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뜻(10): 기도가 앞서기 원합니다  

                                  창 30:1-4, 8-9, 14-17, 22-24


신앙생활에서 어려운 것이 하나 있다면 기도일 것입니다. 왜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 힘이 들까요? 시간이 없어, 훈련이 안 되어서.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풀릴 것 같은 인간적인 생각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늘 본문에서 보여집니다

  

야곱은 두 아내를 얻은 후 먼저 레아에게서 아들 넷(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을 낳게 됩니다(29:31-35). 그때까지 라헬은 아기가 없었습니다. 그런 자신을 보는 것으로 30장은 시작합니다. 인간이 자신을 보는 것은 인간다운 모습입니다. 내가 이런 모습을 하고 산다는 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귀한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의 속성을 지닌 인간이 자신을 볼때는 타인과 비교되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이때 일어나는 것은 시기입니다(1). 그것으로 마무리되면 좋은데 라헬은 자신도 자식을 낳게 하라고 남편에게 억척을 부립니다.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야곱의 화난 소리만 들립니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습니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의 믿음을 본 받지 못했습니다. 이삭은 리브가가 아들을 낳지 못할 때 하나님께 간구하여 아들을 얻었습니다(25:21). 그렇게 해서 얻은 아들이 바로 야곱입니다. 그런 야곱은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랴”(2)라고 라헬을 아프게만 하는 고함치는 소리만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될 수는 없지만, 기도는 하나님께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기도의 사람으로 변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가 간절히 기도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직 여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두 아내 중 한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자이고, 다른 사람은 자식을 낳아 주었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결국 삶에서 기도가 빠지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소리만 내고 모든 일에 손익만을 따지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라헬은 자신을 대신해서 여종 빌하에게 아들을 낳으라는 소리를 냅니다(3). 야곱은 그 소리를 듣습니다(4). 손해 볼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빌하는 라헬의 종이긴 하지만 아들을 얻게 되면 자식이 없는 라헬도 만족하며 두 아내가 서로 싸우는 것이 중단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적인 계산에서만 모든 행동들이 일어 납니다. 야곱 집안은 문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 나아가 간구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드디어 라헬은 빌하를 통해 두 아들을 얻습니다(6,7). 라헬은 “언니와 경쟁해서 이겼다”고 기뻐하는 소리가 이제 들려옵니다(8). 그리하여 그 아들의 이름조차 납달리’(경쟁함’)라 자신이 부릅니다. 사실 아들 넷인 언니와 경쟁해서 이기려면 아직 수적으로도 부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이겼다고 소리치는 오만한 소리만이 야곱의 집을 가득 채웁니다. 교회도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사람의 소리가 많습니까? 아니면 기도 소리가 많습니까? 이것이 우리들의 신앙생활을 가늠하는 잣대입니다.


믿음의 기도가 가정을 지배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방법만 따라 갈 뿐입니다. 언니 레아도 동생을 따라 여종 실바로 하여금(9) 아들을 낳게 합니다(10, 11). 남들도 하니 나도 해야지. 뭐 이런 식입니다. 사람의 생각을 따라가는 야곱의 가정은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사건 하나가 발생합니다. 이제 자녀까지도 문제에 개입하게 됩니다. 첫 아들이 자신의 어머니가 다른 어머니만큼 사랑 받지 못함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르우벤이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합환체를 구해옵니다. 자라면서 자신의 어머니가 아버지로부터 사랑 받지 못함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들도 아버지로부터 사랑 받기 위해서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더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은 늘 상황만 악화 시킬 뿐입니다. 동생이 언니의 합환체를 사고 그 날 밤 언니를 남편에게 들어가도록 허락하는 소리까지 들릴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14-15).


합환채를 판 레아는 당당하게 라헬을 뒤로하고 남편에게 나아가 ‘합환채로 야곱을 샀다’고 까지 말합니다. 인간의 사랑 받고 싶어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16). 사랑이 거래의 대상이 되고 자식을 얻는 것이 남편의 사랑을 얻는 것으로 착각한 여인들의 경쟁심은 도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1-24절 전체를 볼 때 야곱은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아들이 태어날 때 모두 아내들이 자식들의 이름도 지어줍니다. 단지 야곱은 두 여인의 소리가 나면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으로만 등장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보다 타인의 소리를 들으며 이끌려 가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기도가 없고 남에게 이끌려 가면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뒤에서 내가 하는 행동만 보시고 사람이 만드는 소리만 듣고 서 계실 수 밖에 없습니다. 왜 그렇게 하실까요? 소리를 내도 듣지 않고, 나타나셔도 무시당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30장에서 한 가지 우리가 감지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비록 우리는 삶의 여유와 교만으로 하나님을 무시하며 나름대로 만족스럽게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길을 가시는 분이십니다. 계속 야곱의 사람들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들이 나타납니다. 먼저 레아에게 부어지는 축복입니다.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녀의 소원을 들어 주십니다(17-21). 레아는 두 아들과 딸 디나를 야곱에게 더 안겨주게 됩니다. 누가 감히 생명을 줄 수 있습니까? 인간에 의해 철저히 무시 당하는 시간에도 하나님 되심을 분명히 나타내고 계셨던 것입니다.

 

집안에 시기와 질투, 싸움으로 사람들의 목소리로 가득 차 있을 때에도 야곱과 맺은 약속을 기억하시고(28:14) 가정에 복을 허락하십니다. 22절에 보면 언니 레아뿐만 아니라 동생 라헬도 ‘생각하시고 그녀의 소원도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복을 허락하시며 야곱이 하나님을 생각하는 기회를 주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런 복에 감사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지도 않습니다. 단지 내가 열심이만 하면 뭐든 될 수 있다. 삼촌이 부자면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다. 여기에만 집중합니다.

 

인간적인 야망이 그를 바쁜 사람으로만 만들어 놓았습니다. 자신을 위해서만 삽니다. 한번도 주님을 위해 양보가 없었습니다. 주님은 기다려주셨습니다. 하지만 야곱에게 많은 고난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장차 변하여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는 것에(32:28) 관심을 두시고 그곳으로 이끌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생각이 앞서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보다 우선 되어야 할 것은 기도입니다. 기도로 하나님의 마음을 살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 따라 움직여 나갈 때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리는 복된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