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7): 내가 바라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27: 41-45

 

오늘 본문은 이삭 가족이 서로 헤어지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정말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가정에서 발생합니다. 형을 속이고 눈먼 아버지까지 속이며 자신이 받을 복을 가로챈 야곱을 에서가 죽이려 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이삭의 가정에 최대 위기가 닥쳐 왔습니다.   

 

이때 리브가는 야곱을 자신의 고향으로 보내 위기를 모면하려 합니다. 리브가가 야곱을 보내면서 하는 말을 잘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44절에  몇 날 동안하란에 머물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순전히 그녀의 바램입니다인간의 바램은 빨리 돌아오기를 바라지만 하나님의 뜻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사람을 보내어 소식을 알려준다고 하였지만 야곱은 어머니로부터 소식이 와서 라반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 아닙니다. 결국 리브가의 말은 자신의 생각일 뿐이고 자신의 바램을 아들에게 전달 한 것뿐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보통 나 자신의 바램을 입술로 고백한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 하나님이 들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다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바라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면 무엇이 믿음입니까? 나 자신의 바램이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것이라면 그것은 믿음이 맞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성도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이 오실 것을 바라고 소망합니다.’  이것은 주님이 직접 약속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바른 바램이고 믿음이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다른 예를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내년에 졸업할 줄로 믿습니다라고 자신이 바라고 믿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견뎌 나가는 학생의 솔직한 기도의 일부분입니다. 그러나 이 말 가운데는 믿음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들어있습니다.

 

다름아닌 내년이라는 나의 바램, 내 생각, 내 의지, 나의 단정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으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바래는 시간보다 더 빨리 아니면 더 늦게 줄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나의 바램에 다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이것부터가 잘못된 것입니다. 나의 바램이 더 내 인생을 순조롭게 만들까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 보다 뛰어나신 하나님의 결정을 따르기 바랍니다. 내가 지금 당장, 다음 달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를 길들이고 싶어하는 훈련 분야입니다.

 

야곱은 어머니의 바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가운데 20년이 지나서야 돌아오게 됩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나타나 그에게 이제 고향으로 가라고 말씀하실 때에야 돌아옵니다(31:3). 하나님은 뜻을 세우고 이루어 나가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지지 않는 모든 것은 불행의 연속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결정한 것만 우리가 따르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나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하면 왜 안됩니까?’ 라고 억지를 부립니다. 그것은 순 엉터리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겁박하는 것입니다. 종이 누구입니까?  누가 누구를 따라야 합니까?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바라는 것만 믿음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멀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란다고, 소망한다고, 꿈꾼다고, 심지어 믿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내가 바란다고 해서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까? 리브가의 경우는 내 아들이 지금은 잘못으로 잠시 도망을 갑니다. 하나님 그러나 반드시 돌아올 줄 압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곳에서 나온 곳이지 않습니까? 우리 조상들을 불러내신 하나님이 내 아들도 돌아오게 할 것을 믿습니다.’

 

이렇게 말했다면 아들 야곱은 믿음으로 외삼촌 집으로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의 바램만 듣고 가게 됩니다. 그것은 사람의 소리입니다. 하늘의 소리가 아닙니다. 회개가 없습니다. 현실에 대한 직시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꼼짝 못하게 할 말씀으로 밀어 부치는 논리가 전혀 없습니다.

 

내 속에 계시는 성령이 들려주는 마음이 아닙니다. 주문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는 이루어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야곱도 어머니가 그렇게 말할 때 긍정적으로 네 믿습니다. 아멘.” 뭐 그런 식으로 대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 생각에 밀려 나의 요구를 들어주실 분도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더 우리들을 망치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 이후 야곱 인생 전체를 보시기 바랍니다. 삼촌 집에서 꼬이기 시작하는 인생은 하나님의 뜻이 나와 많이 다르구나를 인정하게 만듭니다.

 

그의 인생 드라마 전체에서 보여주는 하나님의 뜻은 야곱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어릴 적부터 이기적이고, 세상적인 욕심만 추구하고, 부모의 편애로 자란 그가 무엇을 제대로 정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야곱도 나중 11(2)명의 아들을 낳고 그 중에서 요셉만을 편애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얼마나 긴 시간이 그를 훈련 시키는데 소모되었는지를 성경은 알려주고 있습니다. 야곱에게 하나님의 복잡하고 긴 치유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나에게도 나의 바램에 대한 응답이 늦어지면 늦어지는 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옳음을 가장 먼저 인정하는 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무엇이든 나에게 손해가 가도 하나님이 맞습니다. 내가 이것이 부족하기에 주님이 나의 바램 대로 가지 않고 주님의 뜻대로 가심을 인정합니다. 내 뜻이 아닌 주님 뜻이 내게서 이루어주시옵소서. 뒤로 물러나기 바랍니다.

 

내가 견디지 못해 시간을 정하고 그 시간에 맞게 하나님이 대답하기를 강요하는 강도 같은 우리의 믿음생활은 이제 끝이 나야 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성숙된 믿음은 이런 훈련을 거쳐 달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이런 시험이 있다면 성도님들의 믿음을 성숙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십니다.

 

신앙생활 하다보면 우리에게 뭔가 바램이 생깁니다. 이것은 기도하라는 싸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당장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때 기도하는 내용은 내 바램대로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기도가 됩니다.

 

기도하다가 내 바램대로 안되고 하나님 뜻대로 진행 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때 내 바램을 고집하지말고 하나님 뜻대로 진행돠는 것을 순종하고 답이 올때까지 기다리는 인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내 뜻, 내 바램, 나의 좋은 생각,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좋아 보이는 제안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고백이 필요합니다. 희생을 치러 더라도, 더 늦어지더라도 그렇게 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믿음의 순종이라 부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두 가지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해줄 것이라는 신뢰는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진행될 때, 다르게 말하면 내 바램 대로 안 되는 경우 그것조차도 받아들이는 순종이 있어야만 진정한 믿음이 됩니다. 올바른 믿음으로 간구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