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뜻(16): 주의 영으로 전도하고 사랑하라
창 41:37-38, 45, 50-55
최근
한국에서 일본 점령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암살,
대호, 밀정, 귀향, 올해 군함도 등입니다. 대부분 우리 역사에서 잘 알려지지 않던 숨겨진 사건들과 인물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대호’는 지리산
호랑이를 잡던 한 포수를 통해 시대의 아픔과 일제에 대한 저항을 보여주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이런 잊혀진 인물들이 성경에도 있지 않을까요? 성경퀴즈 때도 거의 답을 못하고 아예 질문도 않는 한 인물이 있습니다. 요셉의 아내로 알려진 아스낫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아내들은 거의 한 장 이상을 할애합니다.
아스낫은 두 절(45, 50절) 뿐입니다.
먼
나중 이스라엘은 나라를 이루고 남과 북으로 분열됩니다. 남유다 지파의 조상인 유다의
아내 다말은 창세기38장 한 장을 다룹니다. 한편, 북 이스라엘의 중심 지파인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는 아스낫이 낳은 후손들입니다. 둘 다 이방여인이지만
차별이 심하고 냉대를 당하는 모습입니다.
더 관심을 끄는 것은 요셉과 아스낫은 민족도, 종교도, 신분도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들이 결혼하고 어려움 없이 결혼생활을 했을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아스낫을
왜 요셉은 거절하지 않았을까? 여러 가지 궁금 점을 가지고 두 사람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당시
애굽은 태양신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45절에 증거가 하나 보입니다. 요셉의 장인 ‘보디베라’의 이름입니다. ‘라’(레)는 애굽 태양신 이름입니다. 결국 보디베라는 ‘라의 제사장’이란 뜻입니다. 아스낫도 ‘태양신에 속한 자’란 뜻으로 당연히 같은 신을 섬겼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여인이 요셉과 결혼 후 상당한 갈등이 예상됩니다. 그런데 의외로 아스낫은 여호와 신앙을 받아들이고 순응해 가는 모습이 보여집니다.
부부에게는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태어납니다(50절). 요셉도 바로 왕으로 받은 애굽식 이름이 있습니다. 그런데 두 아들은 히브리식 이름만 갖는다는 것입니다.
아스낫은
결혼 후 요셉의 지혜와 경건한 삶을 보며 개종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50-53절을 자세히 보면 두 자식을 낳고 조금 있다 애굽에 칠 년 흉년이 시작됩니다. 아마도 바로의
꿈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보고 아스낫은 자연스럽게 여호와 신앙으로 개종하는 계기를 맞이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 더 일찍 아스낫이 하나님을 믿었다고 봅니다. 오히려 두 아들을 낳고 흉년이 시작되는 순간은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이 정말 잘한 일이구나’ 이렇게 확인하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스낫은 결혼 전에 확실히 하나님을 알고 순수한 신앙 안에서 사랑의 만남이 시작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아스낫이
요셉을 알게 된 것은 바로의 꿈 때문입니다. 바로가 이상한 꿈을 꾸고 그 다음 날 온 이집트의
마술사와 지혜로운 자들을 불러 모읍니다(8절). 이때 헬리오폴리스,
태양신의 도시’로 알려진 ‘온’이란 도시에 제사장으로 살던 아스낫의 아버지도 바로의 명령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 후 아스낫은 요셉이 꿈을 풀어가는 이야기를 아버지로 전해 듣게 됩니다. 아버지는 태양 신, ‘라’를 섬기는 제사장입니다. 사실 바로의 꿈은 태양과 관련이 있습니다. 가뭄은 비가 오지 않고 해가 너무 강해 발생하는 자연현상이고 태양신의 저주입니다. 아버지는
대대로 태양신을 섬기는 제사장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애굽을 죽음으로 몰고 갈 재앙에 대해 전혀 알고 있지도 못합니다. 태양신의
신탁도 아버지께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을 믿는다는 히브리 노예신분으로 그것도 감옥에 있는 사람이
왕의 꿈을 해석하고 답까지 제시합니다. 애굽의 모두가 그의 지혜에 놀랄 뿐입니다(37절).
아스낫은 신전에서 자라면서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요셉처럼 자신이 믿는 신이 이렇게 역사하는 사람을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녀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요셉이 지혜롭고 현명한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아스낫을 더 놀라게 만든 것은 그 지혜와 명철이 여호와의 영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입니다(38절).
모두가
인정하는 것은 ‘정말로’
요셉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스낫은
신전에서 나름대로 황홀경에 빠져 예언하는 사람들은 보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요셉 같은 사람은 처음입니다.
태양신을 섬기는 제사장 아버지와 애굽의 현자들조차도 풀 수 없었던 꿈을 해석한 사림인 것입니다.
다른 신을 믿는 사람들은 꿈 하나 해석 못하는데, 하나님의 영을 가진 히브리 노예는 지혜롭게 대처 방안까지 제시합니다. 이것을 보며 아스낫은 이 남자 속에 있는 영은 진정 살아있는 신의 영이다. 그가 믿는 신은
세상에서 가장 믿을 만한 신이라는 확신을 가집니다. 이때 진정한 하나님을 만나는 즐거움이 시작됩니다.
그녀는
계속해서 아버지로부터 궁에서 일어나는 요셉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입니다.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이미 그 히브리 남자에게
사랑에 빠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아스낫 자신도 결혼 적령기에 있는 처자로서 문득 요셉이라는 사람을 만나
보았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을지도 모릅니다(#1).
본문에는 왕이 아스낫을 아내로 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떻게 남의 집 딸을 왕이 요셉에게 주는 것이 가능할까요? 왕은 제사장에게 딸이 있었는지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요? 고대 신전과 왕궁이 종교와 정치적으로 서로 밀접한 관계로 연결되어 있어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2).
한편, 아스낫의 아버지는 나름대로
계산이 있었을 것입니다. 온의 제사장으로서 자신이 왕처럼 요셉을 소유할
수는 없지만 요셉과 연결 되기를 바랬을 것입니다. 국무총리가 된 요셉과 가까우면 자신의 지위가 굳건해 질
것이라는 정치적 계산과 영적인 사람을 곁에 두면 제사장 역할에도 도움이 될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3).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부부가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 인생
가운데 개입하는 모습입니다. 어떤 것이든지 하나님은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십니다(롬 8:28). 하나님의 영을 가진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게 해서 자연스럽게 사랑하여 둘이 하나가 되기까지 도우십니다(#4).
여기서
분명한 것은 주의 영을 가진 사람은 전도가 자연스럽다는 것입니다. 시간 따로 내지 않아도 되고, 전도지 안 뿌려도 자연스럽게 삶에서 예수가 소개됩니다. 아무것도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주의 영을 사모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직접 불러 모으십니다. 이런 전도가 추수감사절에
우리교회에도 있기를 축원합니다.
여기서 결혼 안 한 우리 청년들을 위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아스낫은 신부가 되기 전 이미 여호와의 영을 소유한 히브리 남자에게 사랑에 빠집니다.
먼저 사랑을 하기 전에 우선적으로 나 자신이 예수의 영에 사로 잡히기 바랍니다. 그리고 상대가 예수의 영을 가진 사람임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요셉과 아스낫과 같은 만남이 내게 있기를 기도하십시오. 돈이 얼마나 많느냐가 선택의
기준이 안 되길 바랍니다. 미모만 보고 끌리지 않기 원합니다. 가문이
여러분들을 서로 묶지 말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을 확인하고 주 안에서 만나는 젊은이들이 가정을 이루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 바랍니다.
이미 가정을 이루신 부부들도 하나님의 영이 더욱 삶에서 나타나도록 부부의
인연이 더해갈수록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오실 때가 점점 가까워
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의 영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를 알게 하는 자연스런
전도가 더 많이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