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2): 부족한 것을 채우십시오 

18:18-23

 


이 자리에 졸업생이 계시면 모두에게 축하를 드립니다. 그 동안 참 수고 많으셨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수고가 기쁨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길 바랍니다. 이미 졸업장을 받아보신 분은 알겠지만 졸업식에는 만족감과 동시에 뭔가 부족함도 느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은 부족함이 느껴질 때 늘 채우려고 하는 본성이 있나 봅니다. 오늘 본문에 한 관리가 등장합니다. 그는 명예와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게다가 23절에 의하면 큰 부자로 소개 됩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이 갖지 못할 명예와 부를 가지고도 뭔가 모자랐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 사람은 명예와 재물을 얻은 다음은 더 오래 살고 싶은 욕망을 갖습니다. 그런데 이 관원을 마태는(19:22) 나이든 사람이 아닌 청년으로 언급합니다. 이것으로 보아 이 사람은 젊었지만 일찍부터 죽음을 생각하고 사후 세계를 준비 하는 사람처럼 보여집니다.

 

아마도 그가 일찍 재산을 얻은 것으로 보아 부모가 갑자기 죽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자신도 혹시 부모처럼 빨리 죽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영생을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은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고 하십니다.

 

너무나 황당한 요구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고민해 오던 영생의 문제가 달려 있기에 일단 고민해 보았습니다. 복음은 늘 인간의 한계를 건드리게 되어있습니다. 결국 그는 순종할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우리 인간에게 공통으로 있을 수 있는 부족한 것을 하나 발견합니다.


가장 우선적인 부족함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한계는 자신이 배운 지식이나 경험으로부터 만들어집니다. 18절에 의하면 이 관원의 영생관은 세상에서 선한 행위로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율법이 정한 것 다 지키고 살 정도로 선한 사람으로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늘 자신이 아는 것, 할 수 있는 것에서 한계를 느낍니다. 그 범위 내에서 도전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내 생각, 내 경험, 내가 가진 지식이 나의 한계가 됩니다. 왜냐하면 세상방식으로 익숙하게 단련된 내 생각이 깨뜨려지지 않아서 믿음의 씨를 뿌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많은 분들이 이타카를 떠나갑니다. 그리고 새로운 교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나게 될 신앙생활에서 내가 가진 경험과 사고의 틀로 주님을 대하려고 하지 말기 바랍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교회에서는 진리 되신 성령이 우리를 자유게 하도록 따르는 훈련을 하셔야만 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세상에 나가 세상을 따르지 않고 그들을 리더 해 나갈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교회로 들어오게 만들었습니다. 세상은 늘 부족함을 개선하려는데 더 방점을 둡니다. 물론 교회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세상과 다른 한 가지 점은 먼저 약함을 인정해 줍니다.

 

그리고 인내하며 기다립니다. 이것이 사랑의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입니다. 세상처럼 한다면 늘 마음에 드는 것으로 교체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다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오면 내가 이제 교체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싸움이 그치지 않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원리를 포기해 나갈 때 세 가지가 일어납니다. 첫째는, 성령의 역사가 교회를 지배하게 됩니다(치유, 기적, 성숙). 둘째는, 다른 사람의 약함을 내가 메우어 나가는 격려와 섬김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셋째는, 개인의 믿음이 자라게 됩니다. 내 믿음이 자라는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떠나는 분들은 만나게 되는 새로운 신앙 공동체에서 철저히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과 원칙을 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직장생활과 캠퍼스 생활을 하면서 늘 새로운 것과 접하고 날카로운 이성을 사용하기에 이미 우리는 너무 논리적이 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그 논리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인도하심에 순종하기를 배우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부딪히는 곳입니다. 바로 잘못이 눈에 보이고, 바로 약한 부분이 눈에 뛰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럴 때 나를 한번 내려놓아 보시기 바랍니다. 이 관원처럼 고민하다 마는 것이 아니라 순종의 자리로 나가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삶이 바로 나의 부족을 말씀으로 채워 나가는 신앙생활입니다. 세상은 문제를 지적하고 방안을 찾아내는 사람을 따릅니다. 그러나 교회는 실패하고 연약하고 좌절하고 낙망한 사람들이 새 힘을 얻도록 하는 곳입니다. 오히려 기다려주고 감싸주고 격려하고 용서해 주는 사랑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허점투성이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를 인내와 사랑 섬김으로 메우어 나가면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천국은 다른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세상에 노출되어 너무 긴 시간을 세상에 영향을 받고 살았습니다.

 

졸업생 여러분! 어는 곳에 가서 주님의 몸인 교회를 섬길 때 세상에서 배운 내 생각을 적용시키려는 것을 한번 포기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진짜 부족함은 정말 소중한 것을 소유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입니다. 한 선비가 강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가 날씨가 변하더니 바람과 함께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배가 몹시 흔들리자 선비가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광경을 본 사공은 말을 건냅니다.

 

겁나지요 선비님.” 그러데 선비는 사공의 말에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선비는 사공에게 허세를 부리기 시작합니다. “자네 논어는 읽었는가? 못 들어 보았는데요. 아이구 그렇다면 자네는 사람으로는 거의 죽은 사람이구먼. 맹자는? 처음 듣는데요. 그렇다면 더 문제일세.’ 아니 그러면 시경은 금시초문이겠구먼. 정말 큰일 날 사람이네.”

 

그때 배는 암초에 부딪힙니다. 그러자 사공이 선비님 헤엄칠 줄 아세요?’라고. 갑자기 물었습니다. 선비의 대답은 사공이 배에서 뛰어 내린 후에야 들려 왔습니다. “아니 나는 공부만 하느라 헤엄치는 줄을 배우지 못했소. 아래 것들에게 시키면 되지 천한 것을 왜 내가 배워.” 이 말을 들은 사공은 한 마디만 남기고 강을 유유히 헤엄쳐 나갑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소.”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분일지라도 결국 구원을 얻지 못한다면 그 모든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습니까? 교회를 다녀도 아직도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음으로 고백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분이 계십니까? 오늘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거듭난 사람입니다. 예수 없는 인생은 영원한 목마름만 있을 뿐입니다(지옥). 

 

예수가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살아나심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놀라운 신앙고백이 개인과 가정들에 넘쳐 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화: http://blog.naver.com <교만예화 74>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