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영성 (1): 하나님 일에 관심 갖는 자   
삼상 17:12-32


새로운 시리즈로 다윗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다윗이 세상에 알려지지 시작하는 것은 블레셋과의 전쟁입니다. 이 전쟁에 관련되면서부터 그의 인생은 하나님 일에 올인하게 되게 됩니다.

첫째,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일이라는 인식이 부족하면 그 일을 소홀히 여기며 지나쳐 버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블레셋이 전쟁을 걸어 오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고대의 전쟁은 일상 중의 하나입니다.  

사사 시대를 거쳐 오면서 블레셋은 줄곧 밀리고 눌려 살면서 이스라엘이 약해지는 틈만 생기면 전쟁을 걸어왔습니다. 이번에는 블레셋이 자랑하는 한 장수를 앞세우게 됩니다(4절). 적이 쳐들어오자 이스라엘은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반대쪽에 진만 치는 상황입니다(3절). 그 이유는 골리앗이라는 거인 장수에(4-7절) 너무 겁이 나 있기 때문입니다(11절).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왔을 때와 같이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신들 보다 강한 적만 보입니다(민13:31). 그들 보다 키가 큰 골리앗만 보였습니다(13:32). 마치 자신들은 메뚜기로 여겨집니다(13:33). 모두다 뒤로 물러나 몸만 사리고 있는 처지입니다.  

만약 그 자리에 여호수아와 갈렙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분명 ‘우리가 올라가서 치자’(민 13:30). ‘그는 우리의 밥’이라고 외쳤을 것입니다(민 14:9). 여호수아 이후 330년이 지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 역시 가나안을 정탐하던 때와 대동소이합니다.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골리앗에 질려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이 전쟁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일어난 하나님의 일이라는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일이라는 인식이 있지 않으면 하나님의 백성은 스스로 약해집니다.

블레셋의 진멸은 가나안 입성에서부터 이스라엘에게 전달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선조들은 그 일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의 일이라는 인식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12지파가 각자 흩어져 살면서 자신들의 일에만 집중하며 살아갔습니다. 그 시대를 바로 왕정 이전의 사사 시대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나님은 그분의 일에 관심을 갖는 신실한 지도자를 필요로 했습니다. 이것이 왕정이 시작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왕 사울 이후 다윗이 처음으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왕이 되는 이유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일에 최고의 관심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처음에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사람도, 심지어 자격이 미달인 사람도 하나님의 일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이 전쟁과 무관한 사람입니다. 전혀 전쟁에 나갈만한 자격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전쟁터에 가까이 가는 다윗의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12절에 보면 그는 전쟁터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에브랏은 유다 베들레헴의 조그마한 마을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이새라는 평민의 자식입니다. 13절에 보면 장성한 아들이 전쟁에 나간 것으로 보아 다윗은 아직 전쟁에도 나갈 수 없는 자격미달의 소년입니다. 14절에는 막내 아들로 세상 경험이라고는 전혀 없습니다. 15절은 전쟁과는 무관한 양을 치는 목동입니다. 목동은 당시 가장 교육기회가 낮고 노동력에서도 어른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임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점점 다윗은 전쟁터에 근접하게 됩니다. 16절에 보면 두 민족이 전쟁을 위해 서로 대면한 이후 40일이 지난 어느 날입니다. 아버지 이새로부터 형들의 안부를 물어오라는 심부름을 받게 됩니다. 한 가지 의문은 이새의 아들이 총 8 명이고(12절) 그 중에 3 아들이(13절) 전쟁에 참가했습니다. 그런데 왜 심부름을 나머지 4명의 형들 중 하나에게 시키지 않고 막내에게 시키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하나님의 개입하심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하튼 20절을 보면 다윗은 점점 하나님의 일이 일어나고 있는 사건 근처로 다가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그곳에 이르러 형들을 만나러 더 가까이 전쟁터의 중심으로 달려 갔다고 22절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린 아이의 호기심이 아닙니다. 만용도 아닙니다. 18절에서 형들의 안부를 살피라는 아버지의 명령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새가 명령한 대로”(20절) “형들에게 문안하고” (22절)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살펴 본대로 쓰임 받을 수 없는 조건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존경 받는 집안도 아닙니다. 많은 교육 경험도 없어 지식도 풍부하지 않습니다. 사람들 앞에 나설 만큼의 나이도 안 됩니다. 세상 경험도 전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에 사용된다는 사실만 성경은 알려주고 있습니다. 교회 경험이 없다고 망설이지 마시고 주의 일에 관심을 가지시고 섬김의 자리에 참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코넬한인교회 가족수련회가 모든 분들이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자존심을 세워드리는 일에 가장 관심이 집중되어야 합니다. 전쟁터에 가까이 간 다윗이 듣게 되는 것은 사람들의 소리들입니다. 가정 먼저 23절에 골리앗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욕하는 말입니다. 그 다음은 25절에 사울 왕이 전쟁에서 골리앗을 죽이는 자에게 주는 상들에 대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8절은 형 엘리압이 다윗을 보고 전쟁을 구경하러 왔다고 꾸짖는 말입니다. 

형의 말에 대해 다윗은 아버지의 명령을 수행하는 행동으로 답합니다. 그리고 사울 왕의 말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도 없습니다. 그의 온통 관심은 골리앗에게 있습니다. 그가 거인이고 가진 무기가 별나 보여서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의 마음을 온통 사로 잡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골리앗의 모욕적인 말입니다. 

그런데 그 현장에 함께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자존심이 상하는 것에 더 신경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25절을 보시면 골리앗을 보고 두려워하면서 하는 말입니다. “너희가 이 올라온 사람을 보았느냐 참으로 이스라엘을 모욕하러 왔도다.” 하나님의 자존심보다 자신들이 모욕 받는 것에 더 억울해 합니다.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해야 합니다. 내 시간과 물질과 이름이 조금 손해보고 금이 가더라도 그분이 높여지는 일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사울이 주는 상만 언급 할 뿐입니다. 많은 재물로 부자가 되게 하고, 딸을 주어 사위로 삼고, 세금을 면제하는 혜택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인간이 주는 것이 더 크게 보일 때 아브라함 때부터 주신 이스라엘에 대한 위대한 약속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블레셋이 자신들의 옆구리의 가시가 되어 그들을 괴롭히게 될 것이라는 삿 2:3절의 하나님의 경고를 기억 못하는 것입니다. 

한편, 26절의 다윗을 보시기 바랍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자”라고 골리앗을 명명합니다. 차원이 다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자신들이 모욕 당하는 것에 화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욕하는 자들을 향해 의로움을 드러내는 자로 서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약성경에서 그 어느 누구에게도 주지 않은 “내 마음에 합한 자”(행 13:22)라는 타이틀을 다윗에게만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에 최고의 관심을 갖는 성도님이 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남의 등 뒤에 서는 자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주의 일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말에 있지 않습니다. 직접 헌신해야 합니다. 섬김의 자리로 나와야 합니다. 주보 맨 앞 장을 보시면 올해 2015년 코넬한인교회 표어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한 사역으로 섬기는 해” 입니다. 새로 오신 성도님들도 섬기던 자리나 아니면 다른 섬김의 자리에 설 줄로 믿습니다. 

오늘 골리앗과 다윗을 보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늘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오면서부터 그 땅을 완전히 정복하기를 원했습니다(신7:1). 여호수아가 평생을 통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 땅을 완전히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성경의 여러 곳은 많은 가나안 민족들을 남겨두었다고 전합니다(수 13:2-3, 삿 1:1, 27; 3:3). 300년 정도의 사사 시대를 거치면서 이들은 오히려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주역이 됩니다. 

사실 하나님의 일에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사용되어야만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무관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을 사용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 일에 다시 관심을 갖도록 만들고 계십니다. 

이 전쟁도 어쩌면 이스라엘의 처음 왕인 사울에게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라는 암시가 있는 전쟁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상 15:9을 보면 사울은 하나님의 일보다 개인의 일에 더 관심을 가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 의해 무시되기 시작합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다 진멸하라는 명령을 어기고 아각 왕을 살려줍니다. 그리고 가장 귀한 것들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뒷마당에 두어 자신의 것으로 사용하려 합니다.  

주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뛰어 들어 오는 자가 없는 300년을 하나님은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한 사람 다윗을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32절을 보면 다윗이 사울을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저 사람이 골리앗을 대항할 사람인 것 같네요. 경험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말 하지 않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라고만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달려 듭니다. 자신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골리앗을 죽였습니다. 패배를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승리를 경험하게 됩니다. 문제를 크게 보지도 않습니다. 골리앗이 시시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강하시기에 그렇습니다. 행동하는 신앙인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하나님이 크고 강하시기에 우리를 붙잡아 주십니다. 

새 학기에 모든 성도님들이 섬기는 자리에서 간증을 만들어 내는 도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타카 칼리지와 그리고 올해는 코닝에서도 신입생이 오셨습니다. 주의 은혜입니다. 기도하던 제목이 이루어졌습니다. 놀라운 것은 덤으로 더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일에 관심을 갖는 자를 존귀하게 하는 복을 허락하시는 분입니다. 하찮은 시골의 한 목동 다윗이 이 사건을 통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높임을 받게 되는 계기가 마련됩니다(18:16). 

부모님들과 학부, 대학원, 박사과정, 포닥 되시는 분들에게 도전을 드립니다. 지금도 몇 분들이 교수로 재직하고 계시지만 우리 주위의 대학들인 이타카와 코틀랜드, 코닝과 코넬의 모든 학과에 한국 교수 분들이 오시도록 함께 기도해 주기를 부탁 드립니다.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갖는 자로 이 가을을 출발하시면서 좋은 열매를 주님께 드리는 성도님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