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예배(3): 어색한 만남을 즐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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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만남으로 시작됩니다. 사회학자들에 의하면 대략 17,500(중요한 관계3500) 정도를 만나며 삶을 영위해 간다고 합니다(양광모 저, 좋은 인맥을 넘어 위대한 인맥으로). 특별히 가을 학기에 새로 오신 분들은 모두 생소한 만남의 연속일 것입니다.


사실 이 만남들이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생소하기에 때로는 어색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어색함을 넘어 정말 피하고 싶은 그런 만남도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야곱과 에서와의 만남입니다. 만남이 기쁨이 되어야 할 사람들인데 이들 사이에 너무 큰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한번 깨어진 관계는 다시 회복하기가 힘이 드나 봅니다. 그래서 옛날 지혜로운 분들은 다시 만남을 위해서 어느 정도 여지를 남겨 두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그런데 이 형제들은 그런 조그마한 여지도 남겨 두지 않고 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원수와 같은 그런 관계로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형제이긴 했지만 상대방을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서로 주고 받는 관계가 단절되어 있습니다. 대화마저 끊긴 그런 상태입니다. 만약 우리 성도님들 역시 같은 교회를 다니고, 같은 예배당에서 예배는 드리지만, 친교가 없고 서로 나눔이 없다면 어색한 만남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번 인사를 나누고 함께 식사를 하게 되면 서먹한 관계가 놀랍도록 빠르게 사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이런 경험들을 누구나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혹시 내게서 아름다운 만남들의 단절이 있다면 오늘부터 다시 한번 시도해 나가는 주일이 되기 바랍니다.


새 학기마다 가는 가족 수련회는 성도간의 관계를 더욱 잘 연결해 줄 것입니다. 한 달, 한 학기, 일 년이 지나도 인사 한 번 나누지 못한다면 우리는 너무 말이 안 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주 안에서 한 형제 자매입니다. 형제 자매가 그런 관계를 깨뜨려 버리는 팁을 본문에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어색한 만남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먼저 용기가 필요합니다. 형 에서가 400명의 장정을 데리고 옵니다. 이 경우는 어색한 만남이라기 보다는 죽고 사는 그런 순간입니다. 이때 야곱은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아갑니다. 모든 가족들을 자기보다 앞에 보냈던 야곱이 이제 변하여 맨 앞에 서게 됩니다.

 

이것이 정상입니다. 이제야 야곱이 자신의 자리를 찾은 것입니다. 용기는 때로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찾게 해 줍니다. 한 가족의 가장인 야곱이 위험을 보고 자식들보다 아내들보다 앞에 서지 못한다면 이 가정이 제대로 된 가정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지난 주, 용기 있는 야곱으로 변하게 된 것은 얍복강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난 뒤라는 것을 나누었습니다. 믿음 생활에서 용기는 참 필요합니다. 한번 용기를 내어 잘 알지 못하는 성도의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면 원래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이 정상인데 이제야 그것이 이루어지는 느낌을 성령님이 허락하실 줄 믿습니다.


3절을 보면, 앞서 가는 야곱이 몸을 일곱 번이나 땅에 굽히며 에서에게 나아갑니다. 형에게 죽지 않기 위한 비굴한 야곱의 모습처럼 보이십니까? 아닙니다. 바로 이 모습이 사람과의 관계에 존재하는 어색함을 없애는 두 번째 비결입니다. 살기 위한 제스처가 아니라 진정한 야곱의 겸손인 것입니다.  


성도가 서로에게 겸손한 태도를 보인다면 어색함은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겸손은 도덕과 예절을 뛰어 넘어 나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린 사람이 어른에게 인사를 먼저 해야 한다고 배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관계가 무너지는 것도 아닙니다.


사장이 말단 직원에게 먼저 인사를 나눈다고 그 직원이 사장실을 차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겸손은 자신의 자리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서는 것이지만 자기의 권위를 가장 잘 지켜주는 도구입니다. 기존 분들이 새 성도님들의 손을 먼저 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어른들이 어색해 하는 청년들에게 먼저 인사를 나눠주실 줄 믿습니다.


이제 세 번째 비결을 소개할까 합니다. 8절에 보면 야곱이 형을 위해 먼저 보낸 선물팀이 있습니다. 동생이 형에게 주는 예물은 서로간의 긴장을 깨드리는데 소중한 역할을 담당합니다(10). 서로가 줄 수 있는 조그마한 선물은 우리의 관계를 더욱 가깝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참 감사하게도 이번 수련회는 한국에서 안성훈 장로님이 참석하는 성도님들을 위해 선물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참석하는 성도님들 모두는 다른 선물을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형을 만나면서 형을 보니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성도님들이 지금부터 준비할 수 있는 선물입니다. 칭찬이나 격려입니다. 만나는 분들에게 한 학기 승리하세요. 건강하세요. 좋은 축복의 말을 나누기 바랍니다. 에서가 야곱의 말을 들었을 때 조금 어색합니다. 그러나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구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진실이 통했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나누는 대화가 진실되면 마음의 문은 은혜로 열립니다. 에서도 야곱을 보면 죽이고자 400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사라지고 기뻐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진실이 있는 곳에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가 자리잡기 때문입니다.


10절에 은혜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20년 이상 그들 사이에 말랐던 강이 이제 은혜의 강물로 차 넘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야곱이 겸손한 태도를 보이고, 선물 보따리를 가져와도, 좋은 말을 던진다고 해도 은혜 없이는 에서의 마음을 녹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쌓인 미움, 내면 속 깊은 곳에 담긴 분노, 아버지의 축복을 받고 야간 도주한 야속한 동생에 대한 배신감. 더 이상 축복할 것이 남아 있지 않다고 말하던 아버지의 음성을 듣는 순간 느꼈던 에서의 좌절감. 오직 은혜로만 녹일 수 있습니다. 흘러 보낼 수 있습니다. 생각에서 지워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님은 수련회 동안 내게 은혜 달라고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은혜 없이는 가정의 문제 해결되지 않습니다. 개인이 갖고 있는 질병 치유되지 않습니다. 졸업 후 미래와 결혼 등 걱정과 불안 사라지지 않습니다. 내 속에 있는 미움과 질투 없앨 수 없습니다.


새로운 것에 어색해 하는 분이 있을 수 습니다. 새로 접하는 교회 분위기에 적응 못하는 분도 우리들 가운데 있을 수 있습니다. 관계를 맺어가는 것 참 어색해 할 수 있습니다. 기존 성도 사이에도 조그마한 어색한 관계가 있다면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어색함을 일박 이일 동안 즐기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모든 것을 맡기고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돌아올 때 정말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고 간증이 쏟아져 나오는 복된 가족 수련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