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11): 사고는 방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33:18-34:4


인생에서 재난이나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평온한 삶이 복 중의 복입니다. 그러나 어찌하겠습니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래서 파란만장한 삶이라는 말이 나온 것 같습니다. 야곱은 참 험한 삶을 살아왔는데 다시 한번 더 아픔을 맞이합니다.


이 아픔을 우연으로 보지 말고 조금 다르게 접근해 보기를 바랍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약한 부분들이 존재하고 있지는 않았나를 살펴 보고자 합니다. 이런 태도는 사고를 줄이고 예방하기 위해서 어떤 것들을 주의해야 되는 지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너무 지나친 호기심에 사로 잡히지 말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세상의 어느 곳과는 달리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더 나은 발전을 추구하는 곳이 바로 대학입니다. 우리 모두가 호기심만으로 종교에 관심을 갖지 말고 삶으로 신앙생활을 배워 나가기를 부탁 드립니다.  


우리 인간은 이성과 삶이라는 현실을 통해 성숙해 질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책으로 배우는 것이 있다면 실제로 살아내는 현장 학습이 요구됩니다. 그러므로 성경공부도 참가 해야 하지만 전도와 선교, 구제와 봉사, 섬김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어야만 합니다.     

 

야곱에게는 레아를 통해 낳은 딸 디나가 있었습니다. 1절에 보면 그녀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다고 말합니다. 혼자 나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디나 한 사람의 호기심이지만 사실은 전체 가족의 분위기인지도 모릅니다.


20년의 타향살이를 마치고 고향으로 데리고 온 식구들은 다른 문화에서 자란 사람들입니다. 당연히 모두들 가나안이 궁금했을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호기심을 일으킨 것은 딸 디나였습니다. 야곱이 장막을 친 곳이 바로 세겜 성읍 앞이었습니다. 밝은 불빛은 흥미의 대상이었고 동경의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목축을 하면서 자란 아이들입니다. 늘 보던 것은 자연뿐이지만 큰 성읍은 매우 호기심을 끌어 당기는 매력을 가지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남자들은 조금 다릅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곳을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벌써 그곳 사람들과 계약을 맺고 땅을 사는 일까지 치른 후입니다(33:19).


남자들이 다녀 온 후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아내들과 디나의 마음을 설레게 했습니다. 언제 갈 수 있을까? 무엇을 살까? 어떤 것들을 팔고 있을까? 많은 호기심이 드디어 그곳을 찾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를 그 성읍은 반가이 맞아 주지 않습니다.


다음은, 세상에는 나와 전혀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목축을 하며 계절마다 들에서 만난 사람들은 친절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달랐습니다. 가나안의 세겜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마음대로 취하는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누가 원하지 않는 남자에게 붙잡히길 원하겠습니까? 윤리와 도덕이 무너지고 힘의 지배가 약자를 취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무도 항거 할 수 없는 그런 힘의 구조가 느껴집니다. 추장 정도 되면(2) 수행원들이 있을 것이고 그를 저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부편적 삶을 묵인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지금 야곱 가족이 만나고 있습니다. 절제력을 상실한 세겜이지만 무언가 그를 부추기는 힘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도 괜찮다는 동의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 누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우리는 ‘문화’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문화는 얼굴 없는 그들의 정체성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족장 세겜을 움직인 것은 가나안의 문화가 그를 허락해 주었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어떤 문화를 가졌으면 합니까? 성도님들은 우리 교회의 얼굴을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까?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이 우리를 통해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모든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상처를 가지고 온다 할지라도 그들을 안아 주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놓인 분들을 외면하지 않고 더 가까이 다가서는 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상처 투성이인 우리들을 주님의 날개 아래 거두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힘든 사람들을 우리는 돕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부터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에 불체 청년 추방유예(DACA) 폐지가 있었습니다. 너무나 큰 충격이 허리케인 허비에 이어 미국을 휩슬고 있습니다. 이분들을 위해 매일 기도해 줄 수 있는 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건이 있은 후 세겜의 아버지는 야곱에게 통혼을 제안해 옵니다. 이때 야곱은 침묵합니다. 그런데 대신 아들들이 격분하여 아버지를 대신해서 모든 상황을 처리하며 복잡하게 일을 만들어 갑니다.


이때 야곱은 하나님께 묻고 있었던 것입니다. 얍복강 이후 야곱은 제단을 쌓는 사람으로 변해 있습니다. 33:18, 20절에 의하면 형과 헤어진 후 야곱은 가나안 땅 세겜 성읍으로 이주해 옵니다. 그곳에서 제단을 쌓는 모습이 발견됩니다. 하지만 디나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하나님은 계속 침묵하십니다.


이때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경솔하게 움직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침묵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야곱의 자녀들이 가나안 사람과 통혼하고 함께 거류하며 한 민족으로 살아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행한 일에 대한 평가를 성경은 적고 있습니다. 그 일은 ‘부끄러운 일’ 곧 ‘행하지 못할 일’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가나안의 문화를 단적으로 지적해 주는 표현입니다. 이미 서로 함께 할 수 없는 두 집단의 차이를 나타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모두가 반대하는 일을 유독 가나안인들은 해도 되는 일로 취급합니다. 온 세상이 악하고 나쁜 죄임을 알고 있는 것을 하나님이 굳이 응답할 이유가 있을까요? 야곱의 아비 이삭이 왜 아들 야곱을 가나안 여인들과 결혼시키지 않으려 했는가? 이해가 가기 시작합니다.


가나안 사람의 제안을 9절에서 보시기 바랍니다. 서로 아들을 주고 딸을 주어 통혼하자고 합니다. 서로 문화가 달라도 결혼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언제든지 자신들의 필요와 욕구가 있으면 무엇이든 마음대로 어느누구를 불문하고 취하는 일은 계속 될 것입니다.


만약 이들과 함께 살아 간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좋은 것을 발견하면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어떤 사람들의 것도 약탈해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말 것입니다. 이것이 문화가 만들어 내는 힘입니다. 지금도 세상에서 멸절 되어야 할 가나안 문화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워 나갈 백성들이 그렇게 사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실까요?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워지기를 바라십니다. 그것이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었고 지금은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를 이 땅에 세우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