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4): 믿으면 깊은 상처도 치유됩니다.
창 15:1-6
큰 일을 치른 후에 사람들은 “이제 뭔가 잘 되겠구나”라는 안도감을 갖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어려운 일을 당하면서 경험과 자신감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살아가는 동안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지나가면 사람들은 성숙해집니다. 이런 것을 보고 ‘비 온 뒤 땅이 더 굳어진다’ 라는 속담도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그렇지 않는 것 같습니다. 창세기14장에서 전쟁이라는 큰 일을 치른 후에도 성숙된 믿음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전쟁은 자신의 존재감을 세상에 드러나는 사건이었습니다. 부족들의 동맹을 상대로 한판 치른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그 당시 핫뉴스였을 것입니다.
자신의 병사들이 그렇게 잘 싸워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전쟁의 승리감을 맛본 후 아브람은 민족을 이룰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자신감도 가졌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함부로 아브람 건드려서는 안 된다’ 는 인식을 주변 부족들에게 심어 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브람에게는 뭔가 조급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1절을 보시면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눈에 띄는 ‘두려워 말라’는 말이 그의 깊은 내면의 상처를 반증을 해 주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아브람에게 무엇이 그렇게도 부담으로 다가왔고 걱정거리였는지 궁금합니다. 기습작전으로 이긴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물러간 동맹군들의 정신차리고 난 뒤 다시 와서 보복을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분명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막 전쟁을 치른 후의 아브람의 가장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환상 중에 임합니다. 참 하나님은 시기 적절하게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현실에서 답답하고 불안함을 느낄 때 하나님은 늘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힘들어 하는 아브람을 치유하시기 위해 적절한 위로를 가지고 다가오십니다. ‘방패’라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켜주고 보호해 주는 은혜로운 행위의 상징입니다. 모든 위험으로부터 지켜 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다시 적들이 올지라도 내가 막아줄게 안심하라는 확신입니다.
방패가 되시는 주님을 나의 삶에서 만나기 바랍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큰 병이 발견되고 수술을 마치고 난 뒤에도 늘 재발의 염려 등이 있습니다. 비슷한 증세만 보여도 걱정이 늘 앞서곤 합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이 방패가 되어 막아 주십니다.
우리 앞에 서서 날아오는 모든 위협을 막아주십니다. 어떤 것이 위협해도 방패가 있으면 안심이 됩니다. 병사는 공격용 무기도 잘 사용하지만 방어용 무기를 잘 사용해야만 자신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걱정과 두려움을 막아주는 방패입니다. 믿고 두려움 없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에게 걱정이 하나뿐이면 참 좋겠습니다. 아브람에게 또 다른 걱정이 있다는 뜻입니다. 더 큰 걱정이 그를 두려움으로 몰고 갔던 것입니다. 특별히 전쟁과 같은 큰 일을 치른 후에 사람들이 겪게 되는 증세가 있습니다. 이것을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충격 후 스트레스장애)라고 부릅니다.
큰 일을 치른 사람들이 나중에 겪는 심리적인 혼란 증세 등을 말합니다. 롯을 구하기 위해 아브람은 자신이 기른 병사들을 데리고 기습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열정 하나만으로 시도했지만 그에게도 엄청난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혹시 실패하며 어쩌나, 이곳에서 내가 죽는 것 아닌가?’
그때 자신을 사로잡았던 생각이 전쟁을 치른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밤에 자주 그를 깨우곤 했습니다. ‘내가 지금이라도 죽으면 자식도 없는데 아내 사래는 어쩌지. 누가 이 많은 소와 양은 지킬 것인가?’ 더 많은 생각들이 복잡하게 아브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괴롭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조건 큰 일만 지나가면 우리 인간은 자연스럽게 성숙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상처가 흔적으로 남기 때문입니다. 이 상처마저도 치유되지 않으면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뒤 따르게 됩니다. 이 골이 깊으면 깊을수록 더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람을 찾아 오셨던 것입니다. 이것을 치유하지 않으면 우리의 생각이나 마음을 죽이는 괴물이 생겨납니다. 생각에 집착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만들어 내는 감정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치유하기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감정은 겉으로 표출될 때 여러 가지로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은 폭력성이 나타납니다. 혹은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아니면 의기소침함을 넘어 우울함에 한 없이 빠져들어갑니다. 그래서 전쟁터의 군인들이 집에 오면 폭력성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도저히 가정생활이 안되 홈리스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어떤 상처도 치유하기 원하십니다. 우리를 가장 잘 아셔서 최고의 치유법을 가지고 다가 오십니다. 그것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창조 때 말씀으로 세상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내면의 깊은 상처를 가진 아브람에게도 약속으로 다가오십니다. 1절에 “나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란 약속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브람은 후사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약속이 주어질 때 아브람은 재빨리 그것을 자신에게 주실 자손의 축복으로 이해하고 믿음으로 즉각 받아들입니다.
2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하나님의 약속을 자신에게 주는 말씀으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말씀을 소홀히 여기기 말지 바랍니다. 길가나 가시 밭에 뿌려 사탄에게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감사하게도 아브람은 약속을 옥토 밭에 뿌리게 됩니다. 들을 때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믿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들려지는 말씀들이 그냥 들을 만하네 정도가 아니길 바랍니다. 주일 날 말씀이 전해질 때 나의 삶에 복으로 채워주시는 약속으로 받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두 가지 약속은 ‘나는 너의 방패란다.’ 내 속의 어떤 불안과 걱정과 염려를 막아 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나는 네가 믿는 대로 받게 될 큰 상급이란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상급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사람들이 꺼집어 낼 수 없는 우리의 내면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하나님은 다가 오십니다. 두려움으로, 떨림으로, 우울함으로, 때로는 화 남으로 제어 되지 않는 나의 깊은 내면의 상처들을 치유하실 분임을 믿습니다. 성도는 약속을 듣고 믿음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이것이 치유 되는 놀라운 비결입니다. 약속을 믿고 나아가는 성도들에게 승리의 한 주간이 허락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