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 생존법(2): 지혜를 발견하고 명철을 얻으십시오 
잠언 3:13-22


사람들은 지혜를 얻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타인으로부터 지혜를 배우러 하거나 자신이 직접 찾으려고 합니다. 저는 오늘 세상의 것과 다른 잠언에서 말하는 지혜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성경이 말하는 지혜는 인간의 사고 속에 개념상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존재하는 인격체입니다.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3절 상반절을 보면 사람이 물건을 찾듯 지혜를 찾는다(새번역). 존재하는 뭔가를 발견한다(쉬운성경, NIV: find). 또는 있는 것을 취한다는 의미로 지혜를 얻는다고(개역개정) 다양하게 번역합니다. 즉 지혜는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나타나 있고, 사람이 수고하면 찾을 수 있게 실제 존재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성경은 지혜를 인격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혜 그 자체는 사람처럼 뭔가를 소유한다고 표현합니다. 16절을 보면, 지혜는 장수와 부귀영화를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지혜 그 자체에 장수가 있고 그 자체가 부귀영화를 소유한다고 말합니다. 세상은 이렇게 말합니다. 지혜를 가진 사람은 그 결과로서 부유하게 되고 사람들을 현명하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릅니다. 지혜는 장수와 부귀영화를 자신의 존재 속에 ‘품고 있다’ 또는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지혜는 추상개념이 아니라 존재로서 인간이 반드시 만나야 하는 대상인 것입니다. 여기서 질문 하나가 생깁니다. 그러면 성경이 존재로서 지혜를 말한다면 그 지혜가 언제 생겼는가 하는 궁금증입니다.  

잠언 8장은 이에 대한 답이 소개됩니다. 8:2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라고 말합니다. 창조 전에 이미 지혜가 존재했다고 말합니다. 점점 놀라운 선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8:27절에 의하면 창조 때에 “내가 거기 있었다”고 선포합니다. 그런데 8:30절에서는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잠언은 놀랍게도 지혜가 창조주라고 선포합니다. 잠 3:19절에도 동일하게 “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에 터를 놓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3:20절에는 “그의 지식으로 깊은 바다를 갈라지게 하셨으며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셨느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혜는 만세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창조주로 활동하셨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2에서 태초에 말씀으로 하나님과 함께 계시던 로고스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지혜가 바로 말씀으로 존재하는 예수 그리스도라면 잠 3:18절이 이제는 믿음으로 받아들여 집니다.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생명 나무는 창세기에 등장합니다. 에덴 동산 중앙에 선악과와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생명나무를 먹고 영원히 살며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복이 주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죄를 짓고 타락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조치를 취합니다. 죄 짓은 인간이 죄를 지으며 영원히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 위해 선악과를 먹지 못하도록 화염검으로 막아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 속에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구세주로 영원한 생명의 주로 이 땅에 오시게 됩니다. 그것을 성육신 사건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게 되십니다. 십자가를 통해 심판 받아 사망에 이를 우리들에게 생명을 허락하시는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잠 8:30-31절의 “내가(지혜가,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느니라”는 의미가 풀립니다. 주님이 직접 인간으로 오셔서 이 땅에 거하며 인간들을 사랑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셨던 성육신 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8:34-3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이 구절은 신약에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결단코 죽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겠다’(요 11:25-26)는 동일한 음성입니다.  

다시 잠 3:21-2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이것들이 네 눈 앞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 영혼의 생명이 되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영혼의 구원을 말합니다. 잠 4:6-7은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지혜는 인식과 개념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서 우리의 구원주로서 생명나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둘째, 성경적 지혜는 많은 지식과 정보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풍부한 이해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개역개정 잠3:13절은 ‘명철’로 번역합니다. 영어성경(NIV)은 ‘understanding’으로, 현대인의 성경은 ‘깨달음’으로 번역합니다. 생명을 허락하는 구원주로 발견한 분들은 반드시 그분과의 관계를 더욱 깊이 가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명철 또는 슬기는 지식과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어 상황을 대처해 나가는 인간의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난 분들의 그 존재 자체에 대한 풍부한 이해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정보를 많이 가져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그분이 내 속에서 능력이 되기에 그렇습니다.   

잠언의 기록자는 지혜 그 자체이신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소개하기 시작합니다. 14절에서 지혜에 대한 가치는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낫다”고 가르칩니다. 세상에서 갖기 바라는 그 어느 것 보다 지혜가 더 귀하다는 고백을 15절에서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16절을 보면 지혜는 생명을 소유하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지혜의 오른 손에는 장수가 있고”라고 말합니다. 

오른손은 가장 으뜸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서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결국 지혜는 생명을 주관하는 하나님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한 어리석은 부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눅 12:20). ‘오늘 밤 너의 생명을 거두어 간다면 이 부귀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질문하십니다. 

결국 잠언의 기록자는 자신이 만나고 이해한 지혜는 금과 은의 가치를 넘어(15절) 생명을 주시는 구원자임을 16절에서 고백합니다. 결국 존재자로서 지혜를 소유한 그 사람에게 지혜는(예수 그리스도) 생명나무(십자가, 구원)가 되는 놀라운 고백을 18절에서 하고 있습니다.  

잠언의 기록자는 지혜에 대한 이해를 가진 그 사람은 즐거운 길을 갈 수 있다고 17절에서 또 밝히고 있습니다. 즐거운 길은 문제에 대한 해답도 되지만 내 생각과는 다를지라도 하나님이 맞다고 인정하고 따르는 순종을 의미합니다. 순종이 일어날 때 주시는 응답은 무엇일까요? 기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은 ‘평강’이라고 부릅니다. 세상이 주는 것과 구별되는 ‘즐거움’(joy)입니다. 그런데 이 즐거움과 기쁨이 지름길로 온다고 17절 하반절은 말합니다. 지름길이란 짧다, 빠르다를 상징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기도할 때 실제 문제가 빠르게 풀린다는 의미도 됩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실제로 문제 해결은 아직 안 되었지만 내가 기도한 것에 대한 ‘응답의 확신’이 빨리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믿고 기도한 사람은 ‘평강’이라는 것을 통해 응답을 감지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기도하기 시작할 때 내 속에서 이 기쁨이 일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기도하고 난 뒤 성령님은 ‘내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하십니다. 이것을 ‘기도 응답의 확신’이라고 부릅니다. 마음에 평강으로 확인되는 것입니다. 실제 상황은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아 불안하고 답답해 할 수 있는 시점입니다. 시간상으로 미해결 시점이지만 확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샬롬(평강)입니다.  

기도한 사람이 이 기쁨을 맛보고도 응답을 확신 못하고 불안해하거나, 응답 받지 못했다고 말하면 실제로 그렇게 되는 일만 남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모습입니까? 그래서 오늘 주제 본문인 13절은 ‘지혜를 얻는 것과 명철을 얻는 것이 복이다’ 고 선포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복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얼마나 확실합니까? 

잠언의 기록자는 이제 지혜에 대한 이해를 19절에서부터 우주(cosmos)로 더 확대하기 시작합니다. 그 의도가 무엇일까요? 바로 존재로서의 지혜는 창조주임을 고백하기 위함입니다. 19절에서 ‘하나님은 지혜로 땅에 터를 놓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은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이 창조에 나타납니다. 하나님이(성부 하나님) 말씀으로(성자 하나님) 만물을 창조하십니다. 성령(성령 하나님)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며(hovering) 어둠에서 그 만물들을 품으시는 모습이 보이십니다. 

창 1:26절에서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고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고 말씀하십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에 대한 모든 이해가 우리에게는 명철인 것입니다. 명철은 정보를 많이 소유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이해, 믿음의 고백인 것입니다. 

저는 오늘 성경이 말하는 지혜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지혜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제 존재하는 존재자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그 지혜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풍부해야 합니다. 구원자이신 지혜를 가질 때 힘든 삶 속에서 구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혜에 대한 풍성한 이해들이 우리의 입술을 통해 믿음으로 고백 될 때 나의 삶에 능력이 될 수 있습니다. 구원과 능력이 이 땅에서의 복이고 코넬생존법입니다.

 

어려움과 막힘이 있을 때 나의 능력이 되는 주께 의지하십시오. 여러분에게 지혜와 능력으로 다가오시며 모든 문제들이 주 안에서 해결되는 복을 누리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