 ‘그것이 맞다’(의롭다)라고
하늘에서 인정을 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주의 보혈이 덮여 죄가 가려진 내게 주신 선물이 바로 ‘의신칭의’인 것입니다.
결국 ‘내가 의롭게 되었다’는 말은 ‘내게
죄없음이 하나님에 의해 확증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우리는 철저히 나의 죄를 고백하는 회개 가운데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진 것임을 알고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누구에게 예수 믿으라고 말씀하실 때 이것을 빠뜨려서는 안됩니다.
구원 전의
회개는 나를 바라보게 합니다.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확인하는 절차입니다. 로 3:10절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라고 선포합니다. 말씀 가운데서 나를
보지 않으면 더 이상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 없는 것입니다. 주님의 손을 붙잡을 수 없습니다. 구원자가 필요 없는 의인으로 허상 가운데 살아갈 뿐입니다.
한편, 회개는 이미 구원 얻은 성도에게도 늘 필요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매일의
회개는 내 속에 있는 죄성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주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음을 고백하며 성령의 도움을
요청하게 됩니다. 내 힘이 아닌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살아가는 거듭난 삶을 만들어 줍니다.
성도의
매일 회개는 나를 죄 가운데 있지 않게 만들어 늘 거룩을 유지하게 만들어 줍니다. 거룩해야 성령이 우리와
매일 동행하실 수 있습니다. 죄가 있는 곳에는 성령이 오실 수 없기에 죄가 내게 있다면 즉각 주 앞에
나아가 죄 용서함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회개는
구원을 받기 전에도 필요하고 거듭난 성도에게도 늘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점점 주님을 닮아가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회개하는 성도는 날마다 주님의 형상을 닮아가게 됩니다(롬 8:29). 그리고 주님이 품고 계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빌 2:5).
옛 사람이
변화여 새롭게 되고, 날마다 주님을 기쁘게 하는 회개가 삶 가운데 늘 있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