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1): 요나의 감사 프로세스
욘 1:15-2:10
감사는 누구나 알지만 단지 쉽지 않을 뿐입니다. 어느 동네에 차가운 물과 뜨거운
물이 솟는 두 샘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이렇게 마음대로 찬물 더운물
사용할 수 있어 참 좋겠네요”라고 물었더니 정작 그 동네 사람들은 “비누가 나오지 않아서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참
웃지 못할 일입니다. 그런데 감사를 잊지 않는 특별한 경우가 하나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 죽는 줄 알았는데 살아난
경우입니다. 만약 이런 경우에도 감사가 안 나온다면 조용히 지구를 떠나 우주에 별장 짓고 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성도는 이 수준까지는 가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요나는 고래 속에서 밤낮 삼 일을 지냅니다(1:17). 현대판 요나로 알려진 제임스 바틀러란 사람이 고래 안에 들어가 48시간 정도 있다 살아났다고
합니다(Princeton Theological Review, Vol. 25, 1927, p. 636). 하지만 요나 같이 삼 일을 보낸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요나가
살 수 있었던 비결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명령을 어기고 다시스로 가다 폭풍을 만나 선원들에
의해 바다로 던져집니다. 물에 던져지는 순간 겁에 질린 요나는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애원한 것이 분명합니다.
2절 상반절을 보면,“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가 그 증거입니다. 그랬더니 1:15절에 의하면 배를
삼켜 버릴 듯 그렇게 거칠던 파도가 잠잠해졌다고 합니다. 사실 바다가 잠잠해 지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요나가 던져지는 순간에 부르짖는 기도를 드렸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더 확실한 것은 긴급한 상황에서 드린 요나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즉각적인 응답입니다. 1:17절 상반절에 의하면, 그 응답은 요나를 위해 큰 물고기를 미리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두 가지를 다 염두에 두신 것 같습니다.
요나가 수영을 못할 수 있는 것과 설령 수영을 한다 해도 육지까지 헤엄쳐 갈 수 없다는 것을 미리 알고 계셨다고 보여집니다.
위기 때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 기도는 반드시 응답 받습니다. 그것도 미리 준비하신 답을 받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미리 준비해 주시긴 했지만 뭔가 부족한 것이 문제입니다. 상황이 더 심각하게 변했기 때문입니다. 바다로 던져진 후 잠시 정신을 잃었다 깨어납니다.
살아 있는 것은 분명한데 문제는 캄캄하고 모든 것이 불편한 분위기입니다. 펜실베니아
랭카스터에서 요나 뮤지컬을 하는 극장이 있습니다.
목원들이랑
함께 보러 가시기 바랍니다. 뮤지컬을 보면 요나는 처음에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릅니다. 시간이 흐른 후 고기 배
속에 있음을 잘 표현해 줍니다. 요나가 목숨을 구하긴 하지만 자신이 원하던 육지는 아니었습니다.
아직 기도에 대한 완전한 응답은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나
자신이 앞으로 살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고래 배속에서 빠져 나갈 수 있겠습니까? 단지
상황만 조금 바뀌었을 뿐입니다. 사납고 두려운 바다의 물속은 아니지만, 어둡고 칙칙한 물고기 배 속에서 너무 숨쉬기가 힘든 난감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때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때 하나님은 나한테 무엇을 원하고 있을까요? 하나님은 왜 한 방에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질질
끌고 가시면서 사람 힘을 빼는 것일까요? 나는 무엇을 더 훈련 받아야 할까요? 왜 이런 상황을 나에게 연출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더
기도시키기 위함입니다. 위기에 요나는 더 기도합니다. 이번에는 기도 내용이 바뀝니다. 처음 것은 단지 위기에서 살려 달라고만 부르짖는 초동대응 차원의 기도였습니다. 이번에는 세
가지가 들어가 있음을 봅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회개와 감사와 서원이라는 결단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이 요나의 감사 프로세스입니다. 위기가 오면 우리는 회개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그것만 원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회개 외에 하나님이 다른 것 원하고 있는지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습니다. 또 힘든
일이 끝나면 감사만 하고 마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진정 하나님은 우리 삶에서 회개를 통해 감사가 나오고 성도의 삶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결단으로 이어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 코드를 정말로
좋아하십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 세 가지가 우리에게서 나올 때까지 훈련을 지속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살려달라’ 외치는 요나에게 ‘살았다’는 답은 주지만, 살 수 있을지 여부는 아직 보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진짜 쫀쫀하십니다. 원망해도 소용 없습니다. 하나님은
워낙 그런 소리 오래 들어왔기에 눈 하나 깜짝 안 하시고 묵묵히 오늘도 동일하게 우리에게 고난을 지속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여기까지 몰고 가실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때 성도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입니다. 답이 안 보이기 때문입니다. 2하 절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와 “
7절에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고”기도했다고 말합니다.
놀랍게도
그의 입에서 회개가 나오면서 감사가 이어지기 시작합니다. 8절에 보면,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다’는 회개의 내용입니다. 요나 뮤지컬 첫 장면을 보면 당시 제국을 이루고 있던 앗수르가 유다를
침공합니다. 그리고 행복했던 자신의 가정을 파괴 시킵니다.
그
와중에 아버지 아밋대가 죽는 일이 일어납니다.
자라가면서 어린 요나의 심령에 늘 아버지가 그립고 앗수르가 너무나 원망스런 모습이 잠시 그려집니다. 이것이 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결국 자신이 하나님 말씀을
어긴 불순종의 사람임을 고백합니다.
이때 자신과 니느웨사람 사이에 별 차이가 없음을 알게 됩니다. 모두 하나님께 불순종했고 그것이
죄임을 깨닫습니다. 게다가 그런 죄인들을 살려 주시려는 은혜를 생각할 때 너무 감사한 것이지요.
또한 불순종한 자신을 불순종한 니느웨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에 사용하려는 하나님께 더욱 감사할 뿐입니다.
요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완전한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결단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요나는 이제 목숨만 살려주면 앗수르에 다시 갈 것을 서원하게 됩니다.
요나의 감사 프로세스 전체는 이렇습니다. 고난은 우리에게서 회개할 것을 찾게 합니다.
회개는 하나님 은혜를 발견하고 감사하게 만듭니다.
감사는 이제 내가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사명을 깨닫게하고 그것을 향해 달려 가는 마음의 결단인 서원을 하게 합니다(9절). 끝으로, 서원은 고래 뱃속에서 나오는 문제로부터 탈출을 보게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고난이 아닌 회개부터 시작하여 문제들이 해결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