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뜻(18): 싫은 것이 일어나도 안 되요라고 말하지 말라 

45:25-46:3



1983KBS 특별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기억하시는지요? 138일 동안 여의도에서 한국전쟁으로 생사를 모르던 가족들이 만나는 장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기록에 등재되긴 했지만 당시 TV로 온 국민이 울며 하나가 된 적이 있습니다(http://family.kbsarchive.com).


오늘 본문에도 야곱은 생애 마지막 언저리에 죽었다던 아들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25).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야곱은 처음에는 믿지 못했지만(26) 나중 요셉이 보낸 수레를 보고서야 실제임을 확인하게 됩니다(27).


너무 기뻐(28)“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온 가족들을 데리고 갑니다(1). 전 가족을 데리고 간 이유는 기근으로 가족 모두가 고생하고 있고 게다가 자신이 나이가 많아 다시 가족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애굽으로 가던 여정이 잠시 브엘세바에서 멈추게 됩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과(21:31), 아버지 이삭이(26:25) 제단을 쌓고 우물을 팠던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게다가 가족의 경사스런 일도 있고 해서 그곳에서 제사를 드리려고 일행이 멈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드리려고 했다면 집을 떠나기 전에 드리고 출발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3절에 힌트가 있습니다. 야곱에게는 아들을 보러 가는 즐거움이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걱정이 하나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야곱을 불편하게 만든 것은 하나님이 가나안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라고 말한 적이 한번도 없다는 것입니다. 에서를 피해 삼촌 집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조상에게 약속하신 가나안으로 돌아가라는 말씀만 들었습니다. 바로 그 문제로 인해 가던 여정을 멈추고 브엘세바에서 희생제사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으로 가는 것을 늘 막았습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 아버지 이삭 모두에게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조상들이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가서 아내를 잃을 뻔했던 사건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경인 브엘세바에 이르자 정말 겁이 난 것입니다. 나도 다 잃지나 않을까?


그러나 여기서 야곱은 아들을 만나는 감정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런 야곱에게 하나님은 놀라운 말씀을 전합니다. ‘가족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가라는 말씀입니다. 주신 응답은 감사하지만, 문제는 그 답이 이해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이삭도(26:1-2) 기근 때문에 애굽으로 가려고 했을 때 저지를 당했습니다. 야곱 자신도 기근 때문에 가족 전체를 데리고 간다면 하나님은 동일하게 반대를 해야만 정상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는 안 되고, 지금은 왜 되는 것일까요?


조상 때부터 약속하신 땅을 포기하라는 뜻입니까? 도저히 해석이 안됩니다. 너무나 큰 모순 앞에 서게 됩니다. 곡식만 사 가지고 올라오면 되지 않습니까? 아들이 보고 싶다면 아버지 모시고 오라고 보낸 수레에(45:27) 타고 갔다 오면 되지 않느냐는 거죠.


다시 올라올 것을 약속은 하지만 사실 가나안 땅에 거주해야 나중에라도 그 땅의 기득권을 

주장하지 않겠습니까? 400년 동안 그 땅을 버리고 다른 곳에 산다면 나중에 누가 그 땅의 주인이라고 인정하겠습니까? 그런데도 하나님은 황당한 말씀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당황스럽게 다가오는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아는 하나님으로만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훈련을 통해 나의 이해보다 더 크고 내 생각보다 훨씬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이것을 신앙의 체험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경험이 없으면 늘 주님이 어린아이와 같이 보입니다. 그래서 내 것을 맡겨 드릴 수가 없습니다. 더 이상 따를 수가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나의 이해 범위와 내 수준 안에 들어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무 크시기에 내 안에 담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믿음으로만 하나님을 담을 수가 있습니다. 내가 아는 얄팍한 성경적 지식 속에 가두어둔 믿음을 깨뜨려 버리기 바랍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일 일어날 때 이건 안 되요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는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싫어하는 일도 일어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왜 가족이나 나에게 병 나거나, 실패하고 망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전부 내 기준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일어나게 하는 그 어떤 것도 인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신 일이고 다가올 (400년간의 종살이의) 고난을 견디어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현대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영국의 윌리엄 케리가 있습니다. 구두 수선공이었지만 나중 인도에 가서 세계선교가 없던 시대에 선구자가 됩니다. 뜨거운 열정으로 출발하였지만 얼마 후 아들을 잃습니다. 다섯 살 아들을 잃은 후유증으로 아내마저 정신병을 앓다 결국 고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납니다.


당시 케리는 복음을 전하며 성경을 번역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10년 이상 번역한 원고가 어느 날 화재로 불타 없어져 버립니다. 가족도 잃고 설상가상으로 밤잠 못 자며 수고한 노력도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되는 일이 하나도 없게 만드는 하나님을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성적 판단과 이해를 포기하고 하나님이 행한 일이라 받아들입니다. 우리도 때로는 하나님이 말씀하는 것이 모순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늘 그것은 보시기에 좋은 결과를 만들었다고 창세기는 기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보시기에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가 바로 선입니다. 8: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놀랍게도 케리는 나중 3명의 동역자를 만나 44개 언어로 더 나은 번역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우리보다 더 멀리 보시고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주님이 정말 모질게, 때로는 엉뚱하게 나에게 말씀하실지라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늘 옳습니다라는 고백이 입술에 있어야만 합니다.


이런 태도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참된 성도의 모습입니다. 말씀으로 돌아가려는 결단이 있다면 '이것만 되'라는 내가 만든 믿음의 잣대를 던져 버리기 바랍니다.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말씀, 오직 예수만 붙들어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