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뜻(13):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37:1-11

 


창세기 37장 이후에는 요셉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목축업을 하는 가정에서 형들과 함께 양을 치는 소년으로 성장합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요셉이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함께 있음을 봅니다. 왜 그들과 함께 있는지는 잘 모릅니다. 2절에 '족보'라는 단어가 언급되고 야곱에게 12명의 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에서를 만날 때 재산을 두 그룹으로 나눈 것을 알고 있습니다. 레아를 통해 낳은 아들들이 6명이므로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요셉을 한 그룹에 속하게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의 잘못을 요셉이 아버지에게 알려줌으로 형제들 사이에 금이 더 가기 시작합니다.

 

요셉은 라헬에게서 난 아들이고 노년에 얻은 아들이라 더 귀여워해서 그에게 채색 옷을 입혀 주었습니다(3). 지나친 아버지의 편애로 형들의 태도나 말투가 그다지 부드럽지 못했습니다(4). 그런데 더욱 미움을 받게 되는 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5절에 보면 요셉이 어느 날 꿈을 꾸게 됩니다. 첫 번 꿈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는데 자신의 단은 서고 형들의 단은 자신의 것을 둘러서서 절을 했습니다(7). 한창 자라는 아이들이 꿈 꾸는 것 흔한 일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아직 어려서인지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6절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17세 정도 되었다면 어린 나이는 아닙니다. 그런데 자신을 싫어하는 형들을 청하여 듣게 만들었다고6절에서 말합니다. 형들은 요셉과 말하는 것 조차 싫어했습니다. 하지만 목동들의 따분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모여 앉아 들어주려는 심정으로 모이게 됩니다.

 

분명한 것은 형들이 자신을 미워하고 말도 다정스럽게 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당연히 싫어할 꿈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게다가 아무 생각도 없이 너무 쉽게 그들에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 꿈은 그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담긴 비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비 야곱에게도 묻지도 않고 너무 쉽게 형들과 나누는 것은 상대로 하여금 비전을 수용할 수 없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그 모습이 바로 8절에서 나타납니다. 형들은 요셉이 자신들을 다스리는 왕이 되거나 아니면 그들을 다스리는 자로 보게 만들었습니다. 조금 지나친 면은 있지만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할지라도 형들이 하나님의 비전을 이해하고 함께 이루어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 속에서 먼저 하나님의 비전이 확실하지 않으면 결국 함께 할 사람들 조차도 설득시킬 수 없게 만듭니다. 오히려 그들을 더 혼란스럽게만 합니다(8절하). 여기에 두 번째 요셉의 꿈이 형들을 더 시기하고 질투하게 만듭니다(11). 해와 달과 열한 별조차도 자신에게 절한다는 황당한 내용입니다.

 

이제서야 그 꿈을 아비 야곱에게도 들려줍니다(10). 아버지 역시 아들을 꾸짖습니다. 이것이 야곱의 첫 반응입니다. 그리고 나서 아버지 야곱의 꿈 해석이 들려집니다. 가족 모두가 요셉에게 가서 절한다는 해석입니다. 어떻게 보면 형들보다 더 정확한 해석입니다.

 

꿈에는 가서라는 의미는 꿈에 볼 수 없는데 나중에 온 가족이 애굽으로 가는 것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아버지 야곱의 진정한 마음은 11절에서 간직해 두었다는 말에서 나타납니다. 야곱의 영성입니다. 형 에서를 피해 도망갈 때 돌 베개를 삼고 자던 때(28:11) 꿈으로 보았던 비전을 생각했을 것입니다(28:12).

 

비록 꿈의 내용은 다르지만 아들에게 임한 꿈의 내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합니다. 그렇다면 아비로서 좀더 지혜롭게 다루며 그 꿈을 이루어가도록 인도해 주는 역할을 해 주었어야 했는데 못합니다. 그 이유는 지금 사는 곳까지 오는 도중 라헬이 죽자(35:19) 그 아픔에만 빠져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요셉은 아직 하나님의 관계에서 성숙되지 못한 성급함으로 비전을 자랑거리로만 형들에게 말합니다. 형들은 단지 미워하는 마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위대한 비전을 보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보여줍니다. 게다가 야곱의 미성숙한 영성은 아직 자신의 문제에만 빠져 아이들을 미래의 하나님 백성으로 키우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이런 모습이 믿는 성도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가정이나 공동체가 가장 먼저 사랑의 관계가 없이는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어 낼 수 없습니다. 어떤 사역이든지 공동체가 서로 사랑하고 하나됨이 우선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 속에서 미움과 질투와 시기를 줄여나가고 없애는 것이 바로 신앙의 성숙 입니다

 

내가 키운 꿈이 아니라 하늘에서 허락된 비전은 한 가족, 한 나라와 한 민족에게 영향을 미칠 원대한 계획이 담겨 있습니다. 요셉에게 준 비전은 한 개인에게 절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민족의 생명을 살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두 진지하지 못하고 미성숙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요셉을 꿈꾸는 자로만 취급하여 죽이려고까지 합니다(18-19). 성숙된 신앙이 되기 위해서는 나에게 꿈이 생겨날 때 하나님의 비전인가를 진지하게 기도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미성숙한 신앙은 넘어서는 안될 선도 넘게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록 큰 아들 르우벤이 동정인지 아니면 형으로 동생에 대한 책임인지 요셉을 구하려 합니다. 진정한 성숙은 생명을 상하는 일을 언급하는 것조차 막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행동은 요셉을 살려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한 것에 대한 잘못을 조금이나 갚을 수 있는(35:22) 기회를 노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다음은 유다가 나서 형제들을 움직일 수 있는 제안을 합니다. 죽이지 말고(26) 상인들에게 팔자는 것입니다(27). 경제적 이익을 언급합니다. 이 제안에 모두 쉽게 넘어갑니다. 이것을 볼 때 당시 형제들이 아버지를 속여 몰래 돈을 버는 모습을 본 요셉이 야곱에게 말했을 것이라고 추측해 봅니다.

 

우리는 요셉의 스토리를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비전은 사람들에 의해 좌절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어떤 이유이든지 요셉을 살리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이것이 비전의 생명력입니다. 세상에 어떤 강하고 악한 것일지라도 하나님의 비전은 막을 수도 없고 멈추게 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숙된 신앙인은 늘 하나님 주신 꿈을 소중히 하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비전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생긴 작은 꿈일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비전인지를 기도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소중히 여길 때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성숙된 신앙은 비전을 이루어 드릴 때 정말 힘들고 어려운 희생이 요구된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어떤 고난이나 험난한 일들이 앞을 가로막을지라도 견디어 내고 소망을 가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힘든 환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비전을 끝까지 이루어 드리는 성도가 되어야만 성숙한 신앙입니다. 그 주인공이 바로 우리 성도님이 되실 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